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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발행인 오종영 목사 성서의 땅 이스라엘을 가다 ⑩
오종영 목사/영성교회, 본지 발행인,대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오종영   기사입력  2018/08/08 [15:19]

▲ 헤로디움에서 바라본 베들레헴의 모습     © 오종영
 
베들레헴
우리 일행은 베들레헴에 들어섰다.

베들레헴이란 이름의 뜻은 ‘떡 집’이란 의미이다. 이곳은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이기에 더욱 의미 깊은 뜻을 포함하고 있다.

베들레헴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과 이집트를 잇는 중간 지역으로 예루살렘 남쪽 7km에 위치한 아랍도시로 구약 사사시대에 효부 룻이 시모 나오미를 따라와서 보아스를 만난 곳으로 오늘은 보아스의 정원도 둘러보게 된다. 보아스를 만난 룻은 그와 결혼하게 되고 보아스는 예수님의 조상이 된다.

또한 베들레헴은 다윗 왕과 그 후손이 태어난 곳으로 다윗은 이곳에서 사무엘에 의해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성경은 말한다(삼상16:1-13). 그래서 이곳에는 다윗의 우물도 유적으로 남아 있으며 이 보아스의 자손이 다윗왕이 되었으므로 ‘다윗의 도시’라고도 불려진다. 

▲ 베들레헴시내는 좁은 길과 수많은 자동차들로 인해 복잡했다. 사람들이 진행하는 방향으로 멀리 예수탄생교회가 보인다.     ©오종영
 
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예수님의 탄생교회이다. 구약에서 수없이 예언했던 메시아 되신 예수님이 이곳에서 태어나신 것이다. 그래서 매년 크리스마스 철이 되면 이곳은 순례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이며 베들레헴은 AC330년 콘스탄티누스황제에 의해 세워진 후 십자군 시대를 거쳐 현재까지에 이르는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신약성경에 보면 마리아와 요셉이 이곳에 와서 아기예수를 낳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예수님은 여관집 마구간에서 나셨고, 말구유 위에 강보로 싸인 예수를 뉘이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베들레헴 방문 마지막 방문지는 바로 예수님 탄생교회였다. 일정표상으로는 마지막에 항구도시 욥바로 향할 예정이었으나 예수님 탄생교회에서 너무도 많은 시간이 지체되어 욥바에 들르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지금도 남아 있다.

▲ 인공산을 만들어 설치한 헤롯의 무덤인 헤로디움 유적지로 베들레헴 시내 맞은편에 만들어져 있다.     ©오종영

헤로디움 언덕
베들레헴을 향한 우리 일행이 처음 도착한 곳은 헤로디움으로 헤롯대왕의 무덤이 발견됐다고 발표한 곳이다.

이곳은 헤롯왕이 죽기 전에 자기를 위해 준비한 무덤으로 하나의 거대한 피라밋 모양으로 되어 있고 무덤입구에서 한참을 돌아 지하를 거쳐 하산하도록 돼 있다. 한마디로 헤롯왕의 화려한 영광을 눈으로 보고 발로 밟아보는 시간이었다. 헤롯은 이러한 영화를 추구하기 위해 메시아를 죽이고 영화를 추구했다. 그러나 그도 죽으니 결국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이 세상도 부귀도 다 지나간다. 그러나 수많은 인간들은 한 줌 흙과 같은 영광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가? 부귀도, 권력도, 영광도 결국은 한 줌 흙이건만......

헤로디움에 관한 설명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베들레헴 남동쪽 7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고대 성채로 BC24년 경 헤롯왕이 옆에 있는 산을 깎아 이곳으로 옮겨 60m를 높여 인공산을 만들었고, 그 위에 성을 만든 곳으로 이곳은 헤롯의 중요한 요새이자 일종의 도피처로서 세운 곳으로 헤로디움이라 불리고 있다.

해발 758m의 인공산에 조성돼 있는 헤로디움은 주전 24-15년에 헤롯이 궁과 요새를 겸하여 건축한 것으로 이스라엘이 로마를 대항해 싸울 때 여러 차례 본거지가 된 곳 이기도하다.

고고학 발굴에 의하여 궁전, 망대, 수영장, 별장터, 수로 등의 유해를 비롯해 그리고 경기장 등 발견된 관련 시설들은 헤롯대왕의 궁으로써 그 화려함을 말해주고 있으며 헤롯은 죽기 전에 이곳에 묻힐 것을 원했고, 요세푸스에 따르면 실제로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특히 헤롯왕의 무덤은 헤롯왕의 존재가 역사적인 사실이며 이는 예수님의 존재의 역사성도 더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참고로 헤롯왕은 2000년 전 멀리서 경배하기 위해 찾아온 동방박사들로부터 유대인의 왕이 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것이라 생각해서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 일대에 2살 아래의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여 버린 잔인한 인물이다.(마태복음 2장)

▲ 목자들의들판 기념교회에서 바라본 베들레헴 전경.     ©오종영

헤로디움은 앞서 언급했듯이 인공산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약간은 등산하듯이 올라가야 한다. 이곳에 도착하면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있고 그 안에는 헤로디움의 모형이 있어 헤로디움의 전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돼 있다.

이어 자그마한 야산을 등산하듯이 헤로디움으로 올라갔다. 헤로디움에서 조망한 베들레헴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아내는 베들레헴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함께 헤로디움의 유적들을 탐방하기 위해 유적지로 내려갔다.

지상에 노출돼 있는 유적지는 원형성곽으로 돼 있었고,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으나 궁전과 요새까지 겸한 원형 성곽은 이스라엘이 로마에 항쟁할 때 전략적 요충지로 사용했고, AD71년 이스라엘이 로마에 점령당할 때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이 헤로디움을 건설하기 위해 옆에 있는 산을 깎아서 거기에 있는 흙과 돌을 옮겨 60m 높인 후 요새를 만들었다니 상상이 안된다.

헤롯왕은 건축과 야망이 매우 큰 사람이었으며 건축의 미치광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마사다 요새, 가이샤라 항구, 가이샤라 빌립보, 헤로디움 등 당시의 기술력으로 이러한 건축물을 만들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건축물을 만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을까? 많은 사람이 쓰러지고 죽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이렇게 건축에 집착을 보인 것은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자격지심과 반란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기 때문에 견고한 요새를 많이 만들었다는 주장들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 헤로디움은 1C 경 도굴된 흔적이 있으며, AD132-135년 열심당원들이 거주하면서 원래 있던 수로를 비밀 통로로 만들었다. 그리고 헤로디움의 아래에는 인공호수를 만들었다.

유적지를 둘러본 후 동굴로 진입했다. 믿기 힘들 정도로 잘 정돈돼 있었다.

아쉬웠던 점은 헤롯왕의 무덤은 아직도 발굴이 끝나지 않아서인지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없도록 길이 봉인된 상태로 있었다는 점이다.

다시 한번 건너편에 펼쳐져 있는 베들레헴을 바라본 후 길을 내려왔다. 그리고 아랍인이 운영하는 한 식당에 들렀다. 이곳에서 우리는 강태윤 선교사를 만났고 그의 안내로 즐거운 오찬을 즐겼다. 그리고 식당에서 나와 다음 목적지를 향했다.
 
▲ 목자들의 들판 기념교회로 우리 일행들이 들어가고 있다. 주변에는 백향목나무가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오종영

목자들의 들판교회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누가복음 2:10-12절)

이제 목자들이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전했던 들판으로 향했다. 목자들의 들판은 베들레헴 동네에서 동쪽으로 약 2km지점에 위치하고 있었고, 그 밑에는 ‘보아스의 들’이라고 하는 밭과 목장이 있었다.

우리 일행은 순례객들을 위해 설치된 그늘막 밑 의자에 둘러앉았다. 그리고 전방시야에 잡힌 목자들의 들판을 주시했다. 바로 밑에는 보아스의 들녘이 있었다.

목자들의 들판을 바라보며 ♬노엘 노엘 ..... 이스라엘 왕이 나셨네 ♬를 읊조리면서 예수님 탄생 당시 하늘에서 유독 밝은 빛을 내던 별을 유의해 보고 있던 목자들은 천사들을 통해 메시야의 나심을 전해 듣고 사람들에게 달려가 이 소식을 전했는데 ‘그 당시 목자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를 회상하면서 반복해서 찬양을 불렀다. 그리고 일행은 목자처럼 우리도 힘써 주의 복음을 외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 목자들의 들판 기념교회 전경.     ©오종영

자리에서 일어나 언덕위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목자의 들판교회가 있었다.

바로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알려준 곳이다. 이를 기념하여 ‘목자들의 들판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현재 이곳은 ‘벧사홀’이라고 하는 아랍인들의 동네로 사사시대에 롯이 이곳에서 보아스를 만나 결혼한 곳이기도 하다.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알린 곳의 정확한 장소에 대해서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전승에 의하면 베들레헴의 동쪽 약 3km 정도 떨어진, 오늘날 아랍인들의 벳 사훌(Beit Sahour) 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라고 하며, 교회역사가 유세비우스(265-340)는 베들레헴에서 1,000걸음 떨어진 곳이라고 언급하고 했다.
목자의 들판교회는 천사들이 양치는 목동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렸다는 곳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세운 기념교회로서 베두인(목자들)의 천막 모양으로 건축했으며 현재는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 목자들의들판 기념교회 내부 벽면에 그려진 성화로 예수탄생을 목격한 목자들이 구유에 나신 예수께 경배하고 있다.     ©오종영

이 교회는 가톨릭 작은형제회가 1954년 캐나다의 지원을 통해 베두인족의 천막과 같은 모양으로 건축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니 천장은 구멍을 뚫어 놓아 마치 별빛이 비치는 형상으로 설계되었고, 교회 벽면에서 천사로부터 메시아 탄생소식을 전해들은 목자들의 모습을 비롯해 여러 개의 대형 성화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예배당의 천장은 하늘을 상징하는 것이고 동그란 원은 별을 뜻한다고 한다.

목자들의 들판교회를 방문한 후 주변의 유적들을 둘러봤다. 많은 아랍인들이 각종 물품들을 팔기 위해 호객을 하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거금 1달러를 주고 처음 본 피리를 하나 구입했고, 아내는 기념품 판매점에서 교인들에게 줄 기념품을 골랐다.

이렇게 베들레헴에서의 오후 일과가 진행되고 있었다.

▲ 베들레헴에 도착해 헤로디움을 방문한 후에는 보아스의 정원 바로 앞에 세워진 죠이하우스(강태원 선교사 사역지)를 방문해 새로남선교관 개관식     ©오종영

▲ 베들레헴 보아스의 정원 앞에 건립된 죠이하우스내 새로남선교관 개관식에서 테이프커팅을 하고 있는 필자(왼쪽에서 두번째)와 강태원 선교사(가     ©오종영

이제 보아스 정원 바로 옆에 있는 죠이하우스로 이동했다. 이곳은 우리교단 소속 강태윤 선교사가 사역하는 문화원으로 건축은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고 건축물의 일부분은 이미 사용 중이었다.

강 선교사는 이스라엘 선교사 중에서도 베테랑이다. 이미 이곳에서 선교사역을 펼치기 시작한지 27년이 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한국의 주요 언론사들도 베들레헴에 대한 정보를 원할 때 강 선교사에게 협력을 구하고 있다고 하니 강 선교사의 사역의 비중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도 가졌다. 바로 우리 일행인 오정호 목사가 시무하는 새로남교회의 후원으로 완공한 죠이하우스 내 선교관인 새로남 선교관 개관식을 거행한 것이다. 기념 테이프 커팅 후 일행은 3층에 마련된 예배당으로 이동하여 강 선교사로부터 사역설명을 듣고 적지만 강 선교사 부부에게 격려금을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다.

▲ 예수탄생교회 안으로 들어갔을 때 수많은 순례객들이 대기중이었고 교회 안에서는 가톨릭의 미사가 진행중이서 순례객들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     ©오종영

예수탄생교회
이제 다음 목적지는 예수탄생교회를 둘러본 후 욥바로 향할 예정이다. 이스라엘에서의 한 주간이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예수탄생교회는 1700년 된 교회이다. 외부에서 바라본 예수탄생교회는 거대한 건축물이다. 그러나 그 출입구는 아주 작게 만들어 놨다. 겸손한 마음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머리가 꽤 아픈 일(?)이 생긴다. 그래서 붙여진 이 문의 별명은 ‘겸손의 문’이다. 원래는 큰 문으로 되어 있었으나 군왕이나 장군들도 말을 타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낮게 만들었는데 높이가 불과 120cm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좁은 문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교훈하신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겸손의 문으로 통하고 있는 것이다.

가이드에 의하면, 예수탄생교회는 135년 베들레헴 동굴 위에 로마의 아도니스 신을 위한 신전이 세워졌는데 이는 로마 황제 하드리안의 기독교 말살 정책의 하나였다고 한다. 그러나 200년 후 같은 로마 황제 콘스탄틴이 즉위하면서 신앙의 자유가 허락됐고,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는 성지순례 차 베들레헴에 왔다가 아도니스 신전을 헐어버리고 339년에 예수탄생교회를 창건했다.

다시 200년이 흐른 후 팔레스틴 민란 때에 파괴되었다가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안 황제가 다시 재건했고 이후 1400년간 건재하는 기적의 건물이 되었다. 그리고 1100년 크리스마스 날, 이 교회에서 왕위 즉위식이 열렸다. 십자가군이 성지를 점령하였고, ‘예루살렘 기독교 왕국’이 수립됐다.

이 교회 내부 지하층 돌계단을 내려가면 바닥을 대리석으로 깐 작은 동굴이 나오는데 폭이 겨우 3.5m, 길이가 13m정도의 작은 방이 있는데 이곳이 아기 예수께서 탄생하신 곳이다. 바닥은 은으로 만든 별 모양의 장식으로 되어 있다. 1717년 가톨릭교회에서 만든 베들레헴 별이요 그 별 둘레에는 라틴어로 ‘이곳에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였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 교회를 방문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입구가 작아서만은 아니다. 수많은 순례객들이 이곳을 찾아 입장하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이 매우 길었다.

교회 안팎으로는 질서 유지하는 사람들이 입장순서를 체크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아랍계 소녀들을 만났다. 이들은 단체로 이곳을 찾아왔다고 한다. 그들은 한국 사람들인 우리를 보고 반가워했다. 알고 보니 소녀들은 k-pop을 좋아한단다. ‘방탄소년단’, ‘슈퍼쥬니어’ 나는 잘 모르는 k-pop 스타들인 모양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한국문화가 이렇게 세계화가 되었다는 사실에 사뭇 놀라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의 기다리는 무료함을 아랍계 소녀들이 지루하지 않게 해주었다.

드디어 어렵사리 입장을 했다. 그러나 교회 내부에서 줄지어 있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가 있다. 바로 교회에서는 미사가 집례 되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내부탐방이 금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거대한 교회내부는 상당한 균열이 있었고, 그 균열의 원인은 잦은 지진의 영향이라고 한다. 부분적인 안전대책이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위험한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미사가 길어지고 끝날 줄을 모른다. 결국은 예수탄생교회 내부의 자세한 관람을 포기하고 돌아 나왔다. 여기서 기다림의 시간으로 인해 결국 욥바항 방문시간까지 놓치고 말았다. 아쉬움에 베들레헴 시내를 관통해 버스가 주차된 장소에 도착한 후 숙소로 이동했다. 이렇게 이스라엘에서의 한주간이 지나갔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면 짧은 잠을 자고 새벽 1시 터키로 이동하기 위해 공항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이번 성지순례의 절반을 이제 마친 셈이다. 소중한 일정을 안전하게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함께해 주신 가이드 박정식 목사와 노회성지탐방에 참여한 목회자 부부 일행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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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08 [15:19]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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