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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선주(吉善宙, 1869-1935)목사, 부흥사, 독립운동가(3·1운동 민족대표) ②
최상도(호남신학대학교 교수(역사신학), 장로교역사학회 서기)
 
오종영   기사입력  2019/01/30 [16:45]

최초의 장로교 목사가 되다 

1903년 원산의 부흥운동이 1906년 8월 재령으로, 그리고 1907년 평양으로 이어져 1월 6일 장대현교회에서 2주간 개최된 남자사경회에서 개회 첫날 1,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회개운동이 일어났다. 이때 길선주는 박치록 장로와 함께 사경회를 위한 새벽기도회를 실시했다. 로드스(H. A. Rhodes, 노해리) 선교사의 기록에 의하면, “1907년 남자들 반에서 길선주 조사가 설교하는 기간 중에 2,200명의 결신자를 얻었다”고 한다. 이후 길선주는 1909년 장대현교회에서 박치록 장로와 함께 새벽기도회를 이어가 이를 한국교회의 전통으로 정착시켰다.

 

1907년 조선장로교독노회 설립 시 길선주는 평양장로회신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한국 최초 장로교 7명 목사(방기창, 서경조, 송인서, 양전백, 이기풍, 길선주, 한석진)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목사 중 한 사람으로 길선주는 1910년 9월 제4회 조선예수교장로회 독노회 부회장을,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창립총회 때에는 부총회장으로 선임되어 한국교회를 섬겼다. 총회장을 역임하지 못했지만 그는 전도자로, 성경학자로, 교수로, 부흥운동가로 한국교회를 위해 기여한 인물이다. 또한 길선주는 평양의 숭실학교와 숭덕학교 경영에 참여하며 기독교 교육사업도 이끌어 나갔다. 특히 길선주는 지도자 양성을 위한 주간, 야간학교를 설립하고 한글교육을 적극 추진하는 등 문맹퇴치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이러한 교육사업을 위해 교회를 개방할 것을 주장하고 실행했다. 신앙의 공적, 사회적 책임에 대한 그의 태도는 시대적 요청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민족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한편 길선주의 생애는 한반도에 대한 일제의 식민화 시기와 맞물려 있다. 1894-1895년 청일전쟁, 1904-1905년 러일전쟁을 거쳐 조선에 대한 주도권을 쟁취한 일제는 1905년 을사보호조약, 1907년 정미7조약, 그리고 마침내 1910년 8월 22일 한일합방으로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든다. 이러한 상황을 목격하고 경험한 길선주는 위정자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한편 신앙을 통한 민족독립운동에 직접 관여하게 된다.

 

1911년 길선주는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된다. 105인 사건은 일제가 한반도 식민지배의 걸림돌이라고 판단한 이른바 서북지방에 있는 기독교 지도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을 일거에 제거하고 일제에 협조하지 않는 선교사들을 추방하기 위해 조작한 ‘데라우치 총독 살해 미수사건’이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이 사건과 관련하여 일제는 1911년 10월부터 약 600명 이상을 예비검속했고, 72종류의 잔혹한 고문을 통해 자백을 받아 사건을 날조하여 389명의 혐의자 가운데 123명을 기소하고 1912년 첫 공판에서 105명에 대해 유죄 판결을 했다.

 

길선주와 신민회 회원인 그의 장남 길진형은 일제의 예비검속 때 체포되었고, 길진형은 이때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1917년 사망한다. 장남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는 아픔을 겪었지만 길선주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으로 참가하여 기미 독립선언문에 서명했다가 체포되었다. 비록 3월 1일 당일에 태화관 독립선언서 낭독 모임에는 참가하지 못하고 지방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여 33인 중 유일하게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자진하여 체포된 후 1년 7개월 동안 미결수로 옥고를 치렀다. 이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3·1운동으로 독립을 이루지 못한 절망감에 빠진 민중과 교인들을 위해 그는 종말론적 희망을 선포하며 일제의 압제로 고난당하는 민족에게 내세적 소망을 끊임없이 제시하였다.

 

길선주는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이므로 교회가 존재하는 그 사회에 사랑을 보여야 한다고 믿었다. 길선주의 차남 길진경 목사는 “아버지 길선주 목사는 소박 청렴하였고, 민족과 교회를 위하는 마음에서 물질에 인색하지 않았으며, 맡은 일에 성심을 다하였다”고 회고한다. 교회의 지도자이자 민족의 지도자 길선주는 오늘 우리에게 이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삶으로, 선포로 보여준 가장 영적 성품을 소유한 한국교회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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