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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H.G. Underwood, 원두우 元杜尤, 1859-1916)선교사, 목사, 연희전문학교 설립 ②
이선이(장로회신학대학교 선교신학(Th.D), 필리핀 아태장신대(APCCS)교수)
 
편집부   기사입력  2020/02/06 [15:36]

1889년 호주 선교사 데이비스(Joseph H. Davies)가 입국하여 부산선교를 구상하고 있을 때 선교부 간의 연합을 위하여 미국 호주 빅토리아 장로교회 연합선교회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그는 순회전도를 통하여 한국의 자연과 지리를 익히고 여러 교회를 개척하였다. 1889년 제중원 의사였던 릴리어스 호튼(Lillias Horton)과 결혼하였는데 건강이 악화되어 미국으로 돌아갔다. 1892년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서 병든 환자와 고아들을 돌보는데 헌신했다.

 

1889년 한국예수교성교서회(聖敎書會, 후에 대한기독교서회(大韓基督敎書會))를 창설하여, 성서번역위원회를 조직하고 회장을 역임하며 성서번역사업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1905년 신약성경, 1911년 구약성경이 차례로 연간됨으로써 한국어 성경전서가 출간되었다. 문서를 통한 선교실무를 관장했으며, 《한국어문법》을 편찬하고 간행했다. 1897년 〈그리스도신문〉 창간, 1900년도 초 개신교 양평동교회를 설립하였다. 1900년 기독교청년회(YMCA) 조직에 기여하였다. 1915년 경신학교에 대학부를 설치하여 연희전문학교의 설립에 바탕을 마련했다. 그 밖에 세브란스의학교, 피어선성경학원, 평양장로교신학교 등의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성서번역사업에도 커다란 기여를 하여 한국 최초로 찬송가를 간행했다. 1890년 뉴욕대학교에서 명예신학박사, 1912년 명예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언더우드는 전도가 활발한 지역이었던 북한 지역세어의 전도여행을 세 차례나 했다. 학생 시절에 피어선 박사에게 영향을 받았던 인연으로 후에 피어선기념성경학원(현재 평택대학교)에서 교장을 1912년부터 1916년까지 역임하였다. 성서 번역에도 공헌하였는데 1887년에 상임성서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아펜젤러와 함께 마가복음서의 한글판을 번역, 출간하였다.

 

또한 언더우드는 뛰어난 복음주의 설교가이기도 했다. 〈기독교사상〉에 연재되는 언더우드 설교집에 따르면 예수님의 부활,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알기 쉽도록 전달했다. 언더우드는 일제에 의해 반일인사로 여겨질 만큼 한국 독립을 적극 옹오했다. 그는 라디오 방송에 “참고 견딘다면 해방의 날이 올 것입니다”라고 연설하기도 했으며, 일제는 물론 친일 성향의 선교사들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그는 조선어 문법책을 영어로 집필했을 뿐만 아니라 그 후 성서번역위원회 초대 위원장, 대한기독교서회 회장, 한국기독교교육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한편 예수교학당, 서울 구세학당, 연희전문학교를 설립하였다. 또한 교회연합운동을 지도하는 등 한국의 종교, 문화, 언어, 정치, 사회 등 여러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건강 악화로 미국에 돌아가 1916년 10월 12일 미국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의 병원에서 별세했으며 후에 양화진 외인 묘지에 안장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어문법》(1889), 《한어사전》(1890), 《한영사전》·《영한사전》(1890), 《한국선교 23년》(1908) 등이 있다.

 

언더우드 가문은 4대를 이어 한국을 사랑하였다. 언더우드 가문과 우리나라의 인연은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원두우)가 1885년 조선에 입국하면서 시작되었다. 언더우드 2세(Horace Horton Underwood, 원한경, 1890-1951)는 1912년 9월 선교사로 내한하여 1917년 연희전문학교에서 한국 최초로 ‘사회학’이란 과목을 개설하여 강의했다. 1919년 3·1운동을 맞아 제암리 학살 사건 등 일제의 만행을 전세계에 알렸다. 경신학교 교사, 연희전문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였고, 영국의 왕립아시아학회 조선지부 부회장으로 한국 관계 논문을 많이 발표하였다.

 

언더우드 3세(Horace G. Underwood, 원일한, 1917-2004)는 서울에서 태어나 연희전문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광복 이후 한국에 돌아와 연희전문학교의 후신인 연세대학교 복구사업에 전념하였다. 6·25전쟁 때 해군 대위로 참전하고 연세대학교에서 한국 교육의 발전을 위해 일하고, 한미교육위원단 운영위원, 한미협회 부회장을 지내면서 한미 우호 증진에 이바지했다.

 

언더우드 4세(Horace H. Underwood, 원한광)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 학살을 세계에 알려서 전두환 국사독재정권에 의하여 추방당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언더우드 가문의 한국 사랑을 인정하고 2004년 국민훈장모란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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