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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서 터키로 - 동로마 문화와 사도들의 흔적을 경험하다. ④
오종영 목사/영성교회, 본지 발행인,대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오종영   기사입력  2018/12/07 [16:15]

▲ 히에라폴리스지역에는 수많은 들꽃들이 만개해 있어 여로에 지친 우리의 눈을 맑게 해 주었다.     ©오종영

목화의 성 파묵칼레 - 온천, 열기구
빌립의 순교교회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수많은 꽃들이 만개해 있었고 밑에까지 내려가니 온천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 노천 온천에는 유럽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수영복 차림으로 온천욕을 즐기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곳 방문지를 오르면서 체력이 받쳐지지 않아 다른 가이드와 함께 저지대에서 탐방을 했던 아내 일행이 그곳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잠시 동안 지친 몸을 쉬어가기 위해 그곳에서 시원한 천연과일 쥬스로 목을 축였다.

▲ 목화의 성이라 불리는 파묵칼레 유적지에서 아랫쪽으로 내려오면 큰 연못이 있는데 온통 눈이 내린 것처럼하햔 모습을 보였다     ©오종영

바로 옆으로 이동하니 온통 주변이 새하얗다. 눈이 내린듯하다. 그리고 하늘에는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날며 히에라폴리스를 조망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흐르는 온천수에 발을 담갔다. 여로에 지친 몸이 확 풀리는 느낌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수로를 통해 온천수는 여기에서 약15km떨어진 라오디게아와 골로새 지역으로 공급됐다. 지금도 이곳에는 곳곳에 있는 능선을 따라 돌로 된 수로가 있는데 이렇게 지상에 만들어놓은 수로를 따라 라오디게아까지 갔으니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온천수가 되어 무의미한 물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 라오디게아에 도착한 날 유적지 입구는 넓게 확 트인 전경을 하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나무둘레를 돌로 쌓아놓은 것이 이색적으로 보였다.     ©오종영

라오디게아
이곳 시간으로 오후 1시 30분, 히에라폴리스를 돌아본 후 우리 일행은 중식을 한 후 마치 설산처럼 보이는 온천수 연못에서 기념 촬영 후 차량으로 10분을 달려 소아시아의 일곱교회 중 마지막 지역인 라오디게아교회에 도착했다. 라오디게아는 최근 개발붐이 일어 보다 풍성해진 유적을 관람할 수 있었다. 지금도 계속해서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고, 향후 지속적인 개발이 이뤄질 것이라고 하니 오래전 라오디게아를 방문한 사람은 다시 한번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지명인 ‘라오디게아’는 안탈라스 왕이 자신의 아내이름을 붙여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옛 이름은 디오스폴리스 또는 로아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 이유는 고대 로아스가 있었던 곳에 도시가 재건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라오디게아라는 이름은 이 도시를 재건했던 안티오코스의 부인인 다오디게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으로 ‘백성의 정의’라는 뜻을 담고 있다.

▲ 발굴하고 있는 라오디게아의 교회터로 상당히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오종영

라오디게아의 수많은 유적지들은 지진으로 인해 붕괴됐는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는 한참 발굴이 진행되고 있었고 현재의 모습은 지진으로 인해 덮여졌던 흙을 걷어낸 후 발굴해낸 모습으로 지하에 많은 유적들을 마치 창고처럼 보관하고 있었다.

히에라폴리스에서 약 13-15km정도 떨어져 있는 이곳 라오디게아까지 흘러온 온천수는 모두 식어 버려 미지근하게 되었다. 왜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았다고 하셨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이곳은 앞서 설명했던 파묵칼레(히에라폴리스)에서 골로새 서북쪽으로 약 16Km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골로새서의 기록을 보면 바울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사역했음을 알 수 있다.

라오디게아에는 칼라칼리 분수대(이전에는 교회 터)가 있는데 이곳에서 십자가에 문양이 새겨진 비석이 발견되었고, 하드리안과 아우렐리우스 황제에게 헌정된 거대한 야외극장이 있으며, 제우스 신전과 새로 발굴된 거대한 교회 터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교회 터의 바닥에는 정교한 모자이크 문양이 새겨져 있다.

라오디게아 지역은 토질이 매우 비옥한 곳으로 목장이 있고 봉제산업을 통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지역이었으며 금융활동과 은행업도 발전한 지역이었다. 특히 이 근방에는 ‘후루기야’라고 하는 안약원료가 생산되었는데 그래서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시록 3:18)는 말씀도 이러한 지역적인 특성을 통해 교훈을 주신 듯하다.

이곳은 발굴 작업이 다른 어느 곳보다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하루가 다르게 유적과 유물들이 늘어나고 있다.
 
▲ 라오디게아지역의 유적지들(대부분의 유적지들이 동로마 시대의 유적지인지라 소아시아지역의 유적지들은 비슷한 공통분모를 많이 띠고 있었다.)     ©오종영

▲ 라오디게아의 무너진 교회터에서 우리는 무너진 신앙을 다시 회복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신앙을 회개     ©오종영

라오디게아-아르티미스신전
라오디게아에도 많은 신전들이 있다. 림프신전을 비롯해 아르티미스신전도 있다. 이 신전은 어느 정도 복원된 상태로 우리 일행을 맞아 주었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 지금도 곳곳에서는 수많은 기계들이 굉음을 울리며 발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골로새서 4:9-을 가이드 박정식 목사와 함께 묵상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히에라폴리스와 골로새, 라오디게아는 같은 지역으로 추론된다. ‘눔바’라는 여인의 집에 작은 신전으로 있다가 기독교가 공인된 후에 여기(신전)에서 예배드렸을 가능성과 또는 다른 지역으로도 추론하고 있다고 한다.

라오디게아 공동체는 역겨운 신앙이라 할 만큼 사데교회보다 더 크게 책망 받았다. 그들은 스스로 착각 속에 빠져 부요하고 부족함이 없다고 큰소리 칠 정도로 교만했다. 우리는 ‘은혜’아니면 안 되는 존재들이 아닌가!

▲ 파묵칼레에서 기념샷     ©오종영

이곳 사람들이 교만해진 이유는 세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 이곳은 양털생산이 뛰어난 지역이고, 둘째 파묵칼레 지역은 목화생산이 많아서 수출을 할 수 있었으며, 셋째 안약을 생산해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부요해졌고, 그 경제적인 부요함이 이곳 사람들을 교만하게 만들고 말았다. 이곳 지역이 안약을 많이 생산한 이유가 있다. 파묵칼레 지역은 건조한 지역특성 탓으로 많은 사람들이 안구 건조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의 수질은 석고작용과 라듐성분이 많아 치료효과가 뛰어났고 멀리서 오는 물이 침전된 것을 발견해 안약을 만들었다고 한다.

▲ 라오디게아교회 유적지에서 가이드 박정식 목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노회의 성지탐방 일행인 목회자 부부     ©오종영

▲ 라오디게아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종영

라오디게아는 로마의 도움을 거절하고 신전을 건축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 부요함의 수치를 추측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곳 사람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회복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기도한 후 제우스 신전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 라오디게아에도 제우스 신전을 비롯한 많은 신전과 유적들이 있고 지금도 많은 유적들이 발굴중에 있다.     ©오종영

제우스신전
제우스신전으로 이동하니 이곳 역시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발굴과정에서 찾은 유적들은 지하에 보관돼 있었으나 유리로 된 상부 천장을 통해 관찰할 수 있었다. 또한 거대한 예배당이 바로 옆에 있었고, 그 안에도 유적들이 발굴돼 있었다. 특히 6세기 초의 거대한 예배당이 발굴되고 있었으며 주변은 온통 고린도식으로 복원되고 있었다.
 
▲ 안탈리아로 향하기 위해서는 이 타우프스 산맥을 넘어가야 한다. 석회석으로 된 산에는 아직도 눈이 쌓여 있었다.     ©오종영

타울로스 산맥 - 바울을 생각하다.
이제 우리는 안탈리아로 출발하게 된다. 이스라엘과 터기의 성지를 탐방하는 동안 가장 긴 시간을 버스를 타고 이동하게 된다. 버스는 타울로스 산맥을 넘어가게 되는데 해발 4000미터의 고산이며 이 산맥을 넘어 약 3시간 이상을 달려가야 안탈리아에 도착하게 된다.

우리가 탄 버스는 타울로스 산맥을 넘어가고 있다. 굽이굽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는 석회석이 즐비한 산을 넘어간다. 산 정상에는 아직 녹지 않은 하얀 눈들이 쌓여 있다. 한참을 넘어가니 산자락 아늑한 곳에 식당에 자리하고 있다. 기념품 샵을 겸한 식당에서 우리 일행은 조금 늦은 식사를 했다. 워낙 높은 산맥을 넘어가다보니 우리와는 반대 동선을 따라 안탈리야에서 히에라폴리스 방향으로 이동하는 한국 성지 순례객들을 태운 버스가 우리가 쉬고 있는 휴게소를 겸한 식당으로 들어왔다.

허기진 배를 채운 후 다시 버스는 출발한다. 끝도 없을 것만 같던 산맥을 다시 오른다. 터기는 우리나라처럼 산에 터널을 뚫어서 길을 내는 것이 아니라 모두 지상으로 도로를 내다보니 산자락을 굽이굽이 돌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산자락을 넘어가면서도 감사했다. 초대교회 시절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 산맥을 걸어서 넘어야 했으니 며칠, 아니 몇 주야를 걸어서 이 길을 갔을까?

그래서 바울은 “내가 산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을 당했다”고 고백했는가 보다. 갑자기 마음이 숙연해진다. 고린도후서 5장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여 오는도다”라고 고백했는데 주님의 사랑에 매여 이 산맥을 걷고 또 걸었을 것이며 강도들을 만나 죽음의 위기도 헤쳐 나가야만 했을 것이다.

과연 주님을 위한 나의 사랑이 깊이와 넓이, 그리고 크기가 궁금해 졌다. 뿐만 아니라 바울을 핍박하기 위해 따라다녔던 열성유대인들도 이 산맥을 넘었을 것이다. 바울의 복음을 위한 열정이나 바울을 핍박하기 위해 추적했던 유대인들의 열정을 우리는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겼다. 그리고 바울을 강권했던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마음을 강권해 주시기를 버스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타울로스 산맥을 정상을 보며 그 길을 넘고 있는 사도바울을 옛 시간 속으로 이동해 마음으로 지켜보며 기도했다.

온갖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덮는다. 버스를 타고 가도 이렇게 힘들고 먼 길을 가야 하건만 2000년 전에 바울이 이 산맥을 넘어갈 때에는 얼마나 긴 시간을 넘었을까?
 
안탈리야 - ANTALYA-SU HOTEL
이렇게 달리던 버스는 어느 덧 안탈리야 초입에 들어섰다. 이제 우리는 오늘 저녁 머물게 될 안식처인 ANTALYA-SU HOTEL로 들어가게 된다.

SU HOTEL은 294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는 특급호텔로 호텔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호텔 내부와 숙소, 심지어 인테리어와 침구까지도 화이트 톤으로 되어 있어 호텔을 이용하는 이용객들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했다.
그러나 여로에 지친 몸인지라 여장을 푼 뒤 호텔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하고 이내 수면에 들어갔다. 이렇게 터키에서의 또 하루를 보냈다.
 
▲ 앗딸리아항구의 모습, 작은항구로써 버가라고도 불리는 지역이다.     ©오종영

터키에서의 넷째 날 일정을 시작하다.
아침 7시에 기상 해 호텔에서 식사를 하고 다시 짐을 꾸린 후 오전 8시 20분 호텔 앞에 대기중인 버스에 몸을 싣고 안탈리아 지역 탐방에 나섰다. 안탈리야는 밤빌리아주에 속하는 지역이다. 오늘 처음 방문할 곳은 바울이 정박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항구이다. 어제 저녁 비가 와서 그런지 땅은 축축했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해변은 구름이 끼여 뿌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앗딸리아에 있는 하드리안 문, 우리 이 문을 지나 오랫만에 스타벅스에 들러 모닝커피를 마시며 다음 목적지를 향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오종영

안탈리아 항구, 그리고 카페에서의 짧은 망중한
안탈리아 항구는 ‘앗딸리아’로 성경에 명명하고 있는 지역이다. 이곳에는 바울이 정박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항구가 있다. 한쪽으로는 기념비와 작은 공원도 조성돼 있었다. 그리고 근처에는 당시 선착장으로 예상되는 큰 바위들이 보인다. 주변을 조망해 보면서 바울의 전도여행 경로를 마음으로 떠올리며 산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을 당했던 바울을 그려본다.

필자는 여행을 마친 후 바울이 전도여행을 다녔던 지역을 지도를 통해 한눈으로 들여다보면서 그의 사역과 고난, 수많은 위험과 복음을 향한 열정을 들여다 본 바 있다.

앗딸리아 항구를 돌아본 후 일행은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 카페에 들러 coffee time을 가진 후 페니게로 이동했다.
 
▲ 페니게 유적지로 들어가면 먼저 길고 큰 전차경기장이 눈에 들어온다. 길이만 약 600M에 달한다.     ©오종영

페니게의 거대한 전차 경기장과 목욕탕, 그리고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저잣거리(아고라)
페니게에 도착하니 차고 있는 시계는 이곳 시간으로 오전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페니게는 그리스시대와 로마시대에 지어진 거대한 목욕탕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마가요한이 바로 이곳에서 이탈했던 곳이기도 하다. 입구에 들어서니 왼쪽으로 거대한 전차 경기장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거대한 아고라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에는 지금도 2200년 전 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우리는 박석으로 된 길을 따라 전차경기장을 걸었다. 전차경기장의 길이는 600M에 달한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목욕탕 또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바울도 이곳에서 목욕을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목욕을 하지 않으면 이곳에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페니게에는 헬라식의 거대한 건물도 있다. 그 건물의 한쪽에는 거대한 목욕탕도 있는데 이 목욕탕은 후에 예배당으로 사용하기도 했으나 지진으로 인해 무너지고 말았다. 이렇게 무너진 큰 유적들이 주변에는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우리 일행들은 유적지들을 둘러보면서 손으로 만져보기도 했다.

▲ 거대한 아고라터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바울이 그 옛날 이곳을 찾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곳이기도 하다.     ©오종영

▲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거대한 아고라(장터) 옆에 있는 많은 주랑들과 유적지의 모습     ©오종영

돌아 나오는 길에는 저잣거리가 있었던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곳의 거대한 아고라는 멀리 보이는 산 밑에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당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바로 이곳에서 복음을 전했다. 바로 이 저잣거리에서.......(행13:13). 즉 바울이 1차전도 여행 때 이곳에서 복음을 전한 것이다.

우리 일행은 바울이 복음을 전했을 바로 그 저잣거리의 한 귀퉁이를 밟아보면서 복음전도자 바울의 마음을 가져보기 위한 감정이입을 했다.

그리고 당시 이 저잣거리에서는 재판도 이뤄졌다고 한다. 총독들은 바로 이곳에서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아 재판을 했다.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백보좌 심판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인해 재판을 받지 않을 자유자가 아닌가?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저잣거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터키지역의 수많은 도시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곳 역시 많은 지진이 있었기에 유적지들은 무너져 내렸고 지금은 기둥만 남은 곳이 많았다.

그리곤 다시 전차가 달리고 사람들이 걷던 그 길을 걸었다.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면서......

이곳의 또 다른 유적중의 하나는 거대한 야외음악당인데 아직 복원공사가 진행 중이라 둘러볼 수가 없었다. 이곳을 둘러보면서 당시 로마가 확산시켰던 문화가 매우 거대하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약 70여분에 걸쳐 페니게의 주요 유적지들을 탐방한 우리 일행은 이제 아스펜도스로 향했다.

참고로 안탈리야에서 페니게를 거쳐 아스펜도스에 이르는 길은 로마로 향하는 도로가 연결돼 있다. 아스펜도스에는 거대한 극장이 있는데 바로 그곳을 방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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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2/07 [16:15]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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