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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문교회에서 50년, 목사로 41년 이기복 감독
 
오종영   기사입력  2018/12/07 [17:03]

▲ 하늘문교회 이기복 감독     © 오종영

1972년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이기복 전도사가 선화감리교회 전도사로 부임했다.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인해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가업을 이어 농사를 지으라는 집안 어르신들의 고집을 꺾고 전기고등학교를 포기한 후 후기로 공주영명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 것은 이 감독에게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고, 영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극적인 만남이 준비되어 있었다.

미션스쿨에 다니다보니 자연스럽게 공주제일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하다 신학대학교에 입학한 후 지금까지 오직 한 교회, 하늘문교회에서 전도사로, 부목사로, 담임목사로 그렇게 50여년을 지내면서 舊(구) 도심에 있었던 선화감리교회는 2003년 월평동으로 이전한 후 “하늘문교회”로 명칭을 변경했고, 감리사와 연회 감독, 대전시기독교연합회장, 대전성시화운동본부장, 동서포럼 이사장을 비롯해 교단 내 주요 사역에 항상 앞장서 리더십을 발휘해 왔다.

개 교회의 목회자를 넘어 늘 지역과 함께하는 교회의 사명과 연합의 중요성을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한국교회를 보는 그의 시각은 누구보다도 넓고 높다.

이제는 어느 덧 그의 나이 70세, 이제 4개월 후면 그는 목회의 손을 놓고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이 런 그가 은퇴를 앞두고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의 소회를 밝히면서 지역교회와 목회자들을 향해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한 지혜를 전해주었다.
▣ 대담 및 사진 : 발행인 오종영 목사 ▣ 정리 : 오세영 기자
 
“내가 예수 믿고 목사가 된 것 자체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 하늘문교회는 나의 전부”

이 감독은 자신이 예수 믿고 목사된 것 자체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였다고 고백한다. 이 감독의 집안은 대대로 유교를 섬겨왔고 이 감독도 기억 속에 어려서 무당을 본 적도 있었을 정도로 재래적 집안이었다. 이 감독이 살던 동네는 아주 시골인데 4km반경에 교회가 없어서 교회 갈 기회가 없었고, 당시 집안에서는 그에게 가계를 이어 농사를 지으라 하였지만 그 고집을 꺾고 공주 영명고등학교를 가게 되었는데 이 결단이 결국 그에게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셈이다.

“영명고등학교가 후기고등학교인데 집안의 반대에 부딪쳐 전기를 지원하지 못하고 후기를 지원하다보니 이 학교에 입학했는데 기독교학교였기 때문에 내가 예수를 믿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제 인생이 완전 달라지고 많이 은혜를 받고 목회자의 길에 들어선 계기가 되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가정 형편이 이런데도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게 하셨고, 신학생은 당시 교회에 파송을 가게 되었는데 선화감리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하늘문교회와 함께하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엄밀히 말하면 이 감독은 감리교 교리장정에 따라 목사는 진급을 하려면 담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원치 않게 2년 반 동안 개척을 위해 하늘문교회를 떠나 있었으나 다시 부목사로 돌아와 지금까지 섬겨왔다. 이런 그에게 하늘문교회는 그의 인생의 전부라는 표현을 빌려도 부족한 것처럼 느끼고 있다.
 
▲ 본지 발행인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기복 감독     © 오종영

“이 감독은 1978년 4월 목사안수와 함께 선화감리교회 부목사로 했고, 1994년에는 담임목사로 취임한 후 목사로 41년, 담임목사로 25년을 하늘문교회에 몸담으면서 목회의 시작과 마지막을 함께했다. 하늘문교회가 이 감독에게 차지하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하늘문교회는 저의 어머니 같은 교회로 세워준 잊지 못할 모교입니다”

이 감독은 하늘문교회가 자신에게 차지하고 있는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처음 신앙생활 한 모교는 공주제일교회지만 그것은 학생 때고 하늘문교회는 저의 어머니 같은 교회고 저를 키워주신 교회이며, 저를 여기까지 이루도록 세워준 잊지 못할 모교”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저는 지금도 뭐든지 교회보다 더 우선되는 게 없어야 하고 교회보다 중요한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라도 교회에 출입하지 않으면 이상하고 매일 교회를 둘러보게 됩니다. 7년 동안 성전을 짓고 입당하며 어려웠던 때에 헌당할 때까지 교회에서 잠자며 기도하겠다고 하고 계속 교회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만큼 사랑하고 관심을 갖게 됩니다.”
 
“하늘문교회는 선화동에서 복음의 빛을 밝히다 전격적으로 2003년 월평동으로 이전 한 후 선화감리교회는 하늘문교회로 새 옷을 갈아입었고 그 과정에는 새성전 건축이라는 큰 역사가 있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시간의 옷을 이곳에서 입은 셈이다. 그렇다면 ‘하늘문’은 월평동시대를 열며 얻은 선물이다. 이 감독은 하늘문교회가 어떤 정신을 담기를 원하고 있을까?”

하늘문교회는 선화동에 있을 때에는 선화교회로 존재하다 월평동으로 이전하다보니 지명과 어울리지 않아 교회명칭 변경에 대한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 감독은 교인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는데 처음에는 다들 선화교회를 원해서 바꾸지 못하고 있다가 월평동에 소재한 교회가 선화동명을 딴 명칭은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는 생각이 더욱 깊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당시 전통적 문양으로 건축돼 있는 정문에‘소선문’이라고 써있던 현판을 떼고 새 이름을 붙여야 하는데 그 때 이 감독은 ‘하늘문’이라고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 감독의 생각을 원로목사도 좋다는 반응을 보여줬고 이에 마음을 굳히고 교인들과 의견을 나누고 의결을 한 뒤 정식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이 감독은 하늘문교회의 정체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첫째로 복음주의적인 교회가 되어야 하고”, “두 번째로 우리 교회만을 위해 있는 게 아니라 대전지역, 나아가 세계선교 사명 속에 있어야 하는 교회”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감독은 연합활동을 중시하고 늘 강조해 왔다. “저는 창 28장에 ‘야곱이 꿈을 꾸니 하늘문이 열렸다’고 한 구절을 가장 중요히 여기고 하늘문이 열리는 교회, 누구나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늘백성이 되게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전통과 현대문화, 한국문화와 기독교문화가 잘 조화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문화 예술행사를 열었습니다.”
이 감독은 하늘문교회는 색깔이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고 열린 교회가 되길 소망하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도 하늘문교회는 모든 사람에게 열린 교회가 되어 주기를 소망한다.
 
“요즘 사회적으로나 교회적으로 통합리더십이 강력하게 요구되고 있다. 특히 급격한 정치지형의 변화로 인해 기독교계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으나 지역을 이끌 수 있는 탁월한 리더의 부재를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차세대 목사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교회는 ‘내 교회’가 아닙니다. 하지만 최근 젊은 목회자들은 내 교회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제는 그것을 더 넓혀서 다같이 하나 되어 연합되어 하는 일에 차세대 목사님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각종 이단과 악법이 날뛰는데 내 교회만 지켜서 될 일이 아닙니다. 우리 기독교가 하나되면 무엇을 못 막겠습니까. 후배 목사님들이 조금 더 마음을 바꿔줬으면 좋겠습니다.”

“신천지를 비롯한 홍수처럼 밀려오는 악법과 정보, 이단을 막을 수 있는 길은 내 교회만 생각해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내 교회만 생각하면 편하지만 이것은 대 사회적으로 보면 목회자의 길이 아닙니다. 앞으로는 다 함께 연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다양한 연합사역을 통해 기독교가 사회 속에서 위상을 높여야 복음의 토양도 좋아져”

이 감독이 연합회장을 할 때만해도 연합회장의 위상이 바닥에 추락해 있었다면서 이 문제해결을 위해 경험했던 사실도 공개했다. “제가 회장이 되면서 대전기독교연합회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목사님들의 전폭적 지지를 얻어내고 연합회를 살려냈습니다. 당시 시장이 박성효 시장이었는데 시장님을 만나서 기독교연합회의 중요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러한 만남과 대화를 통해 기독교연합회의 위상을 높이고 대전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초청을 받을 정도로 좋아졌습니다.”라며 “또한 시에서 하는 일에도 많이 협력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택시타고 교회가기 운동을 전개했고, 독도수호대회, 천변정화운동, 성시화와 함께 아이들 하교길 지킴이 운동 등을 펼쳤습니다. 이렇게 높아진 위상이 최근 들어 많이 침체되어 많이 아쉽게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동성애,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등 한국교회를 위협하는 큰 도전세력으로 교계는 규정하고 있는 악법대처에 대한 대처는 개인이 아니라 연합의 힘이 필요”

이 감독은 “기본적으로 기독교연합회나 성시화, 기독교인 단체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 영향력이 있는데 지금은 고군분투하는 몇 사람만 하고 있다 보니 사람들이 우습게보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극소수이며 기독교에서도 극보수인 사람들만 하는 일이라고 치부하면서 유럽이나 미국도 처음엔 반대했지만 모두가 찬성하는 추세인데 아직도 옛날 생각만 가지고 주장을 하면 되냐고 한다”라면서 “현재 기독교는 하나로 연합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오합지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대전부터 함께 연합하고 기독교를 위해 하나 되는 일에 연합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도 몇 교회만 애쓰고 있을 뿐 다른 사람들은 뒷짐 지고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미리 준비를 하고 모임을 가져야 합니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형식적으로만 모이면 무슨 힘이 나겠습니까?”고 말했다.
 
▲ 하늘문교회 이기복 감독     ©오종영

“하늘문교회는 이 감독의 은퇴를 대비해 일 년이라는 기간 동안 리더십을 자연스럽게 이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위해 지난 5월 후임목사를 선택하고 동사목회를 진행해 왔다. 이 감독은 은퇴이후 일상의 소소한 삶의 목표도 전해줬다.”

“교회가 지도자가 바뀌면서 시끄럽기도 하고 문제가 있습니다. 오직 교회를 할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 초점을 두고 기도하고 생각하다 보니 몇 몇 추천이 들어오는 분이 있었습니다. 누구를 써도 할 만한 사람들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교회에 맞겠다 싶은 분이 오셨습니다. 일단 교인들이 좋아하시니 제 마음이 편했습니다. 내 마음도 세례요한의 말처럼 후임자는 더 흥하고 나는 쇠하여 진다는 생각을 하니 편안해졌습니다. 다른 교회들도 이런 점을 미리미리 준비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50년을 목회에 전념했으니 1년 동안은 나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도 해야 할 것 같고 미국에 가족이 있는데 오랜만에 그들과의 만남도 가져보려 한다”면서 평범한 것 같으나 중요했던 일을 목회 때문에 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 누려보고 싶다는 작은 바람도 고백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신앙서적은 많이 봤지만 다른 책은 많이 보질 못해서 여러 분야의 책을 읽어보면서 나 자신의 내실을 채우는 일을 해보고자 하며 교계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는 일에는 열심히 하고자 합니다”라고 전했다.
 
“돌이켜보아도 감사한 것 밖에 남은 것 없어!”

이 감독은 목회 50년의 뒤안길을 소개하면서 ‘감사할 게 참 많다’고 고백했다. 무엇보다도 하늘문교회가 참 좋은 교회라는 점이고, 다음으로 평생 사모와 함께하면서 내조에 충실을 기해준 덕택에 목회에 잡음이 한 번도 없이 이렇게 목회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녀들이 유학시절 인연을 맺은 미국에서 잘 성장한 후 결혼까지 해서 잘 지내준 것도 목회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이유라면서 또 한번의 감사를 고백했다.

지역교계에 안부도 전했다. “대전에 기독교연합회와 성시화가 잘 세워져서 영성을 회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계시니 아직 희망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이 감독에게도 행복한 일들이 가득하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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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2/07 [17:03]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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