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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신앙으로 승리합시다(마 28:1-10) (대전지역 연합예배 설교) 192호
이기복 감독/하늘문감리교회 원로
 
오종영   기사입력  2019/04/26 [15:49]
▲ 이기복 감독 ▲하늘문교회원로     ©편집국

할렐루야! 사망권세와 사탄 마귀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사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셨고, 온 인류의 희망이 되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복이 부활절 연합예배에 함께 모인 성도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어 부활의 신앙으로 승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기독교회가 존재하게 된 가장 중요한 세 가지의 절기가 있습니다. 첫째가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으로 이 땅에 태어나신 성탄절입니다. 두 번째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부활절입니다. 세 번째가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감림하여 권능을 받고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기 하신 성령강림절입니다.

 

세 절기가 다 중요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요 생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활은 언제나 생명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부활을 헬라어로 “아나스타시스”라고 하는데 생명이라는 말 “조에”와 직결되는 단어입니다. 즉 “생명을 회복하는 것”, “죽은 생명이 살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생명이 없는 부활이 있을 수 없고, 부활이 없는 생명이 있을 수 없는 분가분리의 관계입니다. 요 11:25-26절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했고, 초대교회 때부터 사도들이나 성도들이 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과 생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망과 마귀 권세와 불의의 권세를 정복하고 부활하셨습니다”라고 담대하게 외쳤고 어떤 위협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부활의 증인이 되어 지금 기독교가 세계 인구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회는 점점 부활신앙이 퇴색하고 인권운동, 도덕주의, 교리주의, 교권주의, 사랑실천운동, Post Modernism 즉 종교다원주의 등이 복음인 것처럼 변질되면 서 기독교의 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교회가 다시 한 번 부활신앙으로 무장을 하고 초대교회와 같이 다시 일어나야 하고 오늘날 우리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사탄 마귀의 책동과 각종 죽음의 세력들이 난무하고 정의를 가장한 불의의 세력과 기독교를 가장한 각종 이단들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더 이상 무능한 기독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부활신앙을 회복할 때 가능합니다.

 

한국교회는 이제 더 이상 주말의 연휴와 교리적인 안식일을 지키는 종교단체가 아니라 부활의 주일을 지키며 부활의 신앙으로 새롭게 무장을 하고 이 시대의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만열 교수에 의하면 지금부터 100년전 3.1운동 당시 대한민국의 인구는 1,600만명 이었습니다. 그해 말 기독교인 숫자는 21만명 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인구의 1.3% 내지 1.5%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기독교와 성도들의 힘과 영향력은 대단하였습니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절반에 가까운 16명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남한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기독교인을 자랑하지만 기독교는 사회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힘과 영향력을 잃었습니다. 심지어는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의 부활절을 기점으로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지난 2000년 동안 기독교회의 설교의 핵심은 바로 부활의 생명, 부활의 능력, 부활의 소망에 그 바탕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예수님의 역사적인 부활을 구체적으로 증거하면서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우리는 거짓 증언자들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면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고전 15:17-20절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기독교 부활신앙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으로 읽은 마 28:1-10절이나 마가복음 16장과 누가복음 24장에 공통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한 내용입니다. 

 

1.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의 권세를 정복하고 승리한 것입니다. 

죽음이란 그 실체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힘이고 모든 것 위에 절대적 권세로 군림을 합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도,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사람도, 세상을 꿰뚫는 지식을 가진 사람도, 세상을 호령하던 영웅호걸도 죽음의 권세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부활절 이른 새벽에 세 여인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매도 죽으신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바르기 위해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두렵고 떨리며 슬퍼하는 모습으로 무덤을 찾아갔습니다(막 16:1-3).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철학적 신학자 폴 틸리히(P. Tillich)의 증언처럼 태어나서부터 죽음의 문을 향하여 가고 있다는 말과 같이 부활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인생의 종착역인 죽음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들의 증언과 같이 죽음 권세를 물리치고 부활하셨습니다. 장사 지내고 인봉을 하고 로마 병정들이 철통같이 지키는 무덤의 문을 박차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사셨다는 사실을 믿는 성도들에게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생명 앞에서는 죽음의 세력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늘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리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부활신앙으로 사망권세를 정복하고 영원히 승리하는 축복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부활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은 이렇게 외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을 네가 믿느냐?”(Do you believe this)는 질문입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은 사탄 마귀 권세를 정복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배후의 세력은 사탄 마귀였습니다. 사탄 마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 사람들이 바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 이었고 정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요 13:2절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롯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고 말씀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었던 대제사장이나 제사장들은 돈을 써 사람을 매수하여 예수를 모함하고 죽이는 일에 앞장을 섰습니다. 또한 마귀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요 1서 3: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사탄 마귀의 세력을 정복하신 줄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되고 각종 죄악의 배후 세력으로 활동하는 사탄 마귀의 세력을 부활 신앙으로 물리치고 정복해야 합니다. 각종 이단이 날뛰는 것도 배후에는 사탄 마귀가 역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3. 주님의 부활은 불의의 권세를 정복하고 진리가 승리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당시의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은 불법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돈을 주고 사람을 매수하여 예수님을 죽이는 일을 도모하였습니다. 율법을 악용하여 불의한 재판을 하고 예수님을 죽이는 일을 자행하였습니다.

 

당시의 군중들도 불의한 종교 지도자들의 선동에 매수당하고 군중심리에 의하여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이용당하였습니다. 흉악한 강도를 놓아 주는 것보다 아무런 죄가 발견되지 않는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앞장을 섰습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종교인들의 만행입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 군중들 그리고 로마 정치 지도자들이 불의로 협력을 하여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성공을 하고 축하의 축제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불의의 세력을 정복하고 승리하였습니다.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은 타락한 교권과 교리주의로, 군중들은 지도자들의 사주와 군중심리에 의하여, 그리고 당시의 정치 지도자들은 불의와 타협을 하여 의로우신 주님을 죽이고 승리한 것처럼 자축을 했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불의를 정복하고 승리한 사건입니다. 

 

4. 주님의 부활은 두려움과 불안 슬픔을 이기고 승리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시니 따르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후환이 두려워 방문을 잠그고 슬픔과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도 예수님의 죽음으로 슬픔으로 잠겼고, 새벽에 무덤을 찾아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절망하고 슬퍼하며 허망한 발걸음을 엠마오로 향하던 글로바와 다른 한 사람도 탄식하며 길을 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세상도 슬퍼하고 분노하여 땅이 진동을 하고 바위가 터지고 무덤이 열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마 27:51-52).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불안을 정복하고 평안과 기쁨 그리고 영원한 소망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제자들은 방문을 박차고 나와 갈릴리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슬픔과 두려움과 불안에 떨면서 무덤을 찾았던 세 여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크게 기뻐하고 평안을 얻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마음이 뜨거워졌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격과 소망을 주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세상이 불안하고 앞날이 불안합니다. 근심 걱정과 탄식하는 소리가 진동을 합니다. 우리 모두는 부활 신앙으로 재무장을 하고 승리합시다. 

 

5. 예수님의 부활은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복음의 증인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외쳤습니다.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첫 번 째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은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을 찾은 여인들에게 속히 가서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전하게 하였습니다. 갈릴리가 어디입니까? 지형적으로도 낮은 지역이었고 당시에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어촌입니다. 당시에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지역입니다. 거기에서 만나자고 하셨고 그들에게 먼저 가서 부활의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우리도 오늘의 갈릴리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에게 부활의 복음을,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들을 자유롭게 하는 부활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부활의 신앙을 체험한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을 부득불 전하지 않을 수가 없고 만약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고전 9:16).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활의 주님을 전하다가 붙잡혀 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절대로 예수를 전하지 말라고 엄히 경고를 받았을 때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We have seen and heard)고 당당하게 외쳤습니다(행 4:20).

 

이것이 바로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말 못하는 벙어리 교인이 되었습니다. 이단들은 잘못된 이단의 교리를 가지고 전도한다고 혈안이 되어 있고 교회로 추수하러 가자고 날뛰지만 정작 교회와 교인들은 영적으로 잠이 들었고 입은 있으나 벙어리 성도가 되었습니다.

 

오늘 부활절을 맞아 우리 모두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복음을 들고 오늘의 갈릴리로 갑시다. 이것이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 중요한 목적입니다. 오늘 우리도 오늘의 갈릴리로 부활의 복음을 들고 나가야 합니다.

 

성을 노리개로 취급해온 권력자들이나 돈 많은 졸부들, 인기 많은 연예인들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끊는 사람들의 현장인 오늘의 갈릴리로 가야 합니다.

 

동성애도 인권이라고 주장을 하고 축제를 하며, OECD 국가 중에 신생아 출생률이 가장 낮아 앞으로 나라의 존폐까지 두려워하는 우리나라 현실에 헌재의 결정으로 낙태가 합법적인 나라로 추락하였습니다. 인권을 그렇게 강조하고 주장하면서 태아의 인권은 죽여도 되는 불합리한 우리의 현실입니다.

 

어느 산부인과 의사는 청와대 게시판에 “이제 나는 의사를 그만 두어야 하는지”라는 고뇌에 찬 청원 글을 통하여 “저는 도저히 신비롭게 형성된 태아의 생명을 제 손으로 지울 수 없다”면서 의사에게 낙태 거부권도 허락해야 한다고 청원 글을 올렸습니다.

 

부활절을 맞아 오늘의 갈릴리로 부활의 복음을 들고 찾아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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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4/26 [15:49]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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