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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공동체 135호
오주원 장로/한남대학교 명예교수
 
편집국   기사입력  2017/01/13 [14:46]
▲ 오주원 장로 ▲한남대학교 교수, 전 전국대학교수선교회장     ©편집국
조선의 영조실록 제35권을 보면, 영조 9년 7월 6일과 7일에 ‘임금이 복부에 편안치 못한 증세가 있었다’는 기록이 연속 나온다. 8일에는 증세가 덜해지고 9일에는 회복되었다고 나오는데 한 달 후 8월 8일에는 ‘임금의 병이 좀 안정되다’ 고 나오는 것으로 보아 계속 병으로 고생하신 것 같다.
 
11일에는 ‘임금의 환후로 국기일(國忌日)에 소식을 거행하기 어렵다고 하니 임금이 거절하다. 임금의 환후로 헌릉의 전알(展謁)을 미루다’는 내용으로 보아 병이 더 심해졌고 18일에는 ‘임금이 뜸을 떴다’, 21일에는 ‘임금이 연일 뜸을 뜨다’는 내용이 나온다. 22일에는 ‘뜸뜰 때의 괴로움을 생각하여 국옥 때에 낙형(烙刑)을 금하도록 명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야기를 좀 풀어보면 이렇다. 영조 임금은 1733년 7월의 어느 날 아랫배가 편안치 못한 증세를 느낀다. 종기였다. 병이 회복하다 다시 중해져서 약으로도 별 효험이 없자 8월에는 뜸 치료를 받게 된다. 그것도 뜸자리까지 종기가 번진 상태여서 병이 쉽게 낫지를 않자 매일매일 뜸을 뜨게 된다. 종기가 난 자리를 연거푸 태우니 살타는 냄새며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살이 타들어가는 고통으로 괴로워하던 영조는 당시 조선에서 허용되던 죄인의 몸을 불에 달군 쇠로 지지던 단근질이라는 낙형을 떠올린다. 뜸뜬 자리의 종기가 타들어가는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국청(鞫廳)에서 낙형으로 고문할 때 고통스러워하던 죄인들의 처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 고통을 경험한 영조는 이 뒤로는 낙형(단근질)을 영구히 금하도록 하라는 명을 내리게 된다.
 
생각해보면 영조는 뜸을 뜨기 전이나 후나 모두 낙형은 고통스럽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낙형의 고통을 이용하여 자백을 받아내려고 낙형을 허용한 것은 뜸을 뜨기 전에도 낙형의 고통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뜸을 통해 고통을 경험한 후에 낙형을 금지시킨 것도 낙형의 고통을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무엇이 다를까. 두 경우 모두 낙형의 고통을 이해하고 있지만 그 고통을 겪어보기 전과 후의 행동은 정 반대의 결과로 나타났다.
 
세상을 사노라면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국내에서 일어난 최순실 게이트나 대통령의 많은 행동들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찌도 이렇게 다른지 이해되지 않는다. 한 집에서 함께 사는 아내와 아들들의 생각이나 행동도 이해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사람이 경험하고 알 수 있는 것들이 개인마다 다 다르고 너무도 부분적이고 제한적이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이해는 꼭 필요한 요소다. 이해되지 않는 것이 많을수록 그 공동체는 불편하고 다투게 되고 파국을 향하여 나아가게 만든다. 어쩌면 모든 것을 경험해 볼 수 없기에 사람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 있으나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성숙한 사람들의 건강한 공동체 모습일 것이다.
 
이해의 의미는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하는 것, 깨달아 아는 것, 또는 잘 알아서 받아들이는 것 등으로 경우에 따라 약간의 다른 느낌들을 가지고 있다. 이해한다는 것이 ‘알아서 설명할 수 있는 정도’ 에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정도’ 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해는 되나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이해되지는 않으나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영조 임금처럼 경험을 통하여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면 최상이다. 차선으로는 이해되지 않을 때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지는 사회다.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이유는 구성원간의 믿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건강한 공동체는 무엇보다도 이해와 믿음이 필요하다. 그 믿음은 공동체의 정직, 투명성, 공평과 정의, 자유과 평등,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약자에 대한 배려 등의 성숙도에 비례하여 자란다. 그러한 믿음이 없는 불신의 공동체는 항상 의혹과 다툼과 분열로 고통스러운 사회가 된다.
 
불신이 조장되는 공동체는 자기중심. 부정직, 불투명, 지배의식, 제도적 불합리, 불공평한 법집행, 무능하고 부정직한 지도자 등이 득세하는 사회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여 잘 못될 수 있다. 특히 불투명한 곳에서 비밀스럽게 일하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자신도 보호하고 공동체를 보호하는 방법은 자신의 공적업무를 공개하고 투명하게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가정과 교회와 국가에서 구성원간의 이해도를 높이고 믿음의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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