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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의사는 사형선고를, 하나님은 새 생명을”
“십자가 체험으로 새로워진” 한사랑감리교회 최병선 원로 목사의 간증 수기
 
편집부   기사입력  2022/05/09 [17:08]
▲ 최병선 목사(한사랑교회)     ©오종영(발행인)

이 시간을 빌어 저의 간증을 나누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저를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십자가의 체험을 통해 저를 다시 새롭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올 수 없었고, 지금도 저를 새롭게 하시고 저의 매일 매일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무궁한 영광을 돌립니다. 

 

어린 시절 및 신학을 시작하게 된 계기 

저의 어린 시절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어릴 적 목수이신 아버지와 전도사이신 어머니 밑에서 3남 4녀의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공무원 시험을 보았습니다. 공무원 시험 합격 후 발령을 받아 7년을 근무했습니다. 7년 근무를 한 후 든 생각은 부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 생각에 대학에서 경영학과를 공부하고 졸업하여 무역 쪽으로 사업을 하면 부자가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7년 동안 일했던 공무원을 사임하고 서울로 가서 고시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던 중 어느 날, 각혈이 나와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저에게 “무엇을 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늦은 나이에 대학입학 공부한다는 사실이 창피해서 “고시 공부합니다.”라고 둘러대었습니다. 그러자 의사가 “결핵이니, 잘 먹고 푹 쉬세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독서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으니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한참 울다가 하나님께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면, 제가 신학을 하겠습니다.”라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 제1교회 개척교회     © 편집부
▲ 제2성전 건축후 완공 모습     © 편집부

 

신학교 입학 및 교회 개척 

저의 간절한 기도가 하나님께 응답된 것일까요.

 

저는 후에 건강이 좋아져서 신학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신학대학 4년 후 졸업 후 어디에서 목회를 할까 생각을 해보니 시골보다는 도시에서 개척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1987년에 교회 개척을 하였습니다. (상가 3층 30평, 보증금 600만원, 월세 10만원) 개척 후 몇 년 동안 열심히 교회를 섬겼는데 이상하게도 피로감이 많이 느껴져 병원에서 검사를 했더니 만성 간염 진단이 나왔습니다.

 

▲ 첫번째 개척예배 후 성도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오른쪽이 최병선 목사)     © 편집부

 

몸이 차츰 야위어 가고 몸 상태가 점점 나빠져 간경화까지 되었습니다. 그래도 교회사역은 계속 했습니다. 1991년에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250평의 성전도 건축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건강이 악화되어 간경화 말기 합병증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1991년, 부지를 사서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부지 옆에 절이 있었습니다. 이 절에서 계속된 핍박이 있었지만 결국 그 절은 망해서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로 찾아온 합병증은 패혈증이었습니다. 패혈증으로 서울 아산 병원에 입원해있는 중, 밤 12시에 의사가 아내에게 “당신 남편은 3일 이내에 죽을 확률이 90%입니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얼굴을 봐야하는 사람을 부르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주도에 사는 여동생들까지 저를 보기 위해 서울로 왔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고 정신을 못 차릴 수도 있었는데, 정말 의연한 자세로 요한복음 11장 4절(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이 일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을 저에게 따라하게 하였습니다. 이런 소식을 듣고 가족들과 교인들은 밤을 새우며 3일 동안 릴레이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이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셔서 저는 기적적으로 패혈증이 치료되었습니다. 옆에 있던 환자가 죽어 나가는 걸 보기도 했지만... 

 

▲ 두번째 교회 건축 후 예배 모습     © 편집부

 

두 번째 위기 – 일곱 번의 간경화 합병증 

패혈증은 치료되었지만, 혼수상태, 복막염 등 일곱 번의 간경화 합병증이 찾아와 생사를 넘나들면서 119 앰뷸런스를 타고 응급실을 드나들었습니다. 혼수상태가 심할 때는 저를 위해 기도해주기 위해 사택에 모인 교인들이 “목사님, 제가 누구죠?”라고 물을 때 그 분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이옥구요”(아내 이름)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정도로 혼수상태가 심각했었습니다. 

 

첫 번째 간이식 수술 후 첫번째 십자가 체험 

일곱 번의 위기를 맞으며 저는 기도원에 가서 지내기도 하고, 또 공기 좋은 산 속에서 생활하며 하나님의 직접적인 치유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간이식이라는 방법으로 저를 치유하셨습니다. 간이식을 하려면 당시에 (1999년) 간이식을 하기 위한 수술 금액이 1억이 필요했고, 간을 떼어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아내가 간을 이식해주기로 하고, 검사를 받았습니다. 기적적으로 저와 아내의 간 조직이 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정말 드문 경우인데,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이었습니다.

 

또한 저의 형제들과 담임한 교회 성도님들, 선배 목사님들의 도움으로 1억원이 기적적으로 마련되었습니다. 그래서 1999년 12월 14일, 22시간에 걸친 첫번째 간이식 수술을 은혜 가운데 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간을 이식해준 아내는 수술 후 몸을 회복하며 너무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여보! 의사가 실수로 배 속에 가위를 넣고 봉합한 것 같아! 의사에게 내 배 좀 다시 봐달라고 해줘”라고 할 정도로 너무 힘들어 했습니다. 저는 이런 말을 들으면서도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저 역시 수술 후 회복하는 기간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오르시는 예수님이 기억날 정도로 힘든 회복 기간이었습니다. 침대에서 몸을 끌고 내려와서 한발자국을 떼는 것이 죽기보다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의사는 저에게 1시간씩 걸으라고 했지만 한 발자국을 떼는 것조차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수술 직후였기 때문에 수술 부위가 아물지도 않았고 살이 찢어지는 고통이었습니다. 제가 하루에 1시간씩 걷는 것에 비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었을까요. 이를 생각하니 제가 죄인이라는 사실에 그저 눈물이 흐를 뿐이었습니다. 저는 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옆에 간호하시는 할머님을 붙잡고, “할머니, 제가 죄인이에요”라고 하자 할머니가 “다 그렇지 뭐”라고 하시더군요.

 

이런 십자가 체험을 하기 전에는 보혈찬송이 살벌해서 부르지 않았던 제가 십자가 체험 이후에는 보혈찬송을 계속 부르게 되었습니다. 또한 전에는 내 교회밖에 몰랐는데, 이후로는 다른 교회도 주님의 교회인줄 알고 건축 부채가 남아있었지만 선교비를 보냈습니다. 

 

▲ 제3성전 경성스포츠센터     © 편집부

 

두 번째 간이식 수술 후 두 번째 십자가 체험 

수술 후 회복하면서 하나님이 왜 저를 살리셨을까? 를 생각했습니다. 영혼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지금 있는 교회도 좋지만 더 많은 영혼을 구하려면 더 큰 성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는 중에 교회 인근에 스포츠 빌딩이 매매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3천평 가량의 건물을 45억에 계약을 했습니다.

 

성전을 그곳으로 이전하기 전, 탈장수술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달이 지났는데도 상처 부위가 아물지 않았습니다. 탈장수술을 한 교수가 말하기를 “아무래도 간에 이상이 있는 듯 보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간 담당 교수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CT를 찍자고 했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심각한 얼굴의 교수는 저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간이 다시 나빠졌네요. 재수술을 하셔야 합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표현을 이 때 쓰는 것일까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수술을 하려면, 수술비와 공여 받아야 할 간이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앞길이 막막했습니다.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주위 분들에게 기도부탁을 드리며, 혹시 공여자를 찾을 수 있는지 찾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주위에서 열 분 정도 간을 이식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열 분 중 한 분이 충주에서 목회하고 계시던 이승호 목사님이셨습니다. 이승호 목사님은 아무런 조건 없이 이식을 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현재는 베트남 선교사로 사역 중) 그래서 2011년 이승호 목사님의 간을 22시간에 걸쳐 이식받게 되었습니다. 이식 후 이승호 목사님은 진통제가 듣질 않아 엄청나게 고생을 하셨습니다. 진통제를 맞지 못하고 생으로 고통을 겪어 내시는 목사님 모습을 뵈니 얼마나 죄송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두 번째 간이식 수술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생겼습니다. 황달이 심하게 왔습니다. 의사가 “시술이 필요합니다. 간단한 시술입니다.”라고 했고 저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옆구리를 부분 마취해서 뚫고 들어가서 시술을 하는데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가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옆구리에 창으로 찔리시고, 물과 피가 나오더라’ 라는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저는 이 때 이 사건을 겪으며 다시금 저에게 십자가 체험을 조금이나마 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마지막으로 시무했던 4번째 교회 모습     © 편집부

 

영혼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마음 – 그리고 세 번째 십자가 체험 

“하나님이 왜 나를 두 번이나 간이식 수술을 해서 살리셨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답은 간단했습니다. 영혼구원, 3000평의 빌딩을 주시고 어떻게 전도할지를 생각했습니다. 기도하며 고민하는 중에 서울 병원에 정기검진을 갈 때, 직원 분들이 정기검진을 온 환자와 가족들에게 카트 위에 음료를 나눠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무료로 나눠주는 음료를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디어가 생각났습니다. 교회로 돌아와서 전도용 카트(카트 옆면에 “‘내 힘들다’를 거꾸로 읽어 보세요” 라고 써서 붙였습니다.)를 제작했습니다. 카트 제작 후 매주 교인들과 함께 더울 때나 추울 때나 음료수와 전도지를 가지고 다니면서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저와 교인들이 전도하는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상을 주셨습니다.

 

인근에 대형교회가 이전을 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교회 담임목사님께 밤 11시에 연락을 드렸습니다.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교회에 우리 교회가 이전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말씀을 드렸고, 그리고 저는 새벽예배 후 그 교회를 매일 돌며 여리고 기도를 했습니다. 건축업자는 그 교회 부지와 건물을 70억에 사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상관없이 우리 교회에게 믿음의 이유로 그 교회 부지와 건물을 주시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45억으로 은혜 가운데 그 교회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 마지막 시무교회인 4번째교회 이전 후 성도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_2     © 편집부

 

이전 후, 에벤에셀 기념비를 세우고 다시 열심히 목회에 매진했습니다. 하지만 고난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2018년 뇌출혈로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쓰러진 후 골든타임이 3시간인데, 간 이식 후 먹는 약 때문에 수술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위기상황이었습니다. 가족들과 성도님들은 눈물로 기도해 주셨습니다. 쓰러진 후 12시간 후 수술을 했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지면 합병증이 말을 못하거나, 먹지 못하거나, 걷지 못하게 됩니다. 저는 수술 후 후유증으로 잘 걷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수술 후 입원해있는 동안, 저의 대소변을 가족들이 받아내고 있었습니다. 냄새가 병실에 진동했습니다. 그때 ‘하나님! 대소변만 화장실만 가서 볼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네요’라고 기도한 적도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지금은 많이 회복되어 재활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재활훈련의 일환으로 전기치료, 걷기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왜 뇌출혈이 왔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첫째, 겸손하라고, 둘째, 영혼구원에 집중하라고, 셋째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기 위함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태복음 18장 3절.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리라’나는 어린아이가 하는 행동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걷기재활, 컵 옮기기, 빨대로 물 마시기 등을 합니다.

 

한번은 재활훈련으로 걷다가 넘어져서 머리를 다쳤습니다. 급히 응급실에 실려 가서 봉합을 하는데 마취도 안하고 의료용 호스케칫으로 머리를 꿰맸습니다. 저는 이때가 예수님의 가시면류관 체험을 조금이라도 경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아파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저도 이렇게 아팠는데, 주님은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요.

  

앞으로의 계획과 하나님의 인도하심 

더 이상 목회를 지속하기 어려워 2021년 사임하기로 했습니다. 다음세대를 세울 후배 목사님을 후임자로 세우고 34년의 목회를 마감했습니다. 뒤돌아보니, 매일매일(정말 TV 연속극 한번을 안 보고) 성실하게 목회를 했으나 아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도 저를 인도하실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지금까지 저를 세 번이나 십자가 체험을 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저를 더 다듬고 연단하셔서 귀하게 저를 쓰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열심히 살아가는 하나님의 종이 되길 원합니다. 간증 봉사로 교회에 봉사하며 남은 인생 살길 원합니다. 지금까지 저의 간증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병선 목사 연락처 

주소: 대전광역시 서구 도산로 314번길 33 (가장동 52-2) 

교회: 042-535-1004 

개인: 010-3404-9191 

이메일: jeongbin21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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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5/09 [17:08]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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