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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목사, 사진을 찍는 목사 이 기 혁 목사
“제자훈련과 페밀레시안을 모토로 이상적인 교회상을 제시하는 대전새중앙교회”
 
오종영   기사입력  2019/04/12 [16:06]

 

▲ 이기혁 목사가 본지 발행인과의 인터뷰에 앞서 티타임을 가지며 지난 목회 여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오종영

 

▣ 창립 38년을 맞이한 대전새중앙교회 

대전새중앙교회는 예장합동측 동대전중앙노회 소속으로 현 이기혁 담임목사가 1981년 9월 개척한 이후 올해로써 38주년을 맞이했다. 2021년이면 40주년을 맞이하는 셈이다.

 

이기혁 담임목사는 “대전새중앙교회가 평범한 교회로 성장해 가는 것을 원하고 드러나기보다는 지역에 흡수되고 지역과 스며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서 “제자훈련을 핵심으로 현재 25년 이상 지역사회를 품는 훈련된 일꾼을 양성해 나가는 것이 목회 철학”이라고 밝혔다.

 

이 목사는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은 성도들에게도 제자훈련이 교회에 가장 핵심이며 현재 25년 정도 되었습니다. 처음 교회 개척할 때도 예배를 중심으로 했습니다. 성경공부와 예배, 그리고 기도를 강조하면서 기도원도 많이 다녔습니다. 맨 처음 개척할 때에는 17평의 작은 공간에서 시작했습니다. 제가 29살에 개척을 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철도 모르고 맨땅에 헤딩하듯이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대동장로교회 유치부에서부터 신앙생활을 하고 신학교를 가고 강도사 인허를 받았습니다. 기도와 예배로 뜨겁게 찬송하고 기도하며 목회했습니다. 크게 다른 전략은 없었습니다. 개척 하고 3년 뒤에 현재의 교회 자리 땅을 샀고 또다시 3년 후에 교회를 건축 했습니다”라면서, “하지만 목회에 대한 그림 없이 개척을 하니 38-39살이 되어 목회에 첫 번째 위기가 왔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과 함께 공부를 시작했고 그러다 가정사역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전했다.

 

이 목사는 1993년도에 ‘페밀리미니스트리’라는 강의를 처음 알게 되었다. 이 목사는 말하기를 “이 책을 내신 교수님에게 직접 강의를 들었는데 이것이 저에게는 매우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 때 가정사역에 대한 학문적 기초를 쌓게 된 것입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교회에 가정사역이 기본 베이스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가정사역을 신청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 변화를 실감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이는 첫째로 자기 가정의 문제를 오픈하고 싶지 않아 하는 이유와 두 번째로 자기 가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작용한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목사는 “가정사역을 통해서 붕괴되던 가정이 회복되는 것을 보았고 이로 인해 자신도 목회의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저에게 목회는 설교와 예배뿐이었는데 소그룹과 제자훈련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당시 제자훈련을 받으셨던 1기, 2기, 3기 멤버들이 지금 교회의 핵심멤버가 되어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교회가 흔들림이 없고 장로님들과도 긴장이 전혀 없습니다. 다 함께 형제 같고 감출 것도 없고 한 피를 나눈 형제처럼 지내니까 큰 소리가 날 일도 없고 항상 화목했습니다”

 

이 목사는 학생일 때 부르심을 받았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학생회 회장을 하면서 많은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던 중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생회 부흥회를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기도를 할수록 이 생각은 더욱 확고해지고 확신이 생겼고 이를 목사님과 학생회 선배들에게 상담하자 흔쾌히 수락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대전에서 열린 학생회 첫 집회였고 이 날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주셨습니다. 당시 백인석 목사님을 초청하여 집회를 진행했고, 그 때 함께했던 멤버들 중에 목사님이 되신 분들도 많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게 된 데에는 백인석 목사님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백인석 목사님께서 많은 인재들을 세우신 것 같습니다”라고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 2021년 창립 40주년을 앞두고 지난날을 회고하며 미래를 향한 청사진도 제시하는 이목사 

“저는 38년 동안 목회해 오면서 변함없이 붙들고 있었던 제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습니다. ‘오직 성경’, ‘오직 기도’입니다. 물론 모든 목회자들이 마찬가지겠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 외고집처럼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 부분에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배와 말씀과 기도와 훈련이 목회의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현란한 변화가 야기되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이 시대에 더 성경과 기도가 밑바탕이 되는 영성이 판가름된다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현재 사회는 정보에 의해서 결정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대형로펌회사에서 변호사 대신 로봇을 쓰고, 현재 일본에서는 로봇 승려까지도 나오고 아나운서, 기자까지 나오고 있으며 독일에서는 로봇 목사가 컴퓨터로 설교까지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재주로서는 이를 능가할 수 없습니다. 로봇이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를 조합해서 원하는 시간만큼의 원고를 만들고 설교를 한다면 문제를 일으킬 것도 없고 사례비 걱정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로봇은 영적인 터치는 할 수 없습니다. 감성은 터치할 수 있지만 영혼을 터치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라면서,

 

“그렇기에 앞으로의 목회는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빅데이터가 아닌 영적인 영성이 회복되지 않으면 논리적, 합리적 시대를 대항할 수 없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우리 교회가 준비를 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라고 전했다. 

 

▣ 제자훈련과 페밀레시안을 모토로 ‘즐거운 교회, 행복한 가정, 역동적 목장’이라는 이상적인 교회상을 제시하는 교회 

페밀레시안은 페밀리와 에클레시안의 합성어이다. 즉 가정사역을 사역의 중심에 두고 있다. 그래서 이 목사는 설교할 때에도 항상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있다. “성도들 가운데 음성적인 성매매 같은 경우가 있다는 전제하에 강하게 메시지를 전합니다. 가정을 지키는 방법이기 때문에 탈선된 욕망의 노예가 되지 말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목사는 제자훈련을 위해서는 가정을 중시할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가정사역을 동반했고 늘 중요한 것이 기도이기 때문에 기도사역훈련도 함께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 목사는 1994년부터 주일 저녁예배가 끝나고 山(산)기도를 다녔다. 10년이 넘게 다니다가 체력이 안되어 고난주간 같은 때에 교인들과 함께 다녔다. 매년마다 교인들과 함께 가는데 많이 갈 때는 100여명이 함께 가서 산에서 부르짖으며 기도하곤 했다.

  

▲ 대전새중앙교회 전경     ©사진제공:대전새중앙교회

 

▣ 지역사회를 섬기는 대전새중앙교회, 교회 이미지 제고에 큰 기여 

2001년도에 미국에서 DNA사역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어와 사역이 시작되었을 때 전국에서 6개 교회를 선정한 적이 있는데 그때 대전새중앙교회도 함께 했다. 6개월간 존 우드 선교사가 매주 대전새중앙교회에 와서 훈련을 했는데 이때 약 40여명의 교인이 함께 훈련을 받고 지역사회를 어떻게 섬길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며 목장별로 지역의 관공서를 돌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교회가 소재해 있는 지역을 주일예배가 끝나고 청소를 함께 시작했다. 예배 끝나고 교회 식구들이 함께 청소를 하며 봉사하자 처음에는 지역 용역에서 하는 줄 알고 주민들이 무리한 요구도 하기도 했지만 교회의 이름은 말하지 않고 우리 지역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청소를 하고 있다고 대답하기만 했다고 한다. 약 3개월 정도가 지나자 지역 주민들도 대전새중앙교회 교인들이라는 것을 알아주었고 교회의 이미지가 많이 바뀌게 되었다. 이후 2001년도에 교회를 건축할 때에 지역주민 분들 덕분에 교회 건축도 큰 사고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지역사회를 몇 년간 섬기니 교회의 위상이 달라졌다. 이후 시작하게 된 것이 어린이날 축제였다. 또한 지역에서 좀 더 확대하여 나라를 위해서 할만 한 게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다가 현충일을 앞두고 3대가 함께 애국지사 묘 비석닦이를 하고 있다. “비석을 닦으며 비문을 읽어보면 35%정도는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참 감동적입니다. 그것을 읽는 것만으로도 역사교육이 되고 있습니다”라고 이 목사는 말했다.

  

▣ 가정의 치유와 회복에 집중하고 지역사회 동반자로서의 교회라는 목적을 향한 대전새중앙교회의 주요 사역과 핵심가치는 무엇일까? 

“‘겨자씨처럼, 한 알의 밀알처럼 그냥 썩자’입니다. 저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전도지를 준 적이 없습니다. 단 한 번도 교회 이름을 드러낸 적도 없습니다. 이를 위해 ‘섬기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사단법인을 만들었습니다. 이 사단법인의 이름만 드러내고 대전새중앙교회는 뒤로 물러나 있습니다” 대전새중앙교회는 이웃을 섬기면서도 교회의 존재는 감추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 것이다. “우리 교회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고 지역 교회들과 기독교의 위상이 높아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은 ‘섬기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으로서 회비를 내고 나머지는 협찬을 받아서 하고 있습니다. 항상 제가 교인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 제자도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고 십자가를 따르되 내 흔적을 남겨서는 안됩니다. 원래 죄인 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연약한 우리를 주님이 불러서 사용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흔적에는 주님이 남아야 하며 우리의 이름이 남아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교회 안에 입버릇처럼 기본으로 깔려 있습니다”

  

▲ 이기혁 목사가 자신의 사진 작품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종영

 

▣ 시를 쓰는 목사, 사진을 찍는 목사로서 감수성을 두루 갖춘 매력 있는 목회자 

이 목사가 시를 쓰게 된 계기가 있다. “교회를 개척하면서 주보에 칼럼을 써야 해서 그곳에 조금씩 쓰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장로님께서 주보를 동료 교수들에게 나누어 주신 적이 있는데 동료 분들이 글이 좋으니 수필을 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셨다 합니다. 저는 감사히 거절했지만 장로님께서 제 글을 공모전에 응모하셨는데 그것이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문학사랑과 대전문학(한국문학대전지부회)에서 수필가로 등단하게 되었습니다”

 

97년 9월부터 2000년 10월까지 밀레니엄쇼크로 한참 난리던 시절이었다. 이 목사는 2001년 1월 1일부터 역순으로 계산하여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97년부터 시작해 천일동안 강해를 하고 강해집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서 작업을 하던 와중에 한쪽 몸에 마비가 오기 시작해 급하게 MRI를 찍었더니 뇌에 3군데가 막혀있었다. 빠르게 치료한 덕분에 완전히 마비가 오진 않았지만 그 때부터는 연구는 했지만 원고는 쓰지 못했다. 그래서 현재도 출판은 하지 못하고 원고만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저는 제가 일 중독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자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후로 사진도 찍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여유를 갖게 되자 글도 변화되었습니다. 저의 아버지께서 선비셨기에 글을 잘 쓰셨는데 아마도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진도 어디에 가서 찍자는 것이 아니라 주제를 가지고 피사체가 보이면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렇게 사진을 찍고 글을 쓰기 시작하자 자연 속 사물에 의미 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목사는 “목회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잠시 멈추고 가까운 곳에라도 가서 숨을 돌리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 이제는 목회 하반기를 사역하고 계시는데 목회은퇴후의 삶이 매우 궁금하다. 교계의 중진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계획도 있으신지 

“딱히 이렇다 하는 계획은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을 신뢰하며 가고 있습니다. 29살에 개척해서 지금까지 오고 나니까 어떤 때에는 그냥 쉬고 싶기도 합니다. 설교준비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서 토요일을 놀고 싶은 생각도 종종 듭니다”

 

또 이 목사는 “요즘 제가 목회를 하면서 하나님께 제가 은퇴하면 무엇을 할지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뭘 해야 하나 생각해봤습니다. ‘목회자들을 위한 출애굽기 연구’를 후배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출애굽기를 주신 것은 대제사장, 즉 목회자를 위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목회자들을 향해 주시는 말씀을 은퇴하고 나면 좀 동역자들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부분은 교회론에 대한 고민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어서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해 후배 목회자들과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또 기회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외국에 있는 기관들과도 협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인사말씀 해 달라 

하루를 살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 년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계획하기조차 벅찬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입버릇처럼 피곤하다는 말을 했지만 이제는 몸으로 느끼는 피곤의 시대, 정신적 중압감에 시달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깜깜한 밤길에 어디서 맹수가 닥칠지 모르는 광야를 혼자 걷는 듯한 느낌의 시대를 살아가는데 우리에게 길동무가 될 수 있는 것은 정말 주님밖에 없습니다. 정말 우리가 하나님께 주님밖에 없다고 진지하게 자리에 앉아 하나님 앞에 침묵하고 머무르며 이야기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조금 더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주님과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님 앞에 가서 넋두리라도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진지하게 기도의 자리에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것 외에 답은 없습니다.

 

많은 독자분들께서도 진지함으로 주님 앞에 대면하시는 기회가 있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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