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뉴스 > 교회•인물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당뇨합병증으로 실명의 위기와 죽음의 문턱에서 행복목회자로”
행복한 농촌목회자로 성공의 정상에 선 광시 송림교회 이상진 목사
 
임명락   기사입력  2020/01/17 [15:49]

 

▲ 예산군 광시면에 소재한 송림교회 이상진 목사.     © 임명락 기자

 

이 글은 기독타임즈 충남본부 임명락 기자에게 기독교대한감리회 충청연회 예산지방에 소속된 신장교회 황경식 장로가 제보한 글을 정리한 것으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충남 예산군 광시면 소재 기감 송림감리교회 이상진 목사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이 목사는 당뇨와 사투하며 죽음의 문턱에서 더 이상 병원에 의지할 수 없어 식이요법과 양파 엑기스를 연구하여 스스로 병을 치유한 결과 건강을 회복하고 자비량 농촌목회를 통회 농촌목회 20년을 준비하고 자립목회 통해 그 혜택을 성도들과 지역민들에게 수익금을 돌려주는 행복목회를 하고 있다.

 

이상진 목사는 마음을 알아주는 어머니 같은 목사.누구나 철이 들 때쯤이면 ‘어머니’ 하고 이름만 불러 놓고도 눈시울을 붉히곤 한다. 감사하고. 죄송하고. 말하지 못한 마음도 헤아려 주고, 그 모습들이 얼마나 위로와 힘과 용기를 주었던가! 그래서 인지 최고의 찬사는 어머니 같다고 표현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부터 그 어머님 같은 광시 송림교회 이상진 목사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기억으론 이상진 목사가 예산광시송림교회에 부임한 지 20여년 이상 넘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목사 말로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신학교를 오래 다녔고 그래서 인지 유달리 까다로운 성격에, 큰 교회 목회자로 성공을 다짐했던 독특한 예비목회자였다고 회고 한다. 이러한 이 목사의 성격의 이면에는 강하고 현명하게 독립할 수 있도록 훈육했던 농부아버지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랬던 그의 모습이 너무도 많이 변했다. 그의 표정에서 흘러내리는 인자한 웃음, 그리고 목회자로서의 정확한 소신과 정체성 및 목회의 방향에 대한 뚜렷한 변화가 그의 삶과 표정에서 묻어난다. 이유가 뭘까? 이 목사는 말하기를 ‘슈바이처 전기’를 그 동기로 꼽았다. 슈바이처는 왜 외롭고 어려운 일을 택했을까? 그는 비로소 어려운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평생을 지켜봤던 농부로서의 아버지의 모습이 농부 목사의 길을 걷게 했으며 새로운 목회의 결단을 심어 준 것이다.

 

그러나 새로움도 잠시, 자비량 목회를 표방하며 콩 농사로 시작했던 농사와 일들은 번번이 실패했고 5년 전부터는 나쁜 식습관으로 인해 심한 당뇨병을 얻어 실명 위기와 한쪽 다리절단 위기, 심지어 2개월 시한부 판정까지 받게 됐으니 가히 목회자로서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고 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목사는 죽음을 앞에 두고 “지금까지 살면서 하나님을 위해 기쁘시게 한 일이 없는 같다”며 기도하고 고민하다 아이들을 사랑하셨던 주님을 떠올리며 자녀를 입양 하기에 이르렀다. 죽음을 문턱에 두고 말이다.

 

이에 이 목사는 더 이상 병원에만 의지할 수는 없어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나섰고 식이요법과 양파 엑기스를 연구하여 스스로 병을 치유하는 길에 나서게 되었는데 이러한 노력과 연구의 결과 “하나님의 지혜로 치유함을 받았고 인간의 식습관이 하나님의 규칙을 어겼을 때 사망에 까지 이를 수 있다는 원리를 알았다”고백하며 몸을 살리는 먹거리를 만드는데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그 결과 그가 시무하고 있는 예산 광시 송림교회는 2017년 ‘녹색교회’로 선정 되었고 지속적으로 친환경농법. 미생물 발효 기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병을 치유함은 물론 교인, 그리고 인근 주민들과 친환경농사를 짓는 농업공동체를 형성하게 됐다. 무엇보다도 기쁜 일은 생명과 관계를 소중히 하는 마음들이 생긴 결과 교인들은 물론 마을공동체와의 관계도 회복되었다.

 

현재 이 목사는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 그는‘자비량사역’을 몸소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목사가 자비량 목회를 지향하게 된 배경에는 농촌교회의 어려운 현실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스스로 소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목사는 가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후배들에게 “농촌교회를 건물뿐인 교회를 만들지 말고 공동체 교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기 위해선 “농부가 되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말이 쉽지 이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힘든 일은 물론이고 목회자이기에 수많은 오해와 편견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힘든 직업으로 인해 목회에 소홀함이 없을까 궁금해 물었더니 이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교회는 목사가 따로 심방을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생활 속에서 매일 성도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살아가기 때문이죠. 목사는 성도와 일심동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웃을 때 함께 웃고, 울 때 함께 울어주는 것. 또 그들의 고민을 함께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게 목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을 한다. 그러나 당연하다고 해서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 목사는 평범치 않은 삶을 살아온 훌륭한 목회자이지만 굳이 기자가 어머니 같다는 표현을 빌리는 이유가 있다. 사실 나는 이 목사에게 개인적으로 크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모태부터 수 십 년간 이어온 신앙생활에 큰 위기가 닥쳤을 때 일이다. 성경에 대한 끝없는 질문과 의심들이 밀려왔고, 이 땅위의 삶은 마치도 지옥같이 느껴지면서 내 삶을 흩어 놨다. 기도의 문이 막히고 예배가 고통스러웠다. 누구 하나 내일처럼 들어주는 이도 없었고 애꿎은 아내만 나를 지켜보며 힘들어했다. 당연히 우울증도 함께 찾아왔다. 이때 내가 연합회장 때 알게 되었던 이 목사는 나를 어머니와 같이 헤아려 주고 신앙적 교훈과 더불어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내 기억으론 눈물로 나눈 시간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 수 있었지 않나 생각된다. 마치 그분께서 고통을 들으시고 사자를 보내준 것처럼 이 목사는 삶으로 보여주었다. 물론 그는 스스로를 “흠이 많고 늘 부족한 목사”라고 고백한다. 그런데 나는 그의 그런 점이 너무 좋다.

 

어머니 같은 이 목사는 이 시간에도 몸엔 땀 냄새가 나고 힘든 일과 목회를 해나가며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일들을 해나가고 있다. 그런 그의 사역에 응원과 기도의 힘을 보태고자 한다. 기독교 가르침의 핵심은, 헨리 조지의 「도적질하지 말지니라」중에서 언급한 “너만의 몸을 위하고 너만의 영혼을 구제하라”가 아니라 “모두가 더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요즘 이 목사는 건강관련 강사로 국내와 국외를 가리지 않고 강의를 다니고 있으며 다이어트 강의로도 소문이 나 대형교회에서 강의 요청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농촌교회 목회자이기는 하지만 전국적으로 소문만 지명도를 갖게 된 것이다.

 

그동안 이 목사는 신문보도와 TV방송 출연도 하게 돼 시간이 부족할 정도이다. 하나님이 이 목사를 사랑하시는 이유가 뭘까?

 

/광시 송림교회 연락처 : 041-332-7561 이상진 목사 010-7385-1115 

/충남본부=임명락 기자

 

 

 

 

 

 

저작권자 기독타임즈 ⓒ무단전재 공유언론사, 협력교회 및 기관 외 재배포 금지

대전충청지역 대표 기독교주간신문사 기독타임즈(kdtimes@hanmail.net)

발행인=오종영 목사 ㅣ 사업본부장=이승주 기자 ㅣ 충청영업소=임명락 기자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20/01/17 [15:49]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