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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柳寬順, 1902-1920) 순국자, 독립운동가(병천 3·1운동) ①
최상도(호남신학대학교 교수(역사신학), 장로교역사학회 서기)
 
편집국   기사입력  2019/11/01 [15:41]

신교육을 받다 

유관순은 1902년 음력 11월 17일 충청남도 목천국 이동면 지령리 338번지(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의 작은 마을에서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 사이의 3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같은 마을에서 자란 조카 유제한의 증언에 따르면 유관순은 이마가 넓고, 미간이 윤택하며, 약간 큰 듯한 눈은 광채가 나며, 코는 뚜렷하고, 튼튼한 체격을 가졌다고 한다. 이화학당 재학 시절에는 얼굴이 희고 복스럽고 키가 컸다고 한다. 실제로 1919년 만세운동 주동자로 체포되어 작성된 수형기록표에는 신장이 5척(尺) 6촌(寸), 환산하면 170센치미터에 가까운 큰 키로 기록되어 있다.

 

전통적인 선비 집안의 부친 유중권은 학교교육을 통한 구국운동과 신앙운동을 통한 자주독립의 길을 모색한 사람이었다. 그는 1907년 어간에 설립된 마을의 홍호학교(설립 때는 병진학교)의 운영에 직접 관여하여 민족교육에 힘쓰고 있었다. 또한 그는 공주선교부를 책임지고 있던 샤프(Rovert Arthur Sharp) 선교사의 부인 앨리스 샤프(Alice J. Hammond Sharp, 사애리시 史愛理施)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접한 친척 유빈기에 의해 입신하고, 1908년 시작된 지령리교회(현 매봉교회)를 조인원과 함께 책임지고 있었다. 유관순은 어려서부터 이곳 학교에서, 그리고 매봉교회에서 ‘신앙을 통한 나라 사랑’을 배웠다.

 

유관순은 지령리교회에 순회전도차 온 앨리스 샤프 선교사의 주선으로 그의 남편 샤프 선교사가 설립한 공주 영명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총명하며 신앙도 든든한 소녀로 알려진 유관순은 다시 앨리스 선교사의 주선으로 1916년 4월 1일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편입했다. 이화학당에는 유관순의 사촌언니인 유예도가 먼저 다니고 있어서 그녀가 학교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유관순은 이곳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기독교교육을 통해 신앙의 공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는 등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화학당에서 유관순은 지기 싫어하고 고집이 세며 때론 또래 소녀들처럼 장난 잘 치고 웃음 많고 뜨개질을 좋아하는 소녀였다고 한다.

 

이화학당에서 공부하는 동안 유관순은 특별히 두 사람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게 된다. 그녀는 주일마다 정동교회를 출석하며 손정도 목사의 영향으로 하나님 사랑이 곧 나라 사랑임을 배웠다. 또한 박인덕 선생으로부터 신앙을 통한 나라 사랑의 실천을 배웠다. 박인덕 선생은 1919년 3·1운동과 관련하여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를 때 유관순과 함께 수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화학당에서 신앙생활과 구국활동을 유관순과 함께했던 서명학의 증언에 따르면, 유관순은 매일 밤과 새벽에 텅 빈 채플실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다고 한다. 이처럼 깊은 유관순의 신앙심은 훗날 일제의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순국할 수 있는 정신적 바탕이 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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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01 [15:41]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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