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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맹현 장로(라이즈업코리아 사무총장) 37호
이력서를 써보자
 
한혜림 편집기자   기사입력  2013/04/15 [16:07]
▲ 윤맹현 장로(라이즈업코리아 사무총장)     ©편집국
겨울이 계절의 끝자락을 잡고 놓지 않는데도 차창 밖 풍경이 사뭇 화사하다. 찬바람을 뚫고 기차는 달리는데 얼른 보니 건너편 옆 좌석에 앉은 자매가 부지런히 얼굴을 다듬고 있다. 아예 화장품 파우치를 꺼내 열심히 다듬고 갤노트 2의 두 배 싸이즈 만한 거울을 꺼내 여기저기 열심히 비춰보더니, 끝이 났는지, 어느 틈엔가 열심히 무얼 적고 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자세히 보니 이력서다. 아.. 서울에 있는 어느 회사인지 기관인지에 제출하러 가나보다. 누군지는 몰라도 딸 같은 젊은이라 잘 되었으면 좋겠다. 문득 오래 전에 미국 어느 기관에서 이력서를 요구하여 열심히 다듬던 기억의 실마리를 끄집어내다.
 
대학 졸업하고 사회생활 시작부터 공 기관에서 편하게 지내던 경력자라 평생 써볼 일이 없던 이력서 작성만은 그래서 무척 낯설었다. 그리고 60이 넘은 주제에 뻘쭘하게 시리 무슨 이력서람~~하는 생각에 마지못해 책상에 앉았는데 글자체도 수십가지라 어느 것을 택해야 할지 앞이 아득하다.
 
아.. 이런 일은 옛날에 비서가 잘 도와주었는데, 몸소 하려니 온 몸에 두드러기가 돋는다. 여기저기 인터넷 써핑을 거친 후 나름대로 작업에 착수했는데 기본 인적사항에 지나온 직책과 업적 등을 가까스로 정리하여 한 페이지 정도 만들어 보냈더니 즉각 반송조치 당한다.
 
가만히 들어보니 이력서를 요구하는 기관의 성격에 맞지 않으므로 새로 해달란다. 그러면서 샘플 이력서를 친절하게도 첨부해왔다. 남에게 내 속을 열어 보이는 것 자체가 쑥스럽기 짝이 없는 노릇인데 형식이 맞지 않다고 반송 당하니 이 나이와 경력에 그것도  몰랐냐 하는 질책이 몰려오는 것 같아 출처를 알 수 없는 자괴감이 엄습해왔다.
 
보내준 샘플 이력서를 보니 우와~ 장난이 아니다. 20여 페이지에 미주알고주알 다 기록한 것 보고는 주눅이 들었다. 중간에서 다리를 놓으신 분만 아니면 포기하고 털어 버리고 싶었는데 그리하지도 못하고 무척 끙끙거렸다. 한 나절 반을 꼬박 워드와 씨름을 하면서 그래도 몇 가지 터득한 것이 있다. 뇌신경세포 사이에 비집고 들어앉아 은폐 엄폐된 정보들을 찾아내어 정리한다는 것이 짚더미에서 바늘 찾기다.
 
무척 어렵다. 과거 자랑할만한 일이라면 꼬투리라도 끄집어내어 기록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나열해보았는데 읽는 자들을 기절 시킬만한 것도 대박 칠만한 것이 나오지 않는다. 근무당시 회사 성과가 아주 좋았다고 해도 내가 직접 기여한 것이 미약해서 기록할 수가 없고 최근에 중국어를 3개월 여 자습해서 창세기와 요한복음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자해도 공인기록이 없으니 해당사항이 없다.
 
옛날 뱅쿠버, 시드니 등 해외행사에서 논문 발표했던 일을 간신히 기억해냈는데 제목은 아지랑이 아롱거려서 줄거리를 붙잡고 새로 창안하다시피 했고 다른 나라에서 했던 발표내용은 연도와 제목도 생각이 잘 나지 않아 포기하다.
 
재직 중에 빛나는 업적이 생각이 나지 않아 성공사례 하나를 꺼내 단순 참여했던 사실을 “주도자”로 도색하고, 아무것도 아닌 나룻배를 각색하여 항공모함으로 개조하여 과대포장 하고 싶었는데 최근 회자하는 표절 뉴스 광풍에 그런 생각마저 다 날아가 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자랑거리 보다 실수했던 것이 자꾸 떠오른다.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지금쯤 한 작품이 되었음직한 것들이 많은 아쉬움 속에 잘 자란 콩나물 대가리처럼 머리를 들이댄다. 하여간 딱 하루 반나절을 투입하여 간신히 모양을 갖추었다.
 
이렇게 힘든 작업을 좀 더 일찍 마련해두고 틈틈이 보완하고 다듬으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빛나는 이력서를 만들기 위해 더 열심히 그리고 더 충성스럽게 삶에 충실했을 텐데…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마무리를 하고 말았다. 이 땅에 삶을 다 마치고 주님 앞에 서서 직고할 때, 이력서를 내놓아야 할텐데 어찌할까.
 
내가 누렸던 지위와 재산과 이기적인 자식사랑과 명예와 체면에 관한 것들은 수십 장을 적어내도 주님이 거들떠보지도 않으실 것이고 오직 십자가의 길로만 걸어갔던 것을 인정하실 것인데 무엇을 내놓을 수 있을까 무척 궁금해졌다. 아....이력서를 준비하자. 이 60대 중반의 나이에, 아니 60이 훨씬 넘었으니 반드시 이력서를 써보자. 그래서 남은 인생 아쉬움이 더는 없도록 충실히 살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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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4/15 [16:07]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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