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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대로 사는 인생들 (시편 37:23-26) 199호
전갑재 목사/공주중앙장로교회 원로
 
편집부   기사입력  2019/08/09 [16:44]
▲ 전갑재 목사 ▲공주중앙장로교회     ©편집국

1. 나의 걸음을 정하신 하나님(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23)

 

사람들은 보통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착각이요. 오해입니다. 내 마음대로 살 것 같으면 누가 가난뱅이가 되어 굶주리며 살겠으며, 누가 병들어 신음하며 살겠습니까? 생로병사를 내가 결정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끌려 사는 인생들입니다.

 

우리의 출생을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남자나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 아니고, 내가 전 씨나 박 씨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결코 아닙니다. 태어나고 보니 남자 혹은 여자가 됐고, 전 씨, 혹은 박씨가 된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태어날 수만 있었다면 흙수저로 태어나지 않고, 금수저로 태어났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 뜻에 의하여 결정된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은혜입니다. 이것을 일반적 은혜라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특별한 은혜가 더 있습니다. 바로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구원의 길을 정해 놓으시고, 그 길을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인생들은 모두가 하나님이 정한대로 그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고난을 경험해 보지 아니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고난의 문제가 왜 따릅니까? 해답은 간단합니다. 나는 사생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히 12:8“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예수님께서 제자의 길을 말씀하실 때,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시고, 그 말씀 안에 우리를 끌어들였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고난은 당연한 것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니시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정금(순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 나를 단련하여 더 귀하게 사용하시고, 더 큰 은혜를 부어 주시는 것을 봅니다. 옛날에 폐병은 죽을병이라 하였습니다. 죽을병에 걸리게 하여 목사가 된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430년 동안 애굽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430년간은 이스라엘을 만들고, 연단하는 기간이었습니다. 때가 되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 묶여 살았지만, 하나님이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땅에 대한 환상을 늘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가나안으로 가는 길을 가 본 듯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선조 아브라함이 내려오고, 요셉이 팔려오고, 형들이 양식을 사기 위해 내려왔던 길을 모를 리 없습니다. 도보로 보름 안에 넉넉히 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불기둥과 구름 기둥까지 동원 시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른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믿고 따라와 보니 홍해가 길을 막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도, 뒤로 물릴 수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홍해 때문에 애굽 병사들에게 죽게 되었다고, 모세를 원망하며 울며불며 아우성을 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군대와 싸워 이길 수가 없다면 어느 길로 가던 죽음을 벗어 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보십시오! 앞길을 막았던 홍해! 홍해 때문에 죽는다고 원망했던 그 홍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은 같은 홍해로 누구에게는 살리는 바다, 누구에게는 죽음의 바다가 되게 하십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은혜의 바다가 되게 하시고, 애굽 인들에게는 심판의 바다가 되게 하십니다. 바다가 열리리라고는 누구도 상상을 못 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왜 하나님을 원망합니까?

 

하나님의 계획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렇다면 의심하지 말고, 그냥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냥 따라간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결코 복잡하지 않습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나를 살게 하시는 대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뒤로 넘어졌는데 앞의 코가 깨져도 반항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감사합니다! 중병에 걸렸어도, 실패했어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나에게 되어지는 모든 것을 하나님 은혜로 받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따라가는 것입니다. 롬 8:28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내가 당한 일에 원망 불평하는 것은 따라가는 게 아닙니다.

 

다윗을 보세요. 그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음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던져졌을 때도 하나님이 자기를 떠났거나,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어떤 극한상황,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바울을 보세요. 의로운 일의 결과가 막장이라는 감옥에 던져졌습니다. 이를 갈며 원망하고 누구를 저주했나요? 아닙니다. 찬송을 했습니다. 매를 맞아 온몸이 만신창이가 됐지만 앓는 소리가 아니라 찬송을 불렀습니다.

 

베드로를 보세요. 야고보를 잡아 칼로 죽이니 백성들이 환호하는 걸 보고, 그다음 베드로를 잡아 죽이려 하니 무교절이라 못 죽이고 옥에 가뒀습니다. 날이 새면 죽습니다. 그 밤이 얼마나 두려운 밤이겠습니까? 불안하고 무서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편안한 잠을 잤습니다. 하나님께 100% 맡긴 것입니다. 살려줘도 은혜, 죽여도 은혜라고 여긴 것입니다. 이것이 맡기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어떤 고난, 어떤 실패 가운데 있든지,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실패한 인생은 아닙니다.

 

믿는 사람도 사업을 하다가 수십억을 손해 볼 수 있고.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도 중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할 수 있습니다. 목사도 사고 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실패냐? 하나님이 그 사람을 버린 것이냐?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난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깨닫습니다. 회개합니다. 믿음을 바로 세웁니다. 그러니 큰 복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목사가 가는 길이라도 꽃길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광야 같고, 때로는 사막 같습니다, 분명 좁은 길입니다. 성도가 가는 길이라고 다 평지가 아니라 오르는 길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한 길을 성도들이 걸어갈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정한 길이 최선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길이 당장은 고통스러워 보여도 결국은 승리의 길이 됩니다. 하나님은 시행착오가 없습니다. 우리를 임상실험용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계획을 가지시고 일하십니다. 

 

2. 나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려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기도 많이 하고 믿음 좋은 장로나 권사라 할지라도 시련이 찾아옵니다. 목사도 자동차 사고 날 수 있고, 암에 걸려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을 필요가 있습니까?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 세상뿐이라면 맞는 소립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죽음 건너편에 하나님나라, 천국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낙이나 호의호식이 최종 목적이 아니라 천국에서의 영생이 최종 목적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을 보십시오. 왕들이나 입을 수 있는 자색 옷과 최고급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는 부자가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죽음 후, 불꽃 가운데 고통스러운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반대로 집도 절도 없고. 몸은 헌데 투성이고.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주워 먹으며 사는 거지 인생이 있었습니다. 이런 생활을 모두가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 후, 천국에 들어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봐야 알지’라고 말하며, 내세의 관심보다는 이 세상에서 호의호식 하며 사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고 여기고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비록 나사로 인생이라 할지라도 시간적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선택해야 합니다.

 

오늘 내 형편이 어떠하든지, 나사로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그러니 불평할 일이 하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요 감사뿐인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잘살겠다고 죄짓지 말고, 병들었다고 낙심하지 말고, 생각대로 안 된다고 원망하지 말고, 내가 연약할 때, 찾아 오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억만장자라도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이 비극인 것입니다.

 

누가 그러데요. “70대가 되면 배운 놈이나 못 배운 놈이나 마찬가지고, 80대 되면 돈 많은 자나 없는 자나 똑같고, 90대 되면 산에 있는 자나 집에 있는 자나 그게 그거다.”라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나 예수쟁이들이나 결국은 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갈 곳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정처 없는 나그네가 아닙니다. 천국에 찬란한 우리 집이 있습니다. 그날이 우리의 최종 목적이요 궁극적 목적입니다. 죽음을 세상 사람들은 최악이요 마지막이요. 영결이라 하지만, 우리는 최선이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시작입니다.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왜 고달픔이 있느냐? 하나님은 성도의 가는 길을 쉽고 편하게만 가도록 계획하지 않고 믿음으로 가도록 계획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좁은 길입니다. 좁은 문입니다. 이미 준비된 고난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과 피할 길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의 각본에 의하여 살아갑니다. 연출자이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배역에 충실하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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