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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기독교계 3.1운동 100주년맞아 다양한 기념행사
2월 28일(목) 환영 리셉션 및 출판기념회, 샤프선교사 기념사업 및 음악회와 동상제막식 등 다양한 행사 펼쳐 3.1운동과 공주의 연계 역사 조명하는 기회 가져
 
오종영   기사입력  2019/03/15 [15:51]

 

▲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월 1일(금) 영명동산 선교사의 집 옆에 제막한 샤프선교사와 사에리시선교사 부부(왼쪽은 유관순)     © 오종영

 

공주시기독교연합회와 공주기독교역사위원회 및 한국선교유적연구회 공동으로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지난 2월 28일(목) 저녁 공주대학교 옥룡캠퍼스 한마루관 컨벤션홀에서 ‘공주기독교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환영리셉션 및 출판기념회를 시작으로 다양한 기념행사를 펼쳐 지역교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행사는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재미교포들을 초청한 가운데 우리 민족이 가장 어려운 시기였던 구한말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이 땅에 온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조명하면서 그들이 세웠던 학교와 다양한 시설탐방과 함께 공주에서 39년동안 독신으로 선교하면서 유관순 열사와 한국 최초의 여성목사 등의 수많은 여성 지도자를 길러낸 사애리시 선교사를 기념하는 동상 제막식을 통해 공주에서 순교한 사애리시 선교사의 남편인 샤프 선교사와 그의 제자 유관순 열사를 함께 작품으로 구성한 동상을 설립하는 등 유의미한 행사들을 진행했다.

 

특히 사애리시 선교사 부부와 유관순 기념동상 건립은 미국 LA와 뉴욕의 교포 성도들의 헌금으로 시작돼 공주를 비롯한 여러 지역으로부터의 헌금이 모아져서 동상 건립과 함께 선교사 묘지 정비 및 기념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충청권 최초의 근대학교인 영명학교를 세워 민족교육을 시키며 3.1운동의 여파로 자행된 폐교 위기에서 학교를 지켜내고 해방 후에는 미군정 농업부 고문으로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윌리엄스 선교사가 남긴 169통의 선교보고 편지를 근간으로 하는 ‘기도가 된 편지’를 출간함으로써 100년 전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는 은혜로운 기념행사가 됐다.

 

첫 번째 행사는 2월 28일(목) 오후 5시 공주대학교에서 거행된 전야행사로 서경희 아나운서(CBS라디오)의 사회로 진행됐다. 전야행사는 조철호 목사의 시작기도와 박달원 공주대 총장의 환영사에 이어 김현수 목사(공주기독교연사위원장)의 공주선교유적 소개, 인요한 한국국제보건기구 총재의 지리산 선교유적 소개 등 한국선교 100년의 유적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 이한희 선교유적기념사업 LA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과 김성태 위원장(뉴욕추진위원회), Michelle Park Steel(Sandra 정) 위원장이 오렌지카운티감독위원회 공적서를 증정했고, 서만철 한국선교유적연구회회장이 감사패를 증정했다.

 

이어진 축하공연에서는 찬양과 민요, 김진규 전 공주대 사범대학장의 ‘기도가 된 편지 출판기념회’ 책 소개와 축하의 말씀, 김영미 공주대학교 한민족교육문화원장의 낭송, 두란노출판사의 출판사 인사, 저자인 서만철 공주대 교수의 저자인사 후 환영 만찬 순으로 거행됐다. 3월 1일(금)에는 재미 교포들을 위해 공주시에 소재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무령왕릉 탐방과 기념예배 및 동상제막식 후 사애리시 선교사가 좋아하였던 라일락과 진달래 및 개나리 등을 영명동산 선교사 사택 입구에 식수하는 시간을 갖고 공주대 총장의 주최한 만찬 후 기념음악회를 열었다.

 

사애리시 선교사는 이화학당에서 선교사로 활동 중 1904년 로버트 아서 샤프 선교사와 결혼한 후 충청지역 선교책임자로 공주에 주재하면서 1905년 공주에서 명선여학교(영명학교의 전신)를 세워 여성교육과 선교활동에 힘을 썼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결혼 1년 만에 남편인 샤프선교사가 논산지방 선교활동 중 비를 피하고자 상엿집에 들렸다가 당시 유행하던 장티푸스에 감염되어 순교한 후 미국에 건너갔다가 1년여 만에 공주로 다시 돌아와 1908년 명선여학교 교장을 맡아 여성교육에 힘썼고, 강경만동여학교, 논산영화여학교 등을 설립하기도 했다.

 

사애리시 선교사는 결혼 1년 만에 남편 샤프선교사가 순교함으로 인해 자녀가 없었기에 어려운 여학생들을 양녀로 삼아 후원을 해 주었는데 이때 유관순 열사도 양녀로 삼아 2년간 영선학교를 다니게 했고 이 나라의 독립에 대한 필요성을 암암리에 가르쳤으며 이후 이화학당에 장학생으로 편입시켜서 삼일만세 운동의 주인공이 되게 했다.

 

이에 공주기독교역사위원회는 1915년 공주영명학교에 입학한 유관순이 사애리시 선교사와 함께 지금의 선교사의 집에서 370여m 떨어진 영명학교에 다니게 됐는데 이에 2014년 이 길을 찾아 ‘유관순의 길’로 명명하고 공주시와의 협의 하에 관리하고 있다.

 

3월 2일(토)-4일(월)에는 선교유적 및 한옥마을 탐방을 전주지역에서 실시한 후 김제 금산교회 탐방행사 및 한국교회에서의 주일예배와 세종시 탐방 및 공주기독역사박물관 관람 등의 일정을 소화하기도 했다.

/오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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