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태 박사(전 한남대학교 총장) ©편집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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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박사는 옛날(아날로그 시대)과 현대(디지털 시대)가 서로 헤어져 각 방향으로 가지 말고 한데 모이는 수렴과 화합을 통해 디지로그(digilog)로 가야 하고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도 한데 모여 ‘世邦化’(glocalization)로 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하버드 대 총장을 지낸 Nathan Pussey가 21세기 인류가 상실한 4가지 중의 하나가 “(노소/빈부/귀천/남녀)가 ‘함께 부를 노래’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런 연유에서 70대 중노인이 경험한 옛날 추석 명절 체험기를 함께 들어보자.
“몸은 타향(他鄕)에 있지만 마음은 내 고향(故鄕) 마을에 있습니다. 내 나이 칠순(七旬)을 향해 가고 있지만, 마음은 코흘리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갑니다.(身老心不老) 벼가 누렇게 익어가면 먼저 익은 논에서 벼 몇 단을 베어와 햅쌀(찐쌀)을 만드시던 부모님, 추석에 입을 새 옷과 신발은 지난 오일장에서 사오셨고, 차례(茶禮) 지낼 음식 재료도 준비해 두었습니다. 감은 볼이 조금 붙었으나 떫은 감이라 미지근한 소금물에 담아서 삭이고 올밤은 벌써 따 두었습니다. 송편과 시루떡, 각종 전은 어제 밤에, 어머님이 부지런한 손으로 무쇠 솥뚜껑 뒤집어, 동백(冬柏)기름 바르고 전 만들 때 고소한 냄새는 어찌 잊을 수가 있겠어요. 추석날 아침에 새 옷 입고 어른들 뒤에서 같이 절하고 차례밥을 먹으니 꿀맛입니다. 이모 집으로, 고모 집으로, 누나 집으로 달려갑니다. 이모부와 자형이 준 용돈 들고 신이 나서 여동생과 뛰어서 당산(堂山)나무 밑으로 가서 또래들에게 자랑을 합니다. 그네는 동네 처녀들 차지지만 설치는 총각들이 뺏어 탑니다. 우리들은 딱지치기나 제기차기, 구슬치기 하고 놀고, 어른들은 장고, 징, 꽹과리를 치면서 신명나게 노시며 추석 명절의 하루를 재미있고 신명나게 지냈습니다. 냉장고가 없던 그 시절엔 떡이나 전을 간수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녁 무렵이면 음식들을 쪄 놓아야 다음날까지 쉬지 않고 가지만 날씨가 더우면 음식이 쉬어서 못 먹게 됩니다. 과일도 지금처럼 풍부하지 않아서 울인(삭인) 감이나 밤 정도이고 사과나 배는 제사상에 놓은 것뿐이었습니다. 50년 전의 일이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팔월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할 정도로 추석 명절에는 배가 부르게 먹었습니다. 지금은 날마다 풍족하게 먹고 입고 사니까 날마다 추석이고 날마다 명절 같습니다. 참 좋은 시절에 살아서 행복합니다. 지금도 불만과 불평 속에 사는 사람들이 있고 흙수저니 헬조선이니,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니 포기시대(주거, 취업, 연애, 결혼, 출산포기)니 하면서 젊은이들이 움츠러들고 기가 죽어 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으니 기대수준보다 조금 낮추어 땀 흘리고 일하다 보면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합니다. ‘順天者存(興) 逆天者亡’(하늘의 뜻을 따르는 자는 살아남고(잘 살고) 하늘의 뜻을 거역하면 망한다)고 했습니다. 추석 명절도 지나갔으니 다시 일상생활에 전념하여, 정직하게 살면서 순리를 따라야겠습니다.”
옛날 원자허라는 선비는 달빛에 비추어 책을 읽다가 세상의 어지러움을 한탄해 이런 노래를 지었다. “원한이 사무친 강물은 목 메어 흐르지 못하는데/갈대꽃 단풍잎에 찬 바람만 우수수 부네/이곳은 분명 장사(長沙/중국 초나라의 충신 굴원이 죽은 곳)의 언덕이거늘/달빛은 밝은데 영혼들은 어디서 노는가” 그때 무사 한 명이 나타나 왕에게 절을 하고 “이 썩은 선비들과 어찌 큰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하면서 “가을바람 쓸쓸하니, 나뭇잎은 떨어지고 물결도 차갑구나/칼을 쥐고 휘파람을 부니, 북두칠성이 기울었도다/살아서는 온전히 충성했고, 죽어서는 의로운 영혼이 되었다네/내 가슴에 품은 뜻이 어떠한가/강 위에 둥근 달과 같도다/아아, 처음부터 잘못된 계획이었으니, 썩은 선비(참모)들을 꾸짖어 무엇하리” 이는 조선 중기 때 임제가 지은 「원생몽유록」에 나오는 구절인데 현재 우리나라 상황과 너무 많이 닮은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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