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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들의 뒷얘기
김형태 박사(전 한남대학교 총장)
 
편집부   기사입력  2019/07/08 [16:38]
▲ 김형태 박사(전 한남대학교 총장)     ©편집국

①5대왕 문종(1414-1452)은 어릴 때 이름이 ‘향’이다. 2년 3개월간(1450.2-1452.5) 왕위에 있었고 세 부인 사이에 1남 2녀를 두었다.

 

헌덕왕후 권씨 사이에 6대 임금이었던 단종과 경혜공주를 낳았다. 문종은 수염이 매우 풍성하여 관운장과 같은 풍모를 지녔으며 얼굴 용모도 아주 잘생겼다고 전해온다. 임진왜란 이후 폐허가 된 궁궐을 정리하는데 타다 남은 왕의 어진이 한 장 나왔었다. 수염이 길고 풍채도 당당하여 신하들은 인종의 어진이라고 생각했지만 한 사람만 수염이 길다는 이유로 문종의 어진이라고 주장했다. 후에 어진을 조사하다보니 어진 구석에 문종대왕의 어진이라는 기록이 있었다고 한다. 학식과 외모 등 모든 것이 완벽했으나 한가지 결정적 결함은 그의 건강이었다.

 

②7대왕 세조(1417-1468)는 유라는 이름과 수양대군이란 칭호가 있었다. 13년 3개월(1455.윤.6-1468.9)간 왕위에 있었다. 정희왕후 윤씨와 사이에 2남1녀를 두었다. 의경세자(덕종으로 추존됨) 해양대군(뒤에 8대예종)과 의숙공주가 있었다. 또 근빈 박씨와의 사이에 2남(덕원군, 창원군)이 더 있었다. 세조가 술먹으면서 신하의 팔을 꼬집고나서 “자네도 날 꼬집어라”고 시키자 진짜로 그 신하가 세조의 팔을 꼬집었다. 그 뒤 혼자 열받아서 그 신하를 혼내주려다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그 신하가 바로 신숙주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꼬집은게 아니라 팔씨름을 하다가 세조의 팔을 두손으로 넘겼던 것이다. 그래서 세조가 신숙주를 죽이려고 했다가 술취해서 한짓임을 감안하여 그냥 넘어갔다는 것이다. 세조는 후궁이 딱 한 명(근빈 박씨)뿐이었고 평생 중전인 정희왕후와 금슬이 좋았다. 국사를 논할 때나 국가의 중요 행사에도 꼭 정희왕후를 대동했으며 사냥을 할 때도 둘이 나란히 말을 타고 다녔다고한다.

 

③9대 성종(1457-1494)은 어린시절 ‘철’이라 불리다가 자산군이 되었고 25년 1개월간(1469.1-1494.12)왕위에 있었다.

 

열 두 부인에게서 16남12녀를 두었다. 공혜왕후 한씨는 소생이 없었고 폐비 윤씨 사이에 1남이 있었는데 그가 10대 연산군이 되었으며 정현왕후 윤씨 사이에 1남1여(진성대군 후에 11대 중종이 됨/ 신숙공주)가 있었다.

 

성종은 후추 중개무역으로 돈을 벌기 위해 후추 씨앗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결국 후추는 구하지 못 하고 주변국에 성종이 후추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나 계속해서 조공으로 후추가 들어오는 바람에 창고에 후추가 가득히 쌓여, 예쁜 비단 주머니에 담아 조정 관리들에게 하사하기도 했다한다.

 

④10대 연산군(재위1494-1506)의 일화이다. 성종과 연산군이 오랜만에 밖에 바람 쐬러 나와서 성종이 “융아, 좋지 않으냐?”하니 연산군이 소떼를 보며 “아바마마, 저 송아지도 어미 소가 있는데 저는 왜 어미가 없습니까”라고 말했다. 또 다른 야사에서는 연산이 동궁이었을 때 어느 날 성종에게 밖에 나가 놀고 싶다고 요청해 성종이 허락을 했다. 저녁에 동궁이 궁궐로 돌아오자 “오늘은 밖에서 무엇을 보았느냐?”하고 묻자 “구경할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다만 송아지 한 마리가 어미 소를 따라가는데 그 어미 소가 울면 송아지도 따라 우니 그것이 가장 부러운 일이었습니다.”하여 성종이 가여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연산군은 공부하는 것을 매우 싫어해서 왕자를 교육하는 학자들이 매우 고생을 했다고 한다. 매일 꾸중 하면서 가르쳤던 선생들을 폐비 윤씨 사건이 일어났을 때 모두 죽여버렸다고 한다. 연산은 춤도 잘 추고 잘생긴 꽃미남이었다고 한다. 모후인 폐비 윤씨와 고려 공민왕의 왕비인 노국대장공주의 얼굴이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관공서에 명령해 노국대장공주의 초상화를 수집하도록 한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보면 대왕들도 한사람의 인간이었고 그들의 사생활을 보면 보통집 아이들과 별로 다를바가 없었던 것 같다. 인간의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은 비슷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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