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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다
김형태 박사(전 한남대학교 총장)
 
오종영   기사입력  2019/04/12 [16:32]
▲ 김형태 박사(전 한남대학교 총장)     ©편집국

동방의 의인 욥은 이 세상 도덕과 윤리적 기준으로 볼 때 아무 흠결도 없었다.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다. 7남 3녀의 자녀를 잘 길렀고 양(7,000마리), 낙타(3,000마리), 소(500마리), 암나귀(500마리)와 많은 하인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자녀들과 전 재산을 잃어버렸다. 그때 그의 결론이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은즉 또한 알몸이 되어 돌아갈 것이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였다. 이 세상에 내 소유물은 아무것도 없다(욥 1:21)는 그의 고백이 곧 우리 모두의 선언이어야 한다.

 

우리들은 매일 세수하고 목욕하고 양치질하고 멋을 내 보는 이 몸뚱이가 ‘나’라고 착각하며 사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육신을 위해 돈과 시간, 열정과 정성을 쏟아 붓는다. ‘예뻐져라. 멋져져라, 날씬해져라, 늙지 마라, 병들지 마라, 죽지 마라’라고 하지만 결국 이 육신은 내 소원과 상관없이 살도 찌고, 야위어 가고, 병도 들고, 늙어가고, 암에 노출되기도 하고, 기억력이 점점 흐릿해지고, 결국엔 죽게 된다. 누가 그 길을 막아서겠나. 이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다. 배우자가 내 것인가? 자녀들이 내 것인가? 친구들이 내 것인가? 내 몸뚱이도 내 것이 아닐진대 누가 내 것이며 어느 것이 내 것이란 말인가? 모든 것은 한순간 인연으로 만났다가 구름이 흩어지듯 헤어지고 사라지는 것인데… 고와도 한때요, 미워도 한때의 만남일 뿐이다.

 

불가에서는 이 세상 사는 동안 8가지의 고통을 겪게 된다고 한다. ①생고(生苦/태어나는 고통)와 ②노고(老苦/늙는 고통)와 ③병고(病苦/병드는 고통)와 ④사고(死苦/죽는 고통)와 ⑤애별리고(愛別離苦/내가 좋아하는 것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와 ⑥원증회고(怨憎會苦/내가 싫어하는 것이나 원수 같은 사람과 만나게 되는 고통)와 ⑦구불득고(求不得苦/내가 원하거나 갖고 싶은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와 ⑧오음성고(五陰盛苦/육체적인 오욕(식욕, 수면욕, 성욕, 재물욕, 명예욕)이 지배하는 아픔))를 소위 ‘여덟 가지 고통’(八苦)라고 한다. 이런 고통은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겪어야 하는 짐수레와 같은 것이다.

 

옛날 성인들이 깨우쳐 준 정답이 생각난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몸이나 생명이나 형체 있는 모든 것은 ①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꿈같고, 환상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으며) ②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슬과 같고또한 번갯불과 같으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이를 잘 관찰하며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이니라.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피할 수 없다면 껴안아서 내 체온으로 다 녹이자. 누가 해도 할 일이면 내가 하자. 언제 해도 할 일이면 지금 하자. 지금 내가 할 일이면 더 잘하자. 스스로 나서서 즐겁게 일하자. 남도 나와 같이, 나중도 처음같이, 속도 겉과 같이 대하자. 오늘 내 앞에 있어 나와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정성을 다 하자. 운다고 모든 일이 해결된다면 온 종일 울겠다. 짜증 부려 일이 해결된다면 하루 종일 짜증을 부리겠다. 싸워서 모든 일이 해결된다면 미친 듯이 싸우겠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일은 풀려가는 순서가 있고, 해결되는 시간과 장소(Right time, right place)가 있다. 내가 조금 양보한 그 자리, 내가 조금 배려한 그 자리, 내가 조금 덜어 논 그 그릇, 내가 조금 낮춰선 그 높이, 내가 조금 덜 챙긴 그 공간들… 이런 여유와 촉촉한 인심이 나보다 조금 더 불우한 이웃과 다른 생명들에게 ‘희망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엔 76억의 인구가 함께 살고 있다. 이 우주엔 수백억 이상의 다른 생명체들이 함께 동거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맘대로 처리하거나 더럽히거나 망가뜨릴 수 없는 것이다. 모두 함께 살아갈 ‘공생공간’이기에 존중해야 한다. 이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다. 내가 소유하거나 누리는 모든 것은 그 누군가의 도움과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나를 맞아 준 배우자나 우리 가정에 태어난 자녀들이 고맙다. 낳아주신 부모님, 일할 수 있는 직장, 나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창공을 나는 날짐승들, 빽빽한 숲과 나무, 비와 눈(雪), 잘 수 있는 집, 먹을 수 있는 음식, 여행 갈 수 있는 장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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