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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서 터키로 - 동로마 문화와 사도들의 흔적을 경험하다. ②
오종영 목사/영성교회, 본지 발행인,대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오종영 기사입력  2018/10/11 [15:53]

▲ 수많은 들풀과 꽃, 그리고 백향목은 여로에 지친 마음에 한순간의 쉼을 선물해준다.     ©오종영
    
내터키에서의 하루 일정이 시작돼 우리 일행은 에페소의 다양한 유적지를 탐방하면서 동로마시대 사도들의 숨결을 경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에베소를 여행하는 내내 느낀 감정은 이스라엘에서 복음서를 경험했다면 이제 사도들의 사역현장 경험을 통해 ‘그들의 사역정신을 어떻게 현재 지평으로 가져가야 할까?’라는 숙제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사도요한의 박해의 문(일명 승리의 문)을 시작으로 바울, 디모데, 오네시모가 섬겼던 에베소교회를 둘러보는 흥분은 터키에서의 성지탐방에 대한 기대치가 더욱 커져갔다.

에베소는 로마제국이 소아시아를 지배할 때의 수도로 당시 정치적으로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디옥과 더불어 로마제국의 4대 도시 중의 하나로 꼽혔다. 아마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곳은 지리적으로 무역이 활발하게 이뤄졌고, 교통상의 요충지로 동서양을 연결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도 에베소는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시에 이곳에 들러 전도했다는 기록이 있고 제3차 전도여행 때에는 이곳에서 세례를 베풀고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였고 방언과 예언, 희한한 이적이 나타났다고 돼 있다. 이 일은 마술사가 마술책을 불사르고 예수를 영접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특히 사도행전 20장의 기록을 보면 바울이 이곳에서 장로들을 청하여 고별사를 전하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감동적인 기록은 목회자와 장로들의 진정한 관계성을 형성하는데 기준점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곳에 들러 에베소의 유적지를 본격적으로 탐방한 첫 번째 장소인 1000여개의 상점으로 구성돼 있는 아고라(시장)와 황제의 신전터들, 장군의 영묘, 당시의 생활용처와 바울이 쟁론했던 셀수스 도서관(두란노서원), 거대한 고대음악당과 하드리안 신전, 트라얀 황제 석상, 경기장, 아데미 신전, 비잔틴 때의 성벽, 항구로 가는 아르카디아 길 등 다양한 석조 건축물들이 무질서하게 늘어져 있는 모습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회귀해 사도들의 삶의 현장에 던져진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우리 일행은 에베소에서의 첫 일정을 보냈다. 이스라엘에서 이동한 후 이어진 여정인지라 저녁이 되었을 때 피로감이 크게 몰려와 일행은 숙소인 KAYA THERMAL HOTEL에서 스파를 하며 하루일정을 마무리했다.
   
▲ 아크로폴리스는 거대한 병원터로서 20M넓이 800M 길이를 자랑하며 바닥은 돌로 도성되어 있다. 방문당시 비가내려서 수많은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 오종영

페르가몬(버가모)

모두 316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는 KAYA THERMAL HOTEL에서 터키에서의 첫 날 밤을 보낸 우리 일행은 둘째 날 여정을 시작했다.

터키에서의 2일차 성지탐방의 첫 방문지는 페르가몬(우리말로 버가모를 일컫는 말이다)이다. 편의상 페르가몬은 ‘버가모’로 칭하도록 하겠다. 우리에게 더욱 익숙한 이름이기에 그렇다. 둘째 날 아침 우리가 첫 방문지로 정한 버가모는 이즈미르에서 약 100km, 에게해에서는 약 24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지금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에게해는 지중해 중 터키와 그리스 사이의 바다를 일컫는 명칭이다.

우리 일행이 탄 버스가 우회하니 에게해가 눈앞에서 반갑게 우리 일행을 맞는다.

이제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에게해 건너편이다. 그래서 버스는 우회해서 해변도로를 끼고 돌아간 것이다.
 
버가모에 도착했다. 버가모는 요한계시록이 그대로 느껴지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곳은 그리스왕조 150년의 역사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 도착하니 전면에 우상의 제전이 벌어졌던 아크로폴리스가 보인다.

▲ 아크로폴리스에는 수많은 석주기둥들이 하늘높이 솟구처 있고 그 옆으로는 야외음악당이 조성돼 있다.     ©오종영

아크로폴리스
아크로폴리스는 거대한 병원터이다. 우리가 잘 아는 ‘히포크라테스선서’가 바로 이곳에서 시작이 됐다. 히포크라테스는 실제로 이곳에서 사역했다고 한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는 수세기에 걸쳐 의료인들의 행위의 지침으로 채택되었고 지금까지도 많은 의학 교육기관의 졸업식에 인용되고 있다. 비록 히포크라테스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고 또한 실제로 그가 그 당시에 이 이름을 사용한 유일한 의사였는지도 알 수 없지만 〈히포크라테스 전집〉이라 불리는 일련의 사본들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선서의 내용은 크게 2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째 단락은 의사가 의학도들에게, 그리고 학생이 스승에게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제시하고 있고, 둘째 단락에서는 의사의 맹세로서 자신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치료만을 행할 것이고 해가 되거나 상처를 주는 일은 하지 않으며, 개인으로서, 그리고 전문인으로서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가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이곳이 병원이었음을 알리는 다양한 표식물들이 보이고 근처에는 당시의 유물들이 자연스럽게 널부러져 있다.     © 오종영

▲ 지하에 들어서면 다양한 치료실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 오종영

아크로폴리스는 요즘 대형병원보다도 오히려 더 큰 규모로 느껴질 정도로 그 시대에 이런 병원을 유지했다는 것이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버가모의 아크로폴리스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로 터키 서부지역으로 서머나 북쪽 80km 지점에 있다. 도시는 BC 2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제우스의 출생지로도 알려져 있고,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인 리시마쿠스가 소아시아의 일부를 통치하기도 했다.

역사적 배경을 보면 BC 332년 알렉산더 사후의 후계자 중 하나인 리시마쿠스 왕조가 소아시아의 지중해, 에게해 연안을 통치하며 번성하여 아크로폴리스를 세웠다.

버가모는 로마제국시대에는 우상숭배와 황제숭배가 성행하여 황제신전과 제우스 제단, 풍요와 다산의 신 아데미 신, 포도의 신 디오니소스 신, 의학의 신 아르켈레피오스 등의 신전이 건축되었다. 특히 도미티아누스 통치시대에 황제숭배가 극에 이르렀고 동시에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는 더욱 심각해졌다.

요한이 버가모 교회에 편지할 당시 상황은 이러한 우상숭배와 황제숭배 제단을 염두에 둔 것이며 요한계시록 2:13절의 ‘사탄의 권좌’는 이 시대 상황을 염두에 두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교회사를 통해 볼 때 이단(발람과 니골라 당)의 혼합주의와 無율법주의가 성행하여 교회를 혼란케 하였는데 이런 영향으로 인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현실생활과 타협하여 황제 숭배 등에 참여하고 방종하는 신앙의 행태를 보여 사도요한은 이를 엄중히 경고하면서 안디바의 순교를 모범삼아 잘못된 삶에서 돌아설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 아크로폴리스에는 수많은 석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으며 돌로된 집입로를 따라 들어가면 Ȯ 뚫린 광장이 시원하게 탐방객들을 맞는다.     © 오종영

어쩌면 우리나라가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한 것과 다름없는 상황으로 대한민국이 바로 버가모였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지도자 급에 있는 사람들의 현실주의와 혼합주의에 순응 하는 삶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타락을 부추겼을 것으로 사료돼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이 대한민국을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새삼 두려움과 삶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생각나게 한 시간이었다.

요한계시록의 기록에 의하면 버가모는 현재‘버가마’로 불리는데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서 세 번째로 편지를 받은 곳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나 서머나 교회와는 달리 이 교회에는 사단의 위가 있었다는 강한 책망이 기록돼있다. 그만큼 버가모는 아시아지역에서 가장 우상숭배가 심각했던 곳으로 실제로 이곳에는 수많은 신전들이 있었다.

순교자 안디바가 있었는가 하면 이단에 빠진(발람의 교훈을 좇는 자들과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자들도 있어 그야말로 선과 악의 투쟁장소로도 묘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버가모는 아타루스 3세 때에 로마에 넘겨졌고, 이로 인해 버가모의 상당한 재원이 로마로 옮겨졌다.

이곳에는 트라얀 신전이 성채 위에 건립되었고 카라칼라 신전을 세워 황제의 신전숭배의식이 거행되기도 했다. 지금도 산위에 세워진 아크로폴리스의 왕국과 신전들은 당시 번성했던 버가모의 영광을 보여주고 있다.

버가모의 유적지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도서관으로 당시에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함께 세계 2대 도서관으로 꼽힐 정도였으나 지금은 건물의 기초만 덩그라니 남아 있을 뿐이다.

도시의 모습은 고지대(왕족과 귀족), 중간지대, 그리고 아래지대로 구분되어 형성돼 있다.

▲ 성채 위에 조성돼 있는 트라얀 황제 신전.     © 오종영
    
아스클레피온신전
버가모에 들러 나지막한 산위에 펼쳐져 있는 다양한 건축물과 더불어 돌로 포장된 대로를 지났다. 길가에는 많은 수분을 머금고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피어있는 꽃들과 염소들이 떼를 지어 풀을 뜯고 있는 장관을 엿볼 수 있었다.

계속해서 재촉하고 있는 길은 약 800m에 이르는 돌로 포장된 길이다. 폭이 20m나 되는 길을 걷다보니 길 양편에는 약 15m나 되는 석주들이 도열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마치 우리 일행을 환영하기 위해 도열해 있는듯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다양한 시설들이 즐비하게 놓여져 있고, 넓은 공간감과 간간이 보이는 백향목도 볼거리를 제공해 줬다.

돌로 포장된 도로를 지난 끝부분에 도착하니 넓은 광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광장 전면에는 이곳에는 짧은 초지가 형성돼 있고 백향목나무가 간간이 자리를 차지한 그 앞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진입로에서 오른쪽으로는 큰 야외극장이 있고, 거대한 석주들이 도역해 있으며, 왼쪽으로는 신전의 둥근 지붕과 장미매듭장식을 한 치료실이 이곳이 병원으로 활용됐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 또한 신성한 우물과 연못, 긴 터널이 있고 다양한 치료실이 즐비하게 있다.

가이드에 의하면 식이요법과 운동요법, 심리요법을 포함한 전인적 요법을 사용해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기도 했다고 한다. 심지어 의학도서관도 구내에 있었다고 하니 이곳은 당시로서는 의학의 첨단지인 셈이다.
 
그 외에도 이곳에는 거대한 헬라식 극장과 신전과 왕공, 시장터와 아테네 신전과 트라얀과 하드리아누스 신전이 있으며 깎아지른 성채 옆에는 야외극장이 자리를 지키며 버가모 시내를 품고 있다.
 
▲ 버가모 시내에 소재한 버가모교회의 모습 이곳에는 다양한 우상들의 전각들이 있고, 교회 안으로들어가면 수많은 유물들을 저장해 놓은 창고가 있다.     © 오종영

버가모교회, 세라피스 신전
아스클레피온 지역을 탐방한 후 버가모 시내로 들어왔다. 여기 어딘가에 초대 교회들이 있었을 것이다. 버가모교회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사단의 위가 있는 신전을 바라보면서 이 시대의 사단의 위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사단의 위를 누르고 승리하는 삶을 위해 진지하게 기도를 드렸다.

이곳에는 세라피스 신전이 자리하고 있고 그 안에는 다양한 유물을 저장한 창고가 식별 가능한 형태로 저장되어 있다.

버가모교회 탐방을 마친 후 버가모 밀지지역을 지나갔다.

어느덧 시간은 이곳 시간으로 오후 2시 50분이 되었다.

버가모를 지나 도착한 곳은 두아디라였다. 두아디라는 소아시의 서해 연안에 있는 도시이다. 염색업이 발달한 지역으로 자주장사 루디아를 떠올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지역은 영지주의와 철학이 발달한 곳으로 영지주의가 철학과 만나면 고도의 이성주의가 되는데 영지주의는 이신주의(이신론)로 인간은 신의 파편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철학자들은 생각했다고 하며 이 지역은 성적으로도 매우 방종해서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매춘하는 곳에 기웃거렸다고 한다.

염색업을 통해 많은 자본의 유입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경제적인 풍요는 이성을 억제시키고 감정을 유입하여 우리의 신앙마저 오염시킬 수 있다는 위기를 느꼈다.

▲ 상층부로 올라가면 무너진 성채가 있고 깍아지르듯 경사진 곳에 거대한 야외 음악당이 우리의 눈길을 끈다. 멀리 보이는 도시가 버가모 시내이다.     © 오종영

▲ 외부에서 바라본 버가모교회로 무너진 교회를 수축하고 있는 모습     © 오종영

오늘은 짧은 시간에 매우 많은 지역을 탐방하게 된다.

일정표 상으로 우리 일행은 두아디라를 지나 사르디스(사데)로 가는 도중에 수메르니(서머나)를 들를 예정이었는데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이에 서머나를 지나쳐야만 했다.

서머나교회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몰약과 향수가 생산되는 거대지구이다. 이곳은 바울과 요한이 각 각 3년. 10년씩 사역한 곳이기도 하다. 95년 여기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디모데, 오네시모가 사역을 이어받았으며, 폴리캅도 이곳의 감독이었다. 폴리캅은 그의 나이 85세에 급격한 박해로 인해 이곳에서 화형으로 순교했다. 이곳에는 프랑스 가톨릭이 이를 기념하여 120년 전에 기념교회를 건축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서머나교회를 향해 주님은 ‘환난과 박해가 있었고 궁핍하였으나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어렵고 힘든 것 뿐 아니라 고난도 받았으나 두려워하지 말고 그 가운데서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부족하고 어렵고 힘들게 산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과연 끝까지 주님을 따를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질문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서머나교회에서 받을 교훈이 참 많은 것 같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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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0/11 [15:53]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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