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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의 은혜와 축복(행 2:1-13) 196호
이기복 감독/하늘문교회 원로목사
 
편집부   기사입력  2019/06/21 [15:39]
▲ 이기복 감독 ▲하늘문교회     ©편집국

지난 6월 9일부터 교회 절기로 성령강림절입니다. 성령강림절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50일이 되는 주일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령강림절을 오순절이라고 합니다. 지난 4월 21일이 2019년 부활주일이었음으로 지난 6월 9일이 오순절이요 성령강림절입니다.

 

본문 행 2:1절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순간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이니까”라고 묻는 제자들에게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었으니 너희가 알바가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예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자들과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하나님의 약속하신 성령강림을 기다리며 기도할 때 성령이 충만히 임하였습니다.

 

2절에 보면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절에 “마치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옛날 번역에는 “다른 언어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다”는 말을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오순절(五巡節), 즉 성령강림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시작된 날입니다. 일명 교회의 생일이라고 말합니다. 이 때부터 오늘의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강림한 마가의 다락방은 초대교회가 시작된 최초의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성령강림의 은혜와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1. 성령강림은 온 집에 가득한 은혜요 축복입니다. 

본문 2절에 보면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령강림은 하늘로부터 시작하여 성도들이 모인 집에 가득하였습니다. 여기 “가득하였다”는 말은 충만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차고 넘친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온 집에 가득하였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성령이 120명의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던 그 곳에 충만하게 임하였음을 말씀한 것입니다. 즉 마가의 다락방교회에 성령이 충만하게 임한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본문의 “온 집에”라는 말씀이 헬라어 원문에 보면 “홀론 톤 오이콘”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 “오이콘”은 “집”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영어로 번역할 때에 “all the house”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여러 가지로 표현을 하는데 크게 네 가지로 표현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집이요,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셋째 성령의 전이요, 넷째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이 교회라고 정의합니다. 여기 하나님의 집,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 성도들의 모임이라는 말씀은 바로 교회 공동체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 공동체가 다 성령 충만함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은 오순절 성령강림은 바로 교회에 임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모름지기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성령이 역사하지 않은 교회 성령이 떠난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성령이 충만하지 않고 사람들로만 모이면 시끄럽고 싸우고 온갖 추태를 다 부립니다. 하나의 쉬운 예를 들어 봅니다. 교회로 모이던 어떤 장소나 건물도 그 교회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고 그 건물을 누가 사서 다른 용도로 사용하게 된다면 그 건물이나 장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성령이 거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매각하여도 잘해야 은혜가 되고 덕이 됩니다.

 

시내 어느 건물은 전에는 교회로 십자가가 세워졌고 교회 간판도 크게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지나다 보니 교회가 절간이 되었습니다. 왕복 8차선 도로변의 건물이 교회였는데 절간으로 변하니까 참으로 지날 때 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생깁니다. 그곳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또한 어떤 교회는 교회 매각을 이단 단체에 매각을 하여 이단이 모이는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에 우리교회가 선화동 교회를 매각하고 월평동 이곳으로 이전을 할 때 어느 사업을 하는 분이 그 건물과 대지를 자기에게 팔라고 제안이 왔습니다. 그곳에 복합 상가아파트를 짓겠다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리고 금액도 교회에 매각하는 것보다 유리하게 해 주겠다는 제안이었습니다. 그 때 저와 우리교회가 분명이 한 것은 교회가 아니면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하여도 팔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전국적으로 돈을 더 준다하여 교회를 이단에게 팔아 악의 소굴인 이단교회가 되어 문제가 발생하여 교단적인 문제가 된 경우가 있습니다. 요즈음도 이단들이 잘 안 팔리는 교회를 돈을 더 주고 매입을 한다고 합니다. 새로 이사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중에 그곳을 무엇으로 사용하느냐도 더 중요합니다.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는 것은 지상의 모든 교회가 성령이 충만한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2. 각 사람 위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3절에 보면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이 원문에는 “불의 혀 같은 성령이 그들 각각의 하나하나 위에 머물렀다”로 되어 있습니다. 즉 그 자리에 모인 각각의 사람 하나하나에게 성령의 불이 임하였다는 말씀입니다. 마가의 다락방교회에 모인 사람 각자에게 불 같은 성령이 강림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령강림절에 우리교회도 모든 성도 각 사람에게 성령이 충만히 임하길 축원합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과 나 개인과의 1:1의 관계입니다. 다른 사람 은혜 받았다고 나도 그냥 은혜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같은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려도 어떤 사람은 은혜를 충만히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은혜는 받지 못하고 마귀의 영이 틈타 시험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는 부흥회에서도 은혜를 충만히 받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전혀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세상의 어떤 환경이나 자리가 아닌 교회에서 시험 들어 타락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도 보면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다 은혜 받아 하나님을 찬미하고 간증하고 네 것 내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행 2:44),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행 2:46)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그렇게 믿음생활 하니까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초대교회 성도 중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있었는데 은혜를 받아 자기의 소유를 팔아 하나님께 바치기로 했다가 막상 돈을 손에 쥐고나니 시험에 들었습니다. 두 부부가 서로 상의하길 그 중에 얼마는 감추고 일부만 가지고 가서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습니다. 그리고 다 바치는 것처럼 거짓 행동을 했습니다. 즉 은혜 받을 때의 마음이 변하였습니다. 또 부부가 서로 똑같이 공모를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속이고 사도들을 속이고 자기 자신을 속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성령은 거룩한 하나님의 영입니다. 성령 받으면 더 정직해 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그러한 잘못된 행동을 하지 못합니다. 거짓말이나 다른 사람과 악을 공모하지 못합니다. 그 안에 악령이 들어가니까 속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가 엄히 책망을 했습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고 꾸짖었습니다. 그 때라도 회개하였으면 용서받았을 것이나 끝까지 성령을 속이다가 부부가 다 저주를 받았습니다. 부부라면 하나님의 일에는 한 사람이라도 바르게 하면 다같이 살지만 똑같이 사단에 이용을 당하면 같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 중에 에베소교회에 들렸습니다.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면서 물었습니다. 2절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으니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절에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고 물으니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을 말씀을 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더라”고 6-7절에 말씀했습니다. 여기서도 보면 에베소교회에 성령이 임하였는데 거기 모인 모든 사람이 성령의 충만을 받아 방언하고 예언을 하였습니다.

 

성령은 온 집 즉 교회에 임하지만 개인적이라는 것을 아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성령강림의 보편성과 개별성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웨슬리 목사님의 말씀대로 보편적이지만 개별적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구든지”와 “믿는 자”입니다. 행 2;17절에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말세에 내가 내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는 것은 개인적이라는 사실입니다.

 

금년 성령강림절을 맞아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성령충만을 받기를 축복합니다. 마가의 다락방교회처럼 모든 교회가 성령이 충만하고 모든 성도가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고 각종 은사가 임하시길 축복합니다. 

 

3. 능력을 받아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교회에 성령이 임하고 거기 모인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으니 모두가 능력을 받아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퍼져 나간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행 1;8절에 말씀하시고 축복하였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렇습니다. 성령이 충만히 임하는 교회는 권능을 받고 능력 있는 교회가 됩니다. 성령 충만을 맞은 성도들도 권능을 받아 세상에서 예수와 복음의 증인이 됩니다.

 

우리 대한민국교회도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난 대부흥운동이 한국교회 부흥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계속적으로 일어난 성령의 강한 바람과 불길은 제3의 성령의 물결이 되어 한국교회 성장의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전 세계를 향하여 복음을 들고 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5대양 6대주 한국 선교사가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전 세계에 흩어져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선교사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한국교회 선교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미국이나 유럽의 교회와 성도들이 성령충만을 받지 않고 세속화 되면서 교회가 힘을 잃고 선교의 주도권이 한국교회로 넘어온 것입니다.

 

한국교회도 지금이 중요합니다. 지금이 위기요 기회입니다. 교회는 무슨 인간적인 운동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찬란한 역사와 전통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인 마가의 다락방교회와 같이 성령이 충만해야 하고 초대교회 성도들과 같이 성령의 충만을 받아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오늘날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도 성령보다 인간적인 방법들과 세속적인 것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특히 교회 정치에 빠지면 성령을 외면하게 됩니다. 세속 정치인들보다 더 타락하는 행동을 합니다.

 

지금이야 말로 한국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충만으로 능력 받아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파도가 밀물 듯 몰려오는 것처럼 세속의 죄악된 물결이 파도치는 이 세상에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정의를 가장한 사탄 마귀의 세력들 성경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동성애자들의 죄짓는 행위나 행사는 날이 갈수록 거세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단들이 난리 소동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잠자고 방관하는 현실입니다. 교회도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으로 행동을 합니다. 이제는 거추장스런 외적인 지위나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화려한 이력 즉 오랫동안 쌓은 스펙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의 성도들의 성령 받은 광경을 보고 오순절에 예루살렘 성회에 참석하러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깜짝 놀라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12절에 “다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고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였습니다. 오늘을 사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도 성령충만한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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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6/21 [15:39]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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