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을 빛낸 기독교 120인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알렌(H. N, Allen, 안련 安蓮, 1858-1932) 의사(제중원 설립), 외교관(주한 미국공사)②
이선이(장로회신학대학교 선교신학(Th.D), 필리핀 아태장신대(APCCS)교수)
 
편집부   기사입력  2019/12/31 [15:40]

1885년 1월 22일 대리공사였던 포크를 통하여 병원 설치안을 제출하여 승인을 받아 광혜원을 4월 9일 개업하였다. 나중에 고종 황제는 광혜원이 개설된 지 16일 만에 제중원(濟衆院)으로 이름을 하사하였다. 이것이 1885년 4월 9일 곧 한국 땅에 설립된 최초의 서양병원이었다. 알렌은 매일 100명의 환자를 치료했으며 모든 계층의 환자를 진료했다. 장티푸스, 천연두, 이질, 폐결핵, 매독, 나병 등의 악질성 환자가 대부분이었는데 알렌은 20여 명의 관리와 하인을 배치하여 환자들을 돌봤다. 선교사 스크랜튼과 헤론의 도움으로 개원 후 한 해 동안 1만여 명을 치료하였다. 제중원은 왕실과 민중의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았다.

 

알렌과 조선왕실의 친밀한 관계는 이후 원활한 선교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그 이후 제중원은 자연스럽게 한국 개신교 선교 거점이 되어서, 선교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도구로 쓰임 받게 되었다. 바로 알렌의 후임으로 왔던 선교사들이 제중원을 중심으로 사역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1885년 한국에 도착한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선교사는 제중원에서 화학을 가르치면서 그곳을 거점으로 선교사역을 시작했다. 또한 같은 해에 입국한 존 헤론(John W. Heron) 선교사, 감리교 의료선교사 스크랜튼(Mary Fletcher Benton Scranton), 그리고 1886년 입국한 의료선교사 엘러스(A. J. Elless)까지도 처음 제중원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제중원은 후에 세브란스병원이 되었다.

 

외교관으로 활약하다 

알렌은 언더우드, 헤론, 아펜젤러와 스크랜튼 등 당시 선교사들과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서울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되었는데 1886년에는 선교사직마저 선교본부로부터 거절되었다. 그러나 고종의 신뢰로 인해 1887년 이후로 외교관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1887년 신설되는 미국 주재 한국공관 서기로 임명받고 12명의 한국인을 데리고 워싱턴에 가서 한국공관을 개설했다. 또한 미국인들의 한국 내 사업권을 회복하도록 주선했다. 그는 1890년 한국 주재 미국공관 서기관, 1897년 미국 총영사, 그리고 1901년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받고 외교의 최일선에서 미국과 한국의 가교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알렌은 갑신정변과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통해 일본의 침략정책의 문제점을 정확히 간파했다. 그는 한국의 독립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미국이 한국문제에 더 개입할 것을 촉구했다. 친일반로(親日反露) 정책을 취했던 루스벨트 대통령과의 마찰로 1905년 알렌은 전격 해임되고 미국으로 귀국했다. 1905년 카스라테프트 밀약을 반대하다가 을사조약이 체결된 뒤 미국으로 강제 송환된 것이다.

 

1892년 〈코리안 레포지토리〉를 간행했다. 1897년 알렌은 운산금광 경영권을 비롯해서 서울 전기시설 설치권, 전철 공사권, 상하수도 공사권 등을 따서 미국에 넘겨주었다. 1899년 제중원의학교를 설립하고 학생들을 뽑아 의학교육을 실시하였다. 1900년 영국 왕립아시아협회 조선지부를 결성하여 회보를 발행하는 등 문화 발전에도 공로를 세웠다. 1902년 〈한국위보〉를 간행했다. 1904년 9월 4일 제중원의 책임자가 된 에비슨은 본국으로부터 구한 기금으로 세브란스병원을 신축하고 진료를 시작하였는데, 이때부터 제중원의 명칭이 실질적으로 세브란스병원으로 바뀌게 되었다.

 

조선왕실 병원인 제중원 부속의 제중원의학교는 1899년 개교하여 1908년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였는데, 이것이 세브란스의학교의 시초였다. 알렌은 미국 오하이오주 도레도에서 병원을 개업하였고 1932년 12월 11일 74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알렌은 1884년 한국에 입국한 첫 개신교 선교사였다는 점과 의료활동을 통해서 선교의 장을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저작권자 기독타임즈 ⓒ무단전재 공유언론사, 협력교회 및 기관 외 재배포 금지

대전충청지역 대표 기독교주간신문사 기독타임즈(kdtimes@hanmail.net)

발행인=오종영 목사 ㅣ 사업본부장=이승주 기자 ㅣ 충청영업소=임명락 기자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9/12/31 [15:40]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