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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맹현 장로(라이즈업코리아사무총장) 51호
<슬로우 라이프>
 
한혜림 편집기자   기사입력  2013/10/25 [16:50]
▲ 윤맹현 장로(라이즈업코리아 사무총장)     ©편집국

얼마전부터 지공대사가 되었다. 지공!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자격 말이다. 대전은 물론이고 전국 도시의 지하철에 돈을 안 내고도 올라탈 자격이 있다. 서울에서 천안을 거쳐 온양까지, 혹은 항상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인천공항까지 갈 수 있다 생각하면 가슴이 뿌듯하다. 이런 저런 사유로 공짜표가 15% 나 된다는데 꼭 이만큼 적자를 본다니 좀 안되었다 싶기는 한데, 그렇다고 내가 어떻게 해줄 묘안이 없다.

얼마전, 이 엄청난 특권을 제대로 누려보리라 하고 서울에 가면서 일부러 무궁화호 표를 천안까지 경로석으로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3200원에 사고 천안에서 서울 도심까지 지하철을 탔다. 느린 시간과 게임을 해야 할 수도 있으니 적당히 읽을거리도 마련하고 아주 편안한 복장으로 나섰는데 우리집 식구들이 그게 뭐하는 짓이냐고 난리지만 내가 누린 그 행복감을 어디서 찾으리.

월요일인가 하면 금방 금요일이고 뒤를 돌아보면 무엇을 했는지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세월의 속도를 따라 잡지를 못했는데, 쉬어쉬엄 가는 이 열차 속에서는 열차속도와 생각의 속도가 어금버금해서 정신이 차려지고 깊이 생각 속에 잠기게도 한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약속도 없으니 늦을까 조바심도 없는 완전한 자유다. 한 시간이 걸리든 세 시간이 걸리든 상관할 바 아니다.

그러고 보니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추격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속페달을 밟으며 혹여 뒤질세라 밀릴세라 그렇게 뛰었다. 앞만 보고 뛰다보니 같이 뛰는 동료가 절뚝거려 나까지 피해를 당하면 이해해주기는 커녕 내가 입은 손해만 계산했고 뒤에 흩어진 수많은 낙오자들에게 연민의 눈길도 한번 주지 않았던 것 같다.
 
 마침 가져간 중국어 성경으로 이사야 55장을 읽는데 “너희가 어찌하여 (그)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그)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 우리 성경과 약간 다르게 (그)를 삽입 강조하여 세상 것들의 무가치함이 훨씬 더 강조된 것을 읽으며 우리성경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특별한 은혜를 맛보았다. 아..맞다 맞다, 정말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내 젊은 때를 최선을 다해 소비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소비했다.
 
중간 과정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예 무시하거나 안중에 없었으니 기억이 날 리가 없다. 2008년 8월 공기업 사장 자리에서 이임식을 하고 내려오는데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 옆에서 보는 직원들에게 미안할 정도였는데 인생의 한 단원을 접는다는 생각보다  아직도 채우지 못한 욕심과 미련이 날 울렸던것이리라. 은퇴를 하고서도 아쉬운 생각에 여기 저기 기웃거리면서도 주님이 날 도와주시지 않는다고 불평을 늘어놓았으니 내 65년 평생이 주님 앞에서 과연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열차는 내가 생각도 못한 정거장에 선다. 황금색 들판도 눈에 들어오고 나무에 감들이 주렁주렁 했는데, 풍년인 줄 아는지 지나가는 새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놈들은 나보다도 눈치가  빠르다. 한 줄기 바람으로 관통할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많은 사람들이 조각구름처럼 몰려오고 또 내려간다.
 
빨리 지나가버렸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과 삶의 흔적들을 엿본다. 이전에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 모두 신선하고 궁금하다. 여기 느린 삶에도 애틋함이 있고 처절함과 치열함이 읽히는 것은 나 혼자의 착각일까. 그러고 보니 나를 지치게 했던 것들이 안 해도  될 약속들이었고 쓸데없는 프로젝트였고 공연한 바람만 일으키는 행사들이었다. 이제는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편안하다.
 
1977년 우주 탐사를 위해 창공으로 발사된 보이져 1호가 지구를 떠난 지 13년째 되는 1990년 2월초, 시속 18km의 속도로 지구로부터 64억 km 떨어진 명왕성 궤도를 지나면서 수명이 다 된 배터리의 마지막 힘을 다해 지구를 촬영하여 보내왔는데, 지구는 우주공간 광선의 줄 속에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으로 빛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사업의 책임자 칼 세이건 박사는 “우주공간에 외로이 떠있는 한 점을 보라. 우리는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사랑하는 남녀, 어머니와 아버지, 성자와 죄인 등 모든 인류가 여기에, 이 햇빛 속에 떠도는 티끌과 같은 작은 천체에 살았던 것이다. 바로 이 한 점, 지구 위에 아름다운 시와 음악과 사랑이 있는가 하면 전쟁과 기근, 증오와 잔인한 행위가 그치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 속에... 불안한 삶을 살아간다.”

가슴이 찡하다. 가진 자 못 가진 자, 귀한 자 천한 자가 인류가 지나온 역사와 함께 모두 하나의 푸른점에 압축되어있다. 급행열차처럼 꽥꽥거리며 숨가쁘게 달리지만 말고 하나님이 주신 이 공간과 시간을 충분히 음미하며 누리며 사랑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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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10/25 [16:50]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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