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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해야 합니다(롬 10:13-17) 203호
박재신 목사/양정교회
 
편집부   기사입력  2019/10/07 [14:42]
▲ 박재신 목사(전주양정교회)     ©편집국

미국의 휴스톤 감리교회의 찰스 알렌 목사님이 자기 교회 교인들의 성향을 조사하여 분석하여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교인으로 등록을 했지만 20%는 주일 예배에 성실히 출석하지 않고 있었고, 25%는 기도생활을 하지 않고 있었으며, 35%는 성경을 전혀 읽지 않고 있었고, 40%는 일정한 헌금을 드리지 않았고, 75%는 교회에서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있었으며, 85%는 단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00% 모두가 천국 가는 것은 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앙생활은 내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주님의 필요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필요에 응답하는 것은 주님의 마지막 명령, 즉 영혼 구원 명령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문화와 언어, 역사가 같은 내국인을 구원하는 것은 전도입니다. 타 문화권의 나라에 가서 전도하는 것은 선교입니다. 주님은 땅끝까지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즉 선교명령인것입니다. 이 선교명령은 우리의 최대의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선교해야 합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선교학적 측면에서의 거창한 방법론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슴이 뜨거워진 성도들이 생활 속에서 실제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생각하여 적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 가는 선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직접 선교사로 헌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가라”고 말씀하신 명령을 직접 몸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주님의 특별한 소명과 사명감이 필요합니다.

 

소명이란 주님께서 나를 선교사로 부르셨느냐하는 것입니다. 대개 소명이 있는 자에게 사명감이 생깁니다. 사명감이란 “선교사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한 신앙고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자는 본인에게 이 사명감을 주십니다. 사명감이 없이 선교사가 되면 자신을 헌신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주를 위해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은 주님이 부르심에 대한 확실한 사명감이 있을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명감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행 20:24)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는 죽을 것도 각오하였다고 말입니다.(행 21:13)

 

둘째, 보내는 선교사가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성도 모두를 선교사로 부르시는 것은 아닙니다. 다 외지로 가는 선교사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헌신한 선교사를 파송하고 지원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이것을 간접 선교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내고 후원하는 것도 가는 것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보내는 자 없이 갈 수 없기 때문이며 지원하는 자 없이 외지로 나간 자들이 사역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롬 10:15절에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라고 하였습니다. 보내고 후원하는 자가 있어야 복음이 널리 전파될 수 있습니다. 보내는 선교사역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①관심입니다. 

우리가 잘 먹고 편히 쉬고 있을 때 내가 가야 할 낯선 오지에 찾아가서 나를 대신하여 복음을 위해 수고하시는 선교사님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도 쉬고 쉽고 좀더 안전한 곳에서 편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 때문에 남이 가기 싫어하는 곳을 기쁜 마음으로 찾아간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수고와 노고를 알아주고 격려하는 것은 그들의 사기를 북돋아 결국 하나님의 일을 잘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간접 선교입니다.

 

②기도입니다. 

기도 선교를 말합니다. 기도 선교란 선교 현장과 선교사님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또는 무시로 기도하면서 관심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로 선교현장은 치열한 영적 전투가 벌어지는 곳입니다.

 

선교사님들은 십자가의 군병으로 전투가 치열한 최전방에 파송된 전투병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홀로 두면 지치고 약해지고 쓰러집니다.

 

후원자들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전방부대를 지원하는 후방 부대의 역할입니다. 실례로 선교사님들의 편지를 받거나 전화통화를 할 때면 언제나 듣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해 주십시오”라는 것입니다.

 

교회사의 대 선교사였던 바울도 골 4:3절에서 성도들에게 전도할 문을 열어줄 것을 위해 간절하게 기도해 달라고 기도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지금 전세계에 약 20만 명의 선교사님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파송된 선교사님들도 5천여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우리가 기도의 짐을 서로 져야 합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지원하는 일입니다. 

 

③격려입니다. 

대개 현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들은 예상할 수 없는 어려움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영적으로 재충전 할 기회도 많지 않고 언제나 사단의 세력과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하기 때문에 영적으로 곤고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파송한 교회와 후원자들에 대한 사역의 실적에 대한 부담이 언제나 마음을 억누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원자의 따뜻한 격려의 편지나 위로의 말들은 때로 청량음료와 가튼 역할을 하게 됩니다.

  

④물질로 할 수 있습니다.

외지에 나가서 선교하는 것은 많은 물질이 필요합니다. 선교사가 현지에 가기 위해서는 비행기표도 필요하고, 언어 훈련 또는 교회를 개척하는 사역을 위해서 많은 물질이 필요합니다.

 

선교사 자신과 가족의 생활비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노후 보장도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물질이 필요합니다. 선교사에게 가기를 바라면서 물질적으로 지원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갈 수 없을 뿐 아니라 가서 선교에 전념하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갈 수 없으니 내 대신 보내는 것이 물질 선교입니다. 돈은 그것으로 많은 일을 하게 합니다. 그것으로 술을 마실 수도 있고 세상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죄짓는 일에도 쓸 수 있습니다.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서 선이 되기도 악이 되기도 합니다.

 

배는 물 위에 떠있어야 합니다. 배가 물 속에 가라앉으면 배는 물 때문에 망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물질을 선하게 관리하고 사용해야지 영혼이 물질의 욕심에 침몰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 때문에 영혼이 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질 사용에 있어서 나의 소유를 하나님께 드리고 영혼 구원하는 일에 쓰는 것보다 더 가치 있고 복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모두 선교사로 부르셨습니다. 가십시오. 그렇지 못하겠거든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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