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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 개척에서 3.200평 예배당으로, 예수마음교회 나상진 목사
 
보도1국   기사입력  2015/06/05 [16:28]
▲ 나상진 목사     © 오종영(발행인)

충남 논산시 채운면 용화리에서 출생한 나상진 목사, 그의 집안은 신앙과 헌신, 교회사랑이 특심한 3代때 내려오는 기독교 가문으로 부모가 은사가 충만했던 감리교 집안의 아들로 출생했으나 태어난 지 100일 만에 시름시름 앓다가 소아마비가 되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교회에 갔는데 “네 아들을 루즈벨트 대통령처럼 쓰겠다”는 음성을 들었고, 이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듣고 자랐던 나 목사는 어려서부터 ‘나는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다’라는 확신 속에 부모의 의도에 의해 어려서부터 일찍이 목사가 되고자 했으나 성장과정에 발명가나 심리학자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를 따라 한얼산기도원에 갔다가 성령을 체험했고, 이후 막연하게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따르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교회에서 기도하다가 소명을 받고 주의 길을 가기로 했으며, 당시 가깝게 지내던 침례교 목사님과의 인연으로 인해 침례신학대학교에 입학하여 침례교단의 목사가 되었고 현재 원선희 사모와 은총, 진실, 현숙, 은권 등 2남 2녀와 함께 예수마음교회를 섬기고 있다.
/사진 및 대담 : 발행인 오종영 목사
 

▣ 나 목사의 신학공부와 개척일기
다리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나 목사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치유와 은사가 매우 뜨겁게 나타났던 침례교단의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 침례교회 쪽으로 마음을 굳힌 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침례신학대학교에 입학하여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그 때 목사가 나 목사를 좋게 보았기에 나 목사는 20살 때부터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 했고, 23살 무렵부터는 침례교 청소년 집회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25살 때 나 목사는 다리의 장애문제로 인해 2년에 걸쳐 8군데의 수술을 했으며 2년 후인 1993년 12월 11일에 지금의 아내인 원선희 사모와의 결혼을 한 후 꼭 한 달 만인 12월 12일 개척을 시작하였다.
 

▣ 개척의 동기는 부모님의 성화
나 목사의 개척의 동기가 있었다. 나 목사는 말하기를 “저희 부모님은 신앙이 참 좋으십니다. 부모님께서 30여 년 동안 하는 일마다 어려움이 있어 제가 스무살 때 집안에 많은 빚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서 얼마나 신앙생활을 잘하셨는지 그런 상황에서도 시골 예배당을 짓는다 하자 더 빚을 내어서 성전 건축을 위한 헌금을 하셨습니다. 저는 걱정이 되어 ‘왜 빚이 많은데도 그러시냐!’고 묻자 아버지께서 ‘어차피 못 갚을 것 예배당을 짓고 망하자’ 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후 교회 종탑을 지을 때에도 그때당시(84년도)400만원 중 절반을 건축헌금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느냐!’고 묻자 그 당시 하나님께서 ‘네가 나를 높여주면 내가 너를 높여주겠다’라고 하시는 말씀을 받았기에 그리했다고 하셨습니다.”
 
나 목사는 25살에 다리 수술을 하고 27세에 교회개척을 했다. 당시 나 목사는 수술을 하고 일년간 깁스를 하고 다녔는데 부모님께서 왜 개척을 하지 않느냐고 그에게 물으셨고, 당시 나 목사는 예장 합동교단 소속의 ‘사랑의교회 이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 목사님은 개척 1년 만에 300명 출석 성도로 부흥시키신 분이셨다. 그런데 이 때 이 목사님을 만난 것은 나 목사의 운명을 바꾸게 되었다고 나 목사는 말한다.
 
개척 전 이 교회 저 교회를 다니던 때였는데 이 목사님은 예배 후 맨 뒷자리에 앉아있던 나목사에게 다가와서 교회의 학생부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했으나 나 목사는 한 달 후 수술이 예정되어 있어 정중히 사양했지만, 한 달이면 어떠냐면서 맡아달라고 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섬기고 있었는데 이 목사님은 교단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나 목사에게 자신과 함께 동역하면서 1년후에 100명이든 1000명이든 데리고 나가 개척하라는 제의를 했고 나중에 알고 보니 목사님은 개척을 하면서 위암 4기 상태였으며 소유에 대한 욕심이 없는 분으로 자신을 대신해서 교회를 맡아달라고 하셨으나 나 목사가 수술 후 교회를 다시 찾았을 때 이 목사님은 돌아가시고 성도들은 뿔뿔이 흩어진 후였다.
 

▣ 나 목사의 치열한 개척 시대
나 목사는 93년도에 개척을 했는데 그 당시에만 해도 부모님 사업이 번창하였기 때문에 부모님께서 개척을 도와 주실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당시 나 목사가 결혼할 때 처갓집의 반대가 심한 상황에서 결혼했기에 사모는 혼수품도 없이 하는 결혼을 했기에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나 목사는 개척을 앞두고 계속 부모님의 연락을 기다렸으나 부모님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나 목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아이들의 기저귀도 하나 살 돈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다 당시 무리해서 세탁기를 사용하다 결혼 3년 6개월 만에 완전히 모터가 타버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큰 맘 먹고 어머니께 50만원을 빌리러 갔으나 ‘천하에 못난 놈이 50만원을 못 마련해서 부모에게 빌리러 오느냐’며 크게 꾸중만 듣고 돌아왔다”고 했다.
 
나 목사는 “만약 그때 부모님께서 저를 도와주셨더라면 저는 아마 지금도 부모님만 의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도 아무리 힘들어도 부모님 생각은 들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교회가 조금씩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한다.
 

▣ 목회 전환점이 된 교통사고
그러나 18년 전(98년 1월 28일)에 나 목사는 교통사고를 냈다. 이 때는 이상할 정도로 잘 부흥하다가 정체가 되어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는 때였다. 그러다가 구정날 명절 아침에 아내와 아이들을 함께 시골에 태워다 준 후 나 목사 혼자 새벽예배를 끝내고 차를 타고 돌아가던 중에 과속을 했는데 건설현장을 보지 못하고 큰 사고가 났던 것이다. 그 때에 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나 목사를 살려주셨는데 차 수리비가 차 가격보다도 높게 나왔음에도 나 목사는 온전했던 것이다. 그 당시 나 목사의 열정은 하나님보다 앞설 정도로 기질이 엄청 강했던 때였다. 하지만 이후로 나 목사의 기질이 바뀌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신앙으로 겸손을 알게 되었다. 나 목사는 자신의 힘으로 하던 목회가 주님만을 바라보는 목회로 변화되었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게 느끼게 되었고 이후로 교회도 부흥시대를 써내려갔다.
 

▣ 장애가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 앞으로 그를 인도했다.
다른 사람들은 건강하기 때문에 운동도 여행도 많이 하고 다닌다. 그러나 나 목사는 다리 한쪽이 수술을 했음에도 불편하기 때문에 운동도 여행도 할 수가 없다. 그렇다 보니 언제나 성경을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로 나 목사는 여러 방송국과 신학대학에서 특강과 진행을 오랫동안 할 수 있었고 설교를 할 때마다 성도들이 은혜를 받는데 성도들이 은혜를 받기 전에 나 목사 자신이 먼저 은혜를 받는다고 말했다.
 
▲ 새성전 입당예배에서 예수마음교회 찬양대가 찬양을 드리고 있다.     © 오종영(발행인)


▣ 개척목회의 시작과 어려움 그리고 부흥의 세대
개척을 하면서 힘든 시기를 그 누가 피해갈 수 있겠는가? 나 목사 역시도 재정적으로 많이 어려울 때가 있었지만 이 어려움으로 인해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를 많이 경험했다. 본 기자가 만난 나 목사는 매우 열정적인 목회자이다. 영적으로도 매우 예민한 그는 하나님의 음성과 감동이 올 때마다 신속한 순종을 주저하지 않는다. 나 목사는 말하기를 “참 감사한 것은 어려울 때에 하나님이 많이 역사하셨습니다. 돌이켜보니 개척 때가 가장 은혜가 넘쳤던 것 같습니다. 그 때는 하나님께 항상 기도를 드렸는데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제가 필요한 것을 많이 채워주셨습니다. 제가 어려우니까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임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 당시보다 더 교회가 커졌지만 개척 당시가 가장 교회에 힘이 있고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라면서 나 목사는 개척하면서 단돈 만원도 후원받지 못하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달려온 지난날이었으나 그럼에도 교회를 네 번이나 옮길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필요를 채워주셨다고 고백한다.
 
특히 나 목사는 교통사고 후 성장세를 타게 되었다고 말한다. “내 힘과 열정만이 다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앞섰거든요. 그러나 다 부질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또 하나 나 목사는 목회에 있어 설교의 비중을 강조한다. 그는 말하기를 “‘말에도 무게가 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목사님들의 설교는 비슷비슷한 모습을 보입니다. 머리로 준비한 설교는 머리까지 가고, 책 읽고 준비한 설교도 머리까지 갑니다. 하지만 목사가 성경을 읽고 눈물 흘리며 준비한 설교는 가슴까지 갑니다. 성도들이 은혜 받지 못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내가 그만큼 하고 있는가를 점검해봐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은혜로운 설교를 받는 성도들이 왜 바뀌지 않느냐고 묻자 하나님께서 그렇게 은혜로운 설교를 하는 너는 왜 바뀌지 않느냐고 하시는 겁니다.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이후로 저는 성도들에게 하는 설교가 아닌 나 자신에게 하는 설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설교를 하게 되었고 이런 것이 부흥의 비결이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 이번에 3200평의 성전을 매입하여 입당예배를 드린 후 새로운 부흥의 세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매입과정과 향후 비전에 대해
나 목사는 하나님의 비전이 있어서 5년 이상 큰 건물을 찾아 헤맸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주신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 목사는, “최근 이단들이 날뛰는 현실과 교회들과 단체들이 하나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이 선교단체를 통합이 아니라 화합시키라는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건물을 이용하여 최소한의 운영비만 받고 여러 선교단체들에게 주려고 생각중입니다. 그래서 서로 기도하고 협력하며 한 달에 한번이라도 함께 기도하고 예배드리며 이단에 대항한다면 큰 힘이 될 것이라 믿거든요” 라고 말했다.
 
또한 나 목사는 초등학교 과정의 기독학교를 꿈꾸고 있다. 하나님은 그에게 건물을 주셨다. 지금은 미약하지만 서서히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다. 그는 말하기를 “판검사는 전도하기 쉽지 않지만 판검사가 될 아이들을 전도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지금 대전에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 중·고등학교는 있지만 초등학교는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할 수 있도록 큰 건물을 주셨고 미약하게나마 서서히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지금 인터넷을 검색하면 가장 많이 검색되는 기독교 채널이 ‘신천지’나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제가 이런 것들에 대항하는 사이버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희망이 있습니다. 이런 점에 대해서 조금씩 준비 중에 있다”고 말했다.
 

▣ 예수마음교회의 주요사역 - 선교는 지상명령
예수마음교회는 선교(해외선교 국내선교)에도 집중하고 있다. 해외에는 현재 2명의 선교사를 파송했으며 곧 1명이 더 파송되어 총 3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게 된다. 현재는 우크라이나에 한재성 선교사와 김수민 선교사 가정을 파송했으며 올 연말에는 이재웅 선교사를 터키로 파송할 예정이다. 나 목사가 원하는 것은 예수마음교회를 통해서 10명이상의 선교사가 파송이 되고 예수마음교회가 어느 정도 든든히 서서 선교사님들의 노후나 그분들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의 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선교사님들의 거처문제나 연금 등을 마련하여 그분들이 생활하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해드리고자 하는 꿈을 갖고 기도하고 있다. 그래서 영적으로나 물적으로나 이 부분에 대한 투자를 최우선의 과제로 삼고 있다고 말한다.
 
국내전도는 화요일마다 부침개 전도를 통해 지역사회에 예수마음교회를 알리는 일을 십 수년째 하고 있으며, 목요일에는 길거리 전도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 용문동에서 탄방동으로, 탄방동에서 괴정동으로
예수마음교회는 용문동에서의 개척시대를 거쳐 수년 전 탄방동으로, 그리고 올 봄 괴정동으로 이전하면서 외형적으로나 내적으로 상승곡선을 타며 부흥을 경험하고 있다.
 
예수마음교회는 서구 용문동 269-8번지에서 나대지 위에 조립식으로 지어진 건물 (40평)에서 시작-150평으로 증축-용문동 268-20번지로 8억짜리 건물을 돈 없이 사서 목회하다가 탄방동 633번지에 소재한 두 번째 예배당으로 이전-이후 4년 만에 괴정동 110-9번지에 소재한 구, 경성스포츠 건물(3,200여평)으로 이전하게 된 것이다.
 
특히 탄방동에서 괴정동으로의 이전은 외형적으로 10배 크기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전과 관련 나 목사는 이전하기 전 하나님께서 저에게 분명히 신명기 6장 10절-11절 말씀을 주셨는데 그 말씀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제게 심지 아니한 것, 짓지 아니한 것을 주신다는 것”이었다며 이는 이미 준비되어진(지어진 건물)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이후의 모든 일은 순적하게 진행되었다. 이전하여 입당할 때까지 성도들과 큰 어려움 없이 과정을 진행해 왔다. 물론 이사할 당시 재정적으로 어려운 점은 있었으나 나 목사는 주특기를 살려 산 기도에 매달렸고, 다녀올 때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제정적인 어려움을 해결해주셨다고 말했다.
 

▣ 나 목사의 목회철학과 집중사역
나 목사는 자신이 지금까지 목회하기 전에 예수마음교회에는 비전이 있었다고 소개한다. ‘예수마음 모든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하게 이르게 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나 목사는 말하기를 교회에서는 열심히 하는듯하나 가정이나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예수 없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보내주신 성도들을 ‘참 그리스도인들로 양성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즉 알곡성도를 위해 집중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이를 위해 나 목사가 집중하고자 했던 사역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목회균형’이었다. 말씀, 기도, 교제, 전도의 균형을 생각한 것이다. 왜냐하면 말씀만 너무 가르치면 성도가 교만해지고 기도만 많이 하면 현실적이지 못하고 영적인 부분만 추구하게 되고, 또 교제만 추구하면 교회가 사교단체가 되며, 전도만 하게 되면 화살통에 화살 없듯이 안한 것 만 못한 것이 되고 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균형 목회를 목회철학으로 삼고 사역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나 목사의 장점이 있다면 그것은 친화력이다. 나 목사는 말하기를 자신은 행정력이 많이 약하지만 장점은 친화력으로 그 누구와도 인간관계가 좋다고 말한다. 수 백명의 성도들과 모두 다 사이가 좋다. 심지어 교회를 다니다가 나간 사람들과도 관계가 좋다. 아마도 이것은 하나님이 천성적으로 선물하신 성격인 듯하다.
 

▣ 마지막으로 남기실 말씀은
제가 볼 때에 건물이 커진 것은 별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들어찬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마음교회가 이번에 입당한 교회는 약 3200여평에 달한다. 그런데 이 건물은 나 목사와 예수마음교회 비전대로 주신 건물이다. 하나님의 비전대로 순종했더니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이에 나 목사는 이 건물은 복지와 교육, 선교단체를 위해 사용할 것이라면서 “그동안 성도님들이 저를 믿고 따라주신 것에 너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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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6/05 [16:28]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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