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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믿음!(사도행전 27장 9~26절) 186호
윤학희 목사/천안성결교회
 
오종영   기사입력  2019/01/30 [16:43]
▲ 윤학희 목사 ▲천안성결교회     ©편집국

 우리 속담에‘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 시대는 말할 것도 없었을 겁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사도 바울의 일생은 여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난 곳도 다메섹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가 1, 2, 3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이동한 총 거리는 약 20,000km정도로 추정합니다. 정말 그의 일생은 여행의 연속이었습니다.(고린도후서 11장) 그런데도 바울이 또 긴 여행을 떠나야 했습니다. 베스도총독은 바울을 이달리야로 보내기로 작정했습니다. 이달리야는 지금의 이탈리아로서 바로 수도인 로마를 말합니다. 물론 죄수의 몸으로 압송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의 마지막 여정인 로마로 가는 길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첫째, 가는 길이 평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서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그의 선교여행 길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루기아의 무라시에서 아달리아로 가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가게 됐는데 바람 때문에 간신히 미항이라는 곳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 배는 상당히 큰 배였음에도 바울은 이번 항해가 위험하다고 경고했습니다. 속죄일 기간에는 항해를 하지 않았는데 속죄일이 끝난 다음에 기후가 좋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고 그냥 항해를 재개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의 말대로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미항에서 겨울나기가 불편하니까 그레데의 항구인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보내기로 작정하고 항해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남풍이 순하게 불어와서 떠나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갑자기 섬 가운데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일어나서 배가 바람에 밀려가게 됐습니다. 광풍은 태풍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공들은 배를 가볍게 하려고 짐을 다 버렸고, 나중에는 배의 기구마저 내버렸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20절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별도 보이지 않고 큰 풍랑은 그대로 있어서 구원의 여망마저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사람들이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구원의 소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죽했으면 사공들이 도망가려고 했을까요? 군인들도 죄수들이 도망할까봐 아예 죽이자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41절을 보면 해안가에서 배가 박혀서 그만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바울 일행이 로마로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바울은 그것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바울은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순한 남풍이 불어오다가 갑자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몰아닥쳐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했습니다. 우리가 가야 하는 길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야 하는 인생길도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도 풍파가 많았을 것이고, 앞으로 가야 할 길에도 험한 풍랑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길을 가다가 광풍을 만나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 전혀 없습니다.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두려워하면 집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평상심을 유지하는 사람이 이깁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7장 24절을 보면 하나님이 바울에게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길을 가다가 어떤 일을 만나도 놀라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마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바울에게는 동행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동행자가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7장 1절을 보면 ‘우리’라는 주어로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사도행전의 저자인 의사 누가가 바울과 동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누가는 계속해서 바울 곁에 있었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어 가는 길에도 바울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누가도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우리’란 주어를 다시 사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만 바울과 동행하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2절을 보면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리스다고는 사도행전 19장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바울과 같이 다니던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고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갔다는 겁니다. 아리스다고는 그때부터 바울과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20장 4절에도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 때 동행한 일곱 명의 명단이 나오는데 거기에 또 아리스다고가 있습니다. 그랬던 아리스다고가 바울이 로마까지 압송돼 가는 길까지 동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쓴 골로새서 4장 10절을 보면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즉, 그는 로마까지 바울과 동행한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에게는 동행자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 배에는 모두 276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군인들도 있었고, 선장과 사공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의 동행자는 아니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함께 배를 타고 갈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가와 아리스다고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정말 바울의 동행자였습니다. 목적지도 같았고요, 목적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서로 정말 사랑하고 섬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외롭지도 않았고, 힘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멀고 험한 길을 가야 한다면 동행하는 사람이 있어야 안전합니다. 우리가 달려가고 있는 믿음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길도, 우리 믿음의 길도 혼자서는 갈 수 없습니다. 함께 가는 동행자가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우리 인생길에, 믿음의 길에 좋은 동행자가 있다는 것은 정말 큰 복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좋은 동행자를 만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먼저 좋은 동행자가 돼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좋은 동행자를 만나도록 기도하시고, 또 좋은 동행자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셋째, 바울에게는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났을 때 모든 사람은 구원의 소망을 잃었습니다. 그 배에는 황제의 친위대가 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풍랑 앞에서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선장뿐 아니라 경험이 많은 사공들도 많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항에서 바울만은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라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7장 22~26절을 보면 사공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구원의 소망을 잃고 두려워 떨고 있을 때 바울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바울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바울에게 나타나 말씀하시자마자 바람이 그치고, 파도가 잔잔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풍랑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19절을 보면 사흘 째 되던 날이라고 돼있습니다.

 

그리고 27절을 보면 열나흘 째 되던 날 밤까지 이리저리 바람에 밀려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바울에게 나타나 말씀하신 이후로도 열흘 이상 풍랑이 멈추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려워했습니다. 사공들은 도망가려고 했고, 군인들은 죄수들이 도망갈까 봐 미리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아무런 요동이 없었던 사람은 바울뿐이었습니다. 그리고 44절 말씀을 보면 바울의 말대로 그들 중에 한 사람의 생명도 상하지 않고 모두 다 구조되었습니다. 바울의 믿음대로, 바울이 믿음으로 말한 대로 다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바울과 같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풍랑을 만났을 때 우리도 바울처럼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풍랑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지켜주실 것을 확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물론 풍랑 때문에 고생할 수도 있고, 손해를 볼 수도 있으나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을 확실히 믿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모든 풍랑을 이기고 승리하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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