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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일장춘몽
김형태 박사(전 한남대학교 총장)
 
오종영   기사입력  2019/01/30 [16:54]

 

▲ 김형태 박사(전 한남대학교 총장)     ©편집국

수 백년 내지 수 천년 사는 나무에 비하면 인생의 길이는 남가일몽(南柯一夢)일 뿐이다. 수명(壽命)은 내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한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서는 있어도 죽는 순서는 정할 수 없다.

 

옛말에 “땡감도 떨어지고 홍시감도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100세를 넘기는 장수가 있는가하면 100달만 사는 자도 있고 100일도 채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인명재천(人命在天) :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다”란 한문 속담이 증명해주는 것이다.

 

라 퐁테느가 쓴 「노인과 세 청년」이란 시도 이런 현상을 묘사하고 있다.

 

“여든 살 노인이 나무를 심었다. “집을 짓는다면 몰라도 그 나이에 나무를 심다니” 이웃의 세 청년이 말했다. “정말 노인은 노망이 들었는가? 이 수고의 어느 열매를 너희들이 거둘 수 있을까? 족장만큼이나 너희들이 늙어야 할 텐데 인생을, 너희 것도 아닌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채워가지 말라. 이제부터는 예전의 과오만 생각하지 말라. 그 오랜 희망과 막연한 생각을 거침없이 버리라. 이것은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것, 너희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노인은 다시 일을 계속 했다. 청춘은 늦게 오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운명의 여신은 창백한 손으로 너와 나의 앞날을 똑같이 가지고 논다. 우리의 종말은 짧다는 점에서 비슷하나, 우리들 중의 그 누구가 맨 마지막으로 하늘의 광명을 즐길 수 있을까? 단 일초라도 너희 것이라고 보장해주는 순간이 있을까? 내 자손들이 즐길 이 나무 그늘은 내 덕분이지. 그래 너희들은 현인이 남들의 즐거움을 배려해 주는 것을 금하고 있지. 이것도 오늘 맛보는 과일이야. 내일도 난 그걸 즐길 수 있고 앞으로도 그렇지. 나는 이제 너희들 무덤 위에 비치는 새벽빛까지 셀 수 있어.”

 

결국 노인이 옳았다. 세 청년 중 하나는 아메리카로 가다가 항구에서 익사하고, 다른 하나는 출세하기 위해 공화국 군대에 입대했으나 예기치 못한 사고로 죽었다. 세 번째 청년은 그 자신이 접목하려던 나무에서 떨어졌다. 그래서 노인은 눈물을 흘리며 대리석 위에 새겨 놓았다. 위에 소개한 이 이야기를.”

 

죽음은 이처럼 나이 순이 아닌 것이다. 박이화가 쓴 「어떤 놈」이란 시도 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방금 전까지 어미 반경에서 놀던 새끼 고양이가 홀로 창 밖 난간 아래로 뚝 떨어져 있다. 아직 죽은 것 같지는 않은데 어디서 어떻게 알고 들이닥쳤는지 한 패거리 검은 불청객들 잔치집처럼 몰려와 북적대고 있다/ 그때마다 새끼는 간신히 버둥거려보지만 이제 벌통을 찾아든 꿀벌처럼, 놈들은 도무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 생명의 죽음이 또 다른 놈들에겐 저렇듯 달콤할 수 있다니, 저 비릿한 죽음의 냄새마저 어떤 놈들에겐 달디 단 향기였다니/ 그러고 보니, 이따금 커다란 화병 속에 한아름 꽃을 꽂아놓고 시시때때 코를 박고 흠향하던 나도 어쩌면 저 시커먼 파리 떼와 다를 바 없었구나. 시름시름 비명같은 향기 지르며 시들어갔던 꽃들에게 나는 한없이 귀찮고 원망스런 그 어떤 놈이었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창3:19)”고 명령하셨다. 인생은 ①안개(약4:14, 벧후2:17), ②풀(사40:8, 약1:10, 벧전1:24), ③아침 이슬(호6:4, 13:3), ④베틀의 북(욥7:6/knitting needles), ⑤질그릇(시22:15, 사45:9, 계2:27), ⑥흙(창2:7, 3:19)으로 비유되고 있다. 그 외에도 ‘인생무상’, ‘일장춘몽’, ‘유수(流水) : 흐르는 물’, ‘쏜살(시위를 떠난 화살)’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적신내왕(赤身來往)’(욥1:21)으로 설명하고 있다. “Naked I came from my mother`s womb, naked I`ll return to the womb of the earth”

 

이 분명한 진리만 확실히 기억하며 살아도 중간 정도의 인생이 될 수 있다. 죽을 줄 아는 사람은 삶을 아껴 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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