▲ 21일 정오 목원대 채플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기념 흉상 앞에서 진행한 추모식에서 대학 관계자 등이 기념비를 제막하고 있다. © 오종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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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원대학교(총장 이희학)가 21일 채플에서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의 전사 73주년 추모예배와 추모식, 기념비 제막식을 진행했다. 한국전쟁에서 산화한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감리교대전신학교(목원대 전신)의 창립 이사였던 서위렴(윌리엄 얼 쇼) 선교사의 아들이다.
목원대는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9월에 추모예배를 진행하고 있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1922년 6월5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미국의 해군 장교로 노르망디상륙작전 등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던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한국에서 해군사관학교(해안경비대) 초대 교관으로 근무했다. 또 해방 후 한국 정부 수립 전 미 군정청(점령지 군사정치기관) 경제협력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1947년 전역 후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기도 했다. 하지만 6·25 전쟁이 발발하자 “내가 태어난 곳인 한국에 있는 친구들을 돕겠다”며 1950년 미국 해군에 재입대해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는 맥아더 장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 등에 참여했다. 한국 지리에 밝고 한국말을 잘했던 덕에 해군 소속 장교임에도 불구하고 서울 수복작전에서 정탐 역할을 맡기도 했다.
1950년 9월22일 오전 정찰을 위해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 접근하던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북한군의 공격을 받고 28세를 일기로 전사했다. 그는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됐다. 195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금성을지 무공훈장에 추서됐고, 미국 정부로부터 은성 훈장을 받았다.
▲ 21일 정오 목원대 채플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기념 흉상 앞에서 진행한 추모식에서 대학 관계자 등이 묵념하고 있다. © 오종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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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정오 목원대 채플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기념 흉상 앞에서 진행한 추모식에서 이희학 총장이 헌화하고 있다. ©오종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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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아버지인 서위렴 선교사는 아들의 죽음을 기리고자 5955명으로부터 1만 4500달러를 모금해 목원대에 해밀턴기념예배당을 세웠다.
현재 목원대 채플에는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의 기념 예배당, 기념 흉상이 세워져 충청권 호국보훈 교육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2010년에는 서울 은평구에 추모공원과 동상이 건립됐으며 2014년엔 해군사관학교에 흉상이 설치됐다. 국가보훈처와 한미연합군사령부는 지난 4월 윌리엄 쇼 부자(父子)를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아버지인 서위렴 선교사는 한국전쟁 당시 주한미군 군목으로 자원입대해 한국 군대에 군목제도를 도입한 공을 인정받았다.
유장환 교목실장의 추모설교로 진행된 이날 추모예배에는 대전지방보훈청 박철웅 보훈과장과 목원대 이희학 총장, 안승병 전 부총장, 학생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 21일 정오 목원대 채플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기념 흉상 앞에서 진행한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오종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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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예배에 이어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기념 흉상 앞에서 진행한 추모식에서는 대전지방보훈청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기념비를 제막했다. 이희학 총장은 “목원대는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의 희생적 사랑을 기리고자 매년 추모예배를 대학에서 진행하고 있다”며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고, 한국을 위해 희생한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의 고귀한 정신을 목원대가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오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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