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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준경(文俊卿, 1891-1950) 전도사, 순교자, ‘천사 섬의 어머니’(2)
김호욱(광신대학교 교수(역사신학), 기독교향토역사연구소 소장)
 
편집부   기사입력  2024/01/08 [15:01]

예수님을 알게 되니 그녀는 고향의 친지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친정 마을인 암태면 수곡리를 찾아서 복음을 전하였다. 복음을 전할 때에 시집가서 생과부처럼 살더니 미쳐서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라고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도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을 전하면서 고난 받는 것을 기뻐하였다. 마치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 뿔뿔이 흩어진 제자들이 두려워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다가 오순절 성령 충만 받고 문을 박차고 뛰어나와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 모습과 같았다. 가족과 친척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였는데 증도면 증동리에 살던 조카딸이 그때 예수님을 믿어 믿음의 결실을 맺어 가고 있었다.

 

신학 공부와 교회 개척

문준경은 신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1930년 당시는 결혼한 여인은 신학교에 입학할 수 없었다. 남편은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래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목포 북교동교회에서 시무하고 있던 이성봉 목사의 도움으로 신학교에 원입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시댁의 모든 재산은 남편이 가져가고 삯바느질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던 문 전도사는 학교에 다니면서 삯바느질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경제적인 어려움이 극심했다.

 

신학교의 수업은 6개월 공부하면 나머지 6개월은 실습 기간이었다. 6개월은 혼자서 교회를 개척하여 단독 목회를 해야 했다. 문 전도사는 신안군의 섬으로 내려가서 복음을 전하곤 하였다. 그리고 1932년 3월 임자면 진리에 첫 번째로 진리교회를 설립하였다. 그곳은 남편이 소실과 함께 자식들을 거느려 살고 있는 지역이었는데 남편을 아예 다른 여자와 살고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기를 원하는 마음에서였다. 그 마음을 모르고 남편과 소실은 온갖 핍박으로 문 전도사를 괴롭혔다. 하지만 묵묵히 영혼 구원에만 전념하자 그들도 잠잠해지기 시작하였다. 진리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하자 문 전도사는 1933년 9월에 지도면 증동리에 두 번째 교회를 개척하였다.

 

1935년 2월 문 전도사는 마지막 실습기간 중 대초리에 세 번째로 교회를 개척했다. 대초리교회는 개척할 때 사탄의 방해가 유독 많았다. 마을에 교회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한 사람들이 술을 먹고 시비를 걸고 예배를 방해했지만 문 전도사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나갔고 교회도 든든히 세워져 갔다.

 

졸업식을 마치고 문 전도사는 복음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지역인 섬 마을로 다니면서 말씀을 전하였기에 1년 동안 닳은 고무신이 아홉 켤레나 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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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1/08 [15:01]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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