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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누리는 기쁨과 평안(시편 4:4-8) 178호
류명렬 목사/대전남부교회
 
오종영   기사입력  2018/10/11 [16:36]
▲ 류명렬 목사 / 대전남부교회     ©편집국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시고, 소망없는 사람들과 같이 슬퍼하는 것을 경계하지만, 슬픔은 의외로 우리의 삶에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아주 사소한 슬픔부터 삶을 뒤흔드는 커다란 슬픔까지 다양한 슬픔이 존재합니다. 슬픔이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거나 기대한 것이 무너지는 것으로 겪는 아픔을 원인으로 합니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이나, 어떤 소중한 것을 상실한 것은 우리에게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이러한 슬픔은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겪는 슬픔을 통해서 우리는 성숙해지고,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인생의 깊은 것들을 경험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슬픔은 이러한 역할을 한 이후에 우리 곁을 떠나야 합니다. 마치 어둔 밤이 지나고 반드시 새벽이 오듯이 슬픔은 그 역할을 다하고 우리 곁을 떠나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실한 것에 대한 집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원망과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삶에서 기쁨이 사라지고 삶의 목표와 방향을 잃어버리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는 분”으로 말씀하였습니다.(롬15:13)

그리스도인에게도 슬픔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슬픔은 우리를 성숙하게 하는 일, 즉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허물과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게 하는 사명을 다한 후에는 떠나보내야 합니다.
 
1. 용도를 다한 슬픔은 우리의 삶에서 떠나보내야 합니다.
한 사람이 직장에서 아주 성실하게 일을 했습니다.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열심히 했습니다.

출근시간 퇴근시간을 따지지 않고 회사 일에 매달렸습니다. 그래서 눈부신 성과도 냈고, 회사에 공헌도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을 칭찬합니다. 그래서 얼마 있으면 있을 승진에 이 사람이 회사의 책임자로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 사람도 내심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승진의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사장이 엉뚱한 사람을 책임자로 앉혀 버린 것입니다. 깊은 상실감과 배신감이 찾아왔습니다. 이 비운의 주인공은 겉으로는 괜찮은 척은 했지만, 그 마음속에 슬픔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회사 일이 이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는 괜찮습니다. 그 슬픔은 누구에게도 찾아오고, 신앙인에게도 찾아옵니다. 몇 일, 몇 주, 몇 달을 힘들어 할 수 있습니다. 그 힘들어하는 슬픔의 기간 동안 건강한 사람은, 자신을 추스르고, 신앙인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돌아봅니다. 자신의 허물과 부족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습니다. 그러나 이 슬픔이 떠나지 않고, 비정상적으로 작용을 하면, 이 사람은 자기 대신 책임자에 앉은 사람을 원수같이 생각하고,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은 사장을 미워하고 저주하는 마음이 들고, 어떻게 하면, 사장에게 복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결국, 회사와는 적이 되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 복수를 실행하게 됩니다. 슬픔이 용도를 다하면 우리 삶에서 떠나보내야 합니다. 용도를 다한 슬픔이 우리 마음에 남아 있게 되면, 그 때부터 슬픔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을 가로막고, 우리 삶에 독소로 작용하게 됩니다.
 
2. 슬픔을 극복하고 기쁨과 평안을 삶에서 누리기를 원하시면, 감사하십시오!
신약성경이 쓰인 헬라어에서 ‘기쁨’과 ‘감사’와 ‘은혜’는 한 식구입니다. 같은 어근을 사용합니다. 헬라어에 ‘은혜’라는 말은, ‘카리스’이고, ‘기쁨’은 ‘카라’라고 하고, ‘감사’는 ‘유카리스티아’라고 합니다. 그래서 한 신학자는 ‘은혜’가 낳은 쌍둥이가 바로 ‘기쁨’과 ‘감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기로도 은혜를 받으면, 기쁨이 있고, 자연스럽게 감사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은혜 받는 것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불가항력적으로 내 삶에 밀고 들어오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내 심령이 병들어 있는 것을 아는데, 은혜는 좀처럼 오지 않습니다. 그럴 때 방법이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부터 하는 것입니다. 내 심령이 슬픔에 차 있고, 내 심령이 병들어 있을 때, 그래서 은혜와 기쁨이 머나먼 이야기가 되어 있을 때에, 우리는 의지적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마음에 기쁨이 생기고 막혔던 은혜의 강둑이 터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철학자 피터 크리프트 라는 사람은 “피드백 원리”라고 설명했습니다. 뇌손상을 입어서, 사지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에게, 병원에서는 뇌를 고칠 수 없기 때문에, 손발을 움직이도록 운동을 시킵니다. 그렇게 손발을 운동을 하다보면, 손상된 뇌에 새로운 신경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뇌는 통제 기능을 다시 회복한다고 합니다. 이 원리입니다. 우리에게 은혜도 없고, 기쁨도 사라졌을 때에, 감사의 훈련을 하십시오. 감사함은, 우리의 잃어버린 기쁨을 살아나게 하고, 은혜의 강물도 흐르게 합니다.

시 100: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100: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3. 의를 행할 때에 우리 심령에 기쁨이 충만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시인은 기쁨과 평안을 고백했습니다. 7절 말씀에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 하나이다”다고 하였고, 8절에서는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는 안전”을 노래했습니다. 그런데 이 평안과 안전을 시편 기자는 의를 행하는 것과 연관 지어 노래한 것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4절과 5절에서 다윗은 의를 노래합니다.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4절)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5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어떤 때에 기쁨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에 기쁨이 있습니다! 죄악을 짓고 살면 잠시의 기쁨은 있지만, 그것은 두려움의 기쁨이고, 멸망의 기쁨입니다. 당장 죽을 사람에게 산해진미를 가져다주고, 먹으라고 한 들, 그 산해진미가 무슨 맛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의를 행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곡식과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 큰 기쁨을 맛보게 하십니다.

특별히 신약성경에서 사도 바울이 ‘기쁨’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을 보면, 거의 그의 성도들에게 대해서 기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편지했습니다.(빌4:1) 또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는 이와같이 편지했습니다.

살전 2:19-20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기쁨은 어느 미지의 파라다이스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기쁨이 오늘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저들의 곡식과 새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 한 기쁨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며 의를 행합시다. 그럴 때 우리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에 대한 약속을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사66:10-12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성과 함께 기뻐하라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뭇 나라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성읍의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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