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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셨습니다.(빌2:5-8) 183호
전갑재 목사/공주중앙교회
 
오종영   기사입력  2018/12/21 [15:52]

 

▲ 전갑재 목사 ▲공주중앙장로교회     ©편집국

 성탄절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7:14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고 예언된 대로 마1: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주의 사자가 일러 준대로 예수님이 바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그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셨는데, 우리와 함께 구체적으로 사실적으로 계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는 것이었습니다. 신은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어야만 우리와 동고동락 하실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1.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셨다(7)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이라고 했습니다. 영광도 권세도 동등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 됨을 주장하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웠습니다. 하늘의 영광도 권세도 다 내려 놓으셨습니다. 왜 그래야만 했겠습니까?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마치 사람이 문화생활도, 가정생활도, 여가생활도 다 포기하고 돼지나 소가 되었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돼지우리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외양간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누구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왜 그래야만 했겠습니까? 죄인 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친히 사람이 되셔서 우리 곁으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은총이라고 합니다. 죄인이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기적이요. 복중에 복이요.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죄악 중에 잉태되고, 죄의 삯은 사망으로 절망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만나 소망을 주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을 인생들은 반드시 만나야 합니다. 사람이 부요해서 배가 불러 주님을 만날 수 없다면 가난해서라도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사람이 건강하여 아쉬운 것이 없어 주님을 만날 수 없다면 병들어서라도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사람이 성공하여 교만하여 주님을 만날 수 없다면 실패해서라도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야만 구원이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야만 인생의 크고 작은 문제들이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만날 때만이 소망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만나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는 나그네에 불과합니다. 그림자요 안개일 뿐입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우리는 안개처럼 쓰러지고, 그림자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영원히 나그네로 정처 없이 방황하다 죽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죽어가는 인생이라면, 그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반드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은 생명이요 구원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11:25-26)고 약속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시한부 생명들에게 주시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므로 죄의 사슬이 끊어지고 죽음이 영생으로 바뀌어 진 것입니다.

 

2.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사람으로 낮아 지셨다(8)

귀족신분과 천민신분이 함께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귀족신분에서 천민 신분이 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동등이라는 그 권세를 내려놓고 아주 낮아지신 것입니다. 우리보다 더 낮아 지셨습니다.

 

1)출생 장소를 보라

우리는 따뜻한 방에서 출생하고 혹은 안락한 병원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쾌쾌한 냄새가 나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마구간은 말이나 소가 새끼를 낳는 곳이지 사람을 출산하는 곳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곳에서 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도 출생하지 않으시고 베들레헴이라는 이름도 없는 작은 고을에서 출생 하셨습니다. 궁궐에서 출생해도 부족할 터인데 가장 비천하고, 가장 남루한 곳에서 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아주 가난하게 오셔서 누구든지 친구가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일생을 보라

예수님은 태어나자마자 수난 길에 들어섭니다. 아직 핏덩이와 다름없는 아기 예수님은 헤롯의 칼날을 피해 애급으로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멀고도 험한 길이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수난은 일생동안 거듭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멸시와 조롱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끝내는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3)약자들과 함께하신 예수님을 보라

당시 유대인들이 죄인으로 정죄하던 세리를 제자로 삼았습니다. 유대인들이 돌로 쳐 죽일 만큼 큰 죄인이라 여기는 간부를 용서하셨습니다. 수많은 각색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세상은 사회적 약자들을 천시하고 업신여기고 따돌리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환영하시고, 필요를 채워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흉악한 강도에게도 나와 같이 낙원에 있자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도 씻겨 주심으로 사랑이 무엇인가를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3.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하여 사람이 되셨다.(8)

하나님은 죽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기위해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8절에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를 구원하는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구경하기 위해 나들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 시찰 나오신 것도 아닙니다. 비천한 인생들에게 자기를 과시 하기 위하여 오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물이 되기 위하여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 즉 죽기위해 오신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죽어야만 했겠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법칙 하에 태어난 사람들은 누구든지 죽어야만 합니다. 한 사람도 예외자가 없습니다. 내가 살 수 있는 한길이 있다면 그것은 나를 대신해 누군가가 죽어 주는 것입니다, 그것도 죄 없는 자가 말입니다. 죄를 가지고 있는 자가 남을 위해 죽었다고 남을 살린다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그 사람은 자기 죄로 자기가 죽었을 뿐이지 남을 대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친히 오시어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이런 고마운 분이 세상에 또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분명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아들이십니다 그런데 성부 하나님은 아들을 죽는 자리까지 마다하지 않으셨으므로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탄절을 기뻐하고 찬송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을 통해 죽을 몸이 살아났는데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성탄노래는 슬프거나 우울하거나 애잔한 것이 하나 없고 모두 환희에 찬 승리의 곡들로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온 인류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탄절이 바로 그런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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