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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徐載弼, 1864-1951) 개화파, 의사, 독립운동가(독립협회 창설) ①
김호욱(광신대학교 교수(역사신학), 기독교향토역사연구소 소장)
 
편집부   기사입력  2019/06/07 [16:33]

어린시절 

서재필은 차밭으로 유명한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 외가에서 1864년 1월 7일 아버지 서광언과 어머니 성주 이(李)씨 사이에 5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서광언은 진사였고, 외증조부 이유원은 지극한 효성으로 보성 사람들이 여러 번 조정에 천거할 정도였다. 외할아버지 이기대는 학문을 즐겨 하여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는데, 추사 김정희가 직접 쓴 가은당이란 정자를 짓고 수천 권의 책을 쌓아 놓고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와서 보게 하였다. 어린시절 학문을 가까이하는 외가에서 자란 서재필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먼저 천자문 등을 떼고 무척 영특한 아이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키가 다른 사람보다 크고, 패기와 기상이 넘쳐흘렀으며 매우 당당하였다. 그리고 자존심도 강하였고 아는 것도 많아 자신을 높이 평가하여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아들이 없었던 7촌 재당숙 서광하의 집에 일곱 살 때 양자로 간 후 서울 외삼촌댁에서 공부하였다. 

 

과거 급제와 일본 생활 

서재필은 한양에 머물면서 1876년 불평등한 일본과의 강화도조약 등 조국의 사정을 알게 되었고, 김성근의 집에 출입하던 삼촌 서광범과 김성근의 친척인 김옥균을 만나게 된다. 김옥균을 통하여 철종의 부마인 박영효를 만나고, 서구 문물을 익히 알고 개화를 주장한 박규수, 오경석, 유대치 등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망원경, 지구본, 손목시계 등 새로운 문명을 접하게 되어 서서히 개화파와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1878년 초시에 합격하였고, 1879년 고종 임금이 직접 주관하는 전강에서 1등을 하여 바로 과거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졌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게 된 서재필은 개화파 인사들과 많은 교류를 갖게 되는데, 특별히 김옥균을 정신적인 스승으로 존경하며 따랐다.

 

1883년 서재필은 청년 16명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1854년 개항한 일본은 서양문명을 도입하여 1872년에는 현대적인 우편제도와 철도를 개통했고, 전신, 전보를 사용하는 등 서양의 여러 문물들이 들어와 사회가 변화하고 있었다. 게이오 의숙에서 일본어를 익히면서 일본에 체류 중인 미국인들에게 기초적인 영어를 배웠고, 토야마 육군하사관학교에서 총검술과 제식훈련과 폭탄투척 등의 신식 군사훈련도 받았다. 서재필은 이러한 과정을 마친 후 1884년 7월 조선으로 돌아왔다. 일본에서 돌아와 고종에게 신식병사 양성을 건의하여 고종으로부터 허락을 받고 사관장이 되었으나 조선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있던 청과 민씨 세력에 의해 무산되고 말았다.

  

갑신정변의 실패와 가문의 몰락 

서재필은 1884년 12월 4일에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김옥균, 박영효 등과 함께 창덕궁을 빠져나가 변복하여 일본 공사관에 숨어 있다가 일본으로 건너갔다. 부모 등 그의 가족들은 사약을 받거나 죽임을 당하였다. 관기로 보내지게 된 서재필의 부인은 자결했고, 그의 두 살 된 아들은 굶어 죽었다고 한다. 생부 서광언도 옥중에서 자결하였으며, 맏형 서재춘도 약을 먹고 자결하였고, 이복형 서재형은 살해당하였다. 그의 생가나 양가 등 거의 모든 형제들은 처형 또는 자결하게 되는 대역죄인의 가정이 되었다. 

 

망명생활 

간신히 몸만 빠져나와 망명을 오게 된 일행은 허름한 방을 얻어 기거하였다. 그들은 수시로 조선에서 죽이고자 보낸 자객들을 피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고, 먹을 끼니를 챙기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서재필은 미국 성서공회의 대표인 선교사 루미스(Henry Loomis)를 만나 조선말을 가르쳐 주고, 그들에게 영어와 미국에 대하여 배웠다. 루미스 선교사는 이수정이 우리말로 성경을 번역할 수 있도록 제안했다. 개화파 일행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 망명하기로 결정하고 김옥균은 중국으로, 서재필과 서광범과 박영효는 미국으로 가기 위해 준비했다. 여비가 없었던 그들은 문장가인 서광범과 박영효가 한시를 써서 일본인들에게 팔아 돈을 마련하였다. 1885년 5월 26일 서광범, 박영효, 서재필은 존 크레익 바라(John Craig Balagh)선교사가 써준 소개장을 가지고 미국으로 향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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