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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의 “사생관”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
 
한혜림 편집기자   기사입력  2014/04/29 [15:30]

 
▲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     ©편집국

최기남(崔奇男, 1586-1669)은 집이 가난해 궁노(宮奴)로 살았지만 글재주가 뛰어나 사대부들도 칭찬했다. 동양위(東陽尉)는 그의 시집 서문에 “학문을 한 것은 선(禪)에 가깝고, 시를 지은 것은 당(唐)에 가까우니 반드시 오묘한 경지에 들어감으로써 신통한 이해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 아, 슬프다. 이 사람의 시를 힘으로 빼앗을 수 있다면 고귀하고 권세 있는 유력자들에게 빼앗긴바 된지가 벌써 오래였을 것이다. 조물주께서 그의 가난하고도 미천함을 슬퍼하여 시로서 이름이 나게 하신 것인가?”라고 했다.
 
 백헌(百軒) 이경석(李景奭)도 그를 칭찬해 시집 서문에 “무릇 그의 학문은 경전을 널리 종합한 것인데 특히 「주역」에서 터득한 바가 있어 직접 베끼고 즐겨 보았다. 글 숲에서도 근원을 찾고, 오묘한 곳을 캐어 고체는 「문선」을 따르고 율시는 두보를 주로 배웠으니 바른 소리와 맑은 운이 낭랑해서 외울만했다.”라고 썼다.
 
崔奇男이 63세에 병으로 누워 자기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를 도연명 시에 비교해 지었는데 그 일부를 소개한다. “조화에 따라 죽음으로 돌아가니 육십 평생을 어찌 짧다 하랴 스승과 벗들을 잃게 되고 이름 남길 만큼 좋은 일 못 한 것만 한스러워라 혼백은 흩어져서 어디로 가나 무덤 앞 나무에선 바람이 울부짖겠지 세상사는 동안 아름다운 시 못 남겼으니 그 누가 곡(哭)하며 내 죽음 슬퍼하랴 아내와 자식 놈들이야 운다고 하겠지만 어두운 땅속에서 내 어찌 들으랴 귀한 자의 영화도 돌아보지 않았거든 천한자의 치욕을 내 어찌 알랴 푸른 산 흰 구름 속에 돌아가 누우면 부족함이 없으리라” 그 뒤 그의 나이 일흔 살이 되어 또 병세가 심해지니 그 스스로 다음과 같이 제문(祭文)을 지어 놨다. “자연으로 돌아가 마치는 것은 대역(大易)의 지극한 이치요, 삶으로 나왔다가 죽음으로 들어가는 것은 현원(玄元)의 오묘한 뜻이로다. 옴이 있고 감이 있는 것은 저승과 이승의 필연이요, 하루 낮이 있고 하루 밤이 있는 것은 어둠과 밝음의 당연한 이치이다. 이승으로 왔다고 어찌 기쁘며, 저승으로 간다고 어찌 슬프리요? 아내와 자식들이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것은 참으로 고달프기나 하지 이로움이 없고, 벗과 손님들이 조문한다고 찾아오는 것도 헛되이 울부짖기나 하는 일이니 따라하지 말지라. 죽음을 타고 돌아감에 천지를 여관으로 삼았고, 세상을 벗어나 그 혼이 들리움에 그 육신을 허수아비처럼 여겼도다. 오호라! 나무관 하나 속에 몸을 움츠리고 일만 가지 세상 인연과도 끊어졌구나. 나무들은 가을바람에 울부짖고, 골짜기는 샘솟는 소리에 울리네. 그대에게 단술을 따라 바치고 지전을 살라 혼을 부르는 도다. 아무것도 남지 않고 이미 스러졌으니, 아득하기만 할 뿐 대답이 없구나. 소나무 잣나무 가득한 산에 한 무더기 흙무덤만 새로 솟았구나.”

 崔奇男은 자기의 죽음을 소재로 만시(?詩)와 제문(祭文)을 이렇게 썼다.
 하늘과 땅 사이에 홀로 서서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보며 살아왔다. 이 세상에서 특별히 알아주는 이 없어도 나이 일흔 넷이 되도록 아무 병도 없이 한가롭게 지내다 세상을 떠났다. 지혜를 교묘히 이용해 남보다 앞서기를 다투며 좋은 기회를 틈타서 남들을 깔보다가 형벌을 받고 말년을 더럽히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얼마나 평안하고 대담한가. 평생 동안 분수를 지켜 겸손하게 살고 정도가 아니라면 터럭 하나라도 놀라고 두려워 피해가는 삶. 신(神)에게서 꾸지람이 없었고, 사람들에게서도 비난이 없으며, 맑은 세상의 한가로운 사람으로 살다 가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멋있는가?

 존 스토트 목사는 성경전체를 두 동산의 이야기로 압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에덴동산과 겟세마네동산이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아담과 하와의 뜻대로 살았고 그 결과 실낙원(Lost Paradise)의 슬픈 역사가 시작됐다.
 
겟세마네동산은 예수님의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여 결국 하나님의 뜻은 존귀하게 보존됐지만 예수님은 정치범으로 재판받고 십자가 사형 틀에서 죽임을 당했다. 그 결과 우리 인류들에게 빌 길을 주셨고 구원의 대도를 열어놓았다. 모든 인류에게 소망과 회복의 기회를 준 것이다.
 
죽음은 세상에서 하늘로 이동하는 정류장(혹은 비행장) 같은 것이다. 아름다운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세상 여행일정을 다 마치고 고향집으로 되돌아가는 행선이 되는 것이다. 오랜 옛날 한 시인이 이해한 죽음의 정의와 제문을 보면서 우리들도 자신의 죽음에 대해 시 한수나 제문 한편을 써놓는 것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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