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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일 목사 (세종소망교회 담임) 296호
진리를 잃은 강단, 다시 거룩을 말하다 (1)
 
편집부   기사입력  2025/10/20 [17:12]

▲ 진수일 목사(세종소망교회)     ©편집부

오늘의 강단은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는 자리라기보다 심리학과 자아실현의 언어를 전달하는 강연장처럼 보일 때가 많다. 사람들은 ‘행복’과 ‘자존감’ 그리고 ‘자이실현’을 설교의 핵심 으로 기대하고, 설교자는 부담을 덜어주는 말들을 찾는다. 그러나 C. S. 루이스(C. S. Lewis)는 거짓은 언제나 진리를 닮은 얼굴로 다가온다고 경고한다. ‘교묘한 유사복음은 성경의 단어를 빌리지만 방향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을 향한다.’ 개혁신학은 반대로 하나님 중심에서 출발한다. 칼빈(John Calvin)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곧 경외로 이끈다”고 말하며, 그 경외의 목표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르친다. 강단이 이 출발점을 놓치면 모든 것이 어긋난다.

 

교묘한 변질의 첫 지점은 행복에 대한 오해다. 신앙을 ‘더 나은 기분’ 혹은 ‘삶의 질’과 동일시하면, 고난은 즉시 신앙의 실패로 해석된다. 그러나 성경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고 말한다. 거룩은 인간의 행복을 무시하지 않지만, 그것을 정화하고 깊게 만든다. 루이스가 “하나님은 우리의 즐거움 속에 속삭이고, 고통 속에 외치신다”고 말한 대로, 고난은 행복을 훼손하는 사건이 아니라 거룩을 배우는 학교다. 바빙크(Herman Bavinck)는 성화를 “은혜가 인격 전체를 새롭게 하여 실제 삶에 스며드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강단이 행복을 약속하는 순간, 환란과 고난의 벽 앞에서 신자는 쉽게 신앙을 포기한다. 반대로 강단이 거룩을 선포할 때, 신자는 고난 속에서도 기쁨의 샘을 배운다.

 

둘째 오해는 관용을 가장한 상대주의다. “모든 진실한 것들은 결국 하나님께로 간다”는 말은 듣기에 관대하지만, 실상은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정한다. 예수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선언은 타협 불가능하다. 바빙크(Herman Bavinck)는 보편종교주의가 계시의 특수성을 부정하여 복음을 해체한다고 경고한다.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는 “한 치의 중립지대도 없다”고 말하며,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고백하라고 촉구한다. 유일성은 배타주의의 오만이 아니라 진리의 분명성이다. 강단이 이 분명성을 잃으면, 교회는 이웃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결국 복음 자체를 잃는다.

 

사랑을 내세운 분별 거부도 치명적인 오해다. “판단하지 말라”는 구절은 비판 그 자체가 아니라 위선적 판단을 금한다. 같은 문맥에서 주님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고 하시며 분별을 명한다. 칼빈(John Calvin)은 “사랑은 분별을 배제하지 않고, 분별은 사랑의 질서를 세운다”고 해석했다. 오늘의 강단이 “사랑이 최상”이라는 명분으로 진리 판별을 미루면, 사랑은 방향을 잃고 변질된다. 참된 사랑은 공의를 품고, 공의는 사랑을 성숙하게 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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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10/20 [17:12]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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