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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줌과 편들어줌
김형태 박사(전 한남대학교 총장)
 
편집부   기사입력  2020/10/06 [15:11]
▲ 김형태 박사(전 한남대학교 총장)     ©편집국

어머니는 자식이 사형수 일지라도 자식 편이다. 어머니 눈에는 미운 자식이 없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아름답고 잘생겼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어머니 마음이요.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자식을 기르는 것이다. 종종 친엄마가 아닌 경우에 자식학대사건이 일어난다. 내 몸으로 낳았다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난다.

 

물론 링컨의 새엄마처럼 가슴으로 낳은 자식을 잘 길러 낸 어머니들도 있다. 그건 정말로 훌륭한 어머니이다. 마음을 머리로 눌러가며 한 일 일 것이다. 옛날이야기가 됐지만 4전 5기의 신화를 세운 홍수환 권투선수의 경기를 기억해보자. 당시 챔피언이었던 홍수환 선수는 파나마에서 방어전을 치렀다. 상대 선수는 전 경기 KO승으로 올라온 ‘지옥에서 온 악마’란 별명을 지닌 ‘카레스키아’선수였다. 홍 선수는 초반부터 쓰러지고 또 쓰러졌다. 전 국민이 ‘일어나라’고 외치며 승리를 기원했다. 그러나 홍 선수가 그냥 누워있기를 간절히 바랐던 한 사람이 있었다. 쓰러진 아들의 눈동자를 차마 볼 수 없어 TV에서 얼굴을 돌려버린 그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평안도 사투리로 외쳐댔다 “저 아새끼래 왜 자꾸 일어나네, 가만히 누워있지 않고…” 이것이 어머니 마음이요 어머니 사랑이다.

 

어머니만 다른 모든 사람과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린다. 사랑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우리들은 언제나 우리편이 돼주시는 어머니를 생각한다. 딸이 임신을 했다 하면 시어머니는 손자 볼 생각에 기쁘고 친정엄마는 해산해야 할 딸 때문에 걱정한다. 아빠가 자기 아들을 목마태우고 놀면 할머니는 자기 아들 목디스크 온다며 걱정을 하고 아내는 자기 아들이 아빠 목에서 떨어질까봐 걱정을 한다. 각각 자기 아들이 먼저기 때문이다. 아내는 남편 목 디스크를 걱정해 본적이 없다. 나이가 들었어도 내 편을 먼저 들어주는 건 어머니뿐이다.

 

어느 아들이 엄마에게 물었단다. “엄마 왜 아빠가 오시면 반찬이 6가지이고, 나만 먹으면 3가지로 줄어요?” 이때 아내의 대답이 걸작이다. “아빠는 남의 엄마가 낳은 자식이라 조금 주면 삐쳐서 그렇고 너는 내가 낳은 자식이라 잘 이해해 주니까 그랬단다.” 이 세상에 항상 내 편 들어주는 사람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항상 우리에게 그런 역할을 해주고 계시다. 믿어주면 기회를 주고 편들어준다. ‘편들어준다’는 것은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고 우리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는 것은 심판과 정의(正義)라고 하지 ‘사랑’이라고 하지 않는다.

 

정의(正義)는 진단 기능만 있지 치유나 회복시키는 기능이 없다. 구약의 율법은 죄를 깨우치게 하지만, 죄로부터 해방시키지는 못한다. 아프리카에 있는 ‘바벰바’ 부족은 ‘칭찬 부족’이라 불린다. 법규상 재판정에서 칭찬만 하게 돼있기 때문이다. 죄인이 이런 재판을 받다 보면 울고 불고 하며 감동하고 회개하게 된다고 한다. 사람들이 정죄(定罪)하거나 비난(꾸지람)하는 대신 그가 지금까지 한 일중에 칭찬받을만한 일만 지적하며 칭찬을 퍼붓는다고 한다. 이런 재판을 겪고 나면 절대로 다시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한다. 세상에 이보다 더 훌륭한 재판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처럼 ‘바벰바 부족식 재판’을 하신다. 하나님은 무조건 정의(율법)를 포기하시고 우리편을 들어주신다. (사랑)(은혜)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손을 들어 주시기 위해 커다란 대가를 치르셨다. ‘죄인의 친구’(마 11:19), ‘먹기를 탐하는 자’(눅 7:34)라고 비난 별명까지도 감수하셨다. 예수님이 정의를 내세우셨다면 우리중에 자신의 의(義)로 구원받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우리죄를 놓고 하나님 앞에서 검사처럼 참소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항상 변호사처럼 우리 죄를 변호하고 용서를 구한다. 하나님은 주님의 변론을 따라 우리를 ‘무죄’로 판결하신다. 사탄이 항의할 수 없는 것은 예수님이 나의 죄값을 대신 지불해 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내가 용서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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