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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발행인 오종영 목사 성서의 땅 이스라엘을 가다 ⑨
오종영 목사/영성교회, 본지 발행인,대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오종영   기사입력  2018/07/20 [15:59]

▲ 산헤드린공회 건물 벽에는 목에 밧줄로 묶여 있는 예수님의 모습이 모자이크 기법으로 새겨져 있다.     ©오종영(발행인)

산헤드린 공회(베드로통곡교회)
다윗왕의 가묘를 지난 우리는 이제 산헤드린공회를 향했다.

산헤드린공회에 도착해 건너편을 바라보니 멀리 조금 전 다녀왔던 다윗왕의 가묘가 있는 다윗성이 보인다. 그리고 어느덧 제9시 기도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린다. 산헤드린 공회 지하에는 감옥이 있다. 그들은 유대인의 탈을 쓰고 온갖 악랄한 일을 저질렀다.

베드로는 예수님 수난 직전까지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했으나 예수님은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나를 부인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그 예언대로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하고 난 직후에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심한 양심의 가책에 괴로워하며 통곡하였다고 하여 베드로 통곡교회라고도 부르는 이곳 산헤드린 공회, 바로 이 사실을 기억하게 하자는 뜻에서 세워진 교회가 베드로통곡교회이다. 이곳은 시온산 남쪽 언덕에 있는 힌놈의 골짜기와 치즈골짜기와 기드론 골짜기가 만나는 곳을 동남쪽으로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피밭’이라는 뜻의 ‘아겔다마(행1:18-19)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으로 본래 가야바의 집터(예수님이 심문받은 장소)는 이 교회 위치보다 훨씬 북쪽인 시온 문 바로 밖인데 333년의 기록에 보면 이곳을 가야바의 집터로 믿기 시작했으며 457년에는 교회가 건립되었고 1010년에는 알 하킴 왕에 의해 파괴된 것을 십자가 시대인 1102년에 재건하였다.


▲ 산헤드린공회(베드로통곡교회)의 벽에 새겨진 조형물로 예수님이 수난받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오종영(발행인)

건물 입구 벽체를 바라보니 모자이크 그림으로 된 목에 밧줄에 매여 있는 예수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사두개파는 당시 돈을 위해 하나님을 팔아먹은 자들로 이들에게 매수된 사람들이 서기관들이고 이들은 메시야가 오면 죽이려고 했던 자들이다. 이들은 결탁하여 최고 권력자들과 야합했다. 즉 이들은 헤롯과 야합하여 이 일을 자행한 것이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온갖 채찍질과 고난을 당하셨으나 죽지는 않으셨다.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까지 보내지는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올리브오일을 다 짜내듯이 물과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다.

산헤드린공회는 1차로 예수님이 갇히셨고 2차로 제자들이 갇히고 협박당했던 장소이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예수님이 심문받으셨던 자리가 보이고 입구에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 부인했던 베드로의 형상이 문에 새겨져 있었다.

심문 장소 바로 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지하로 통하는 입구가 보이고 예수님은 지하 감옥에 갇히셨다가 심문받으실 때는 바로 이곳으로 끌어올리셨는데 이 일을 반복하면서 예수님의모든 기력은 이미 쇠할 대로 쇠하여져 있으셨고, 숨만 쉬고 계셨을 뿐 거의 죽음 상태에 근접해 있으셨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 일행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지하장소로 이동했다.

산헤드린은 철학도 사상도 있었으나 부활과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여기에 있는 감옥에 내려가면 스스로 올라올 수 없었다. 예수님은 이곳을 오르내리시면서 온 몸은 피투성이가 되셨다.

바로 그 때 베드로는 피투성이가 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분노와 절망, 좌절감이 생겼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한 여자가 “네가 바로 저 예수와 함께 있었던 자이지?”라고 물었을 때 “나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비겁하게 대답하면서 부인했던 모습을 보고 우리는 베드로를 향해 강한 비난을 보내왔다. 그러나 한편 예수님의 모습이 얼마나 처참하고 처절했으면 베드로가 자신의 고백을 뒤집을 정도로 부인해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본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베드로처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유약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고, 세상 사람들 앞에 설 때가 많은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중에 이 일을 후회하고 통곡했던 베드로의 후회와 통곡은 바로 우리의 입술을 통해 터져 나와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바로 그렇게 처참하기만 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본 후 예수님을 부인하면서 도망쳤던 베드로.....

그리고 그렇게 도망치듯 뛰쳐나가는 베드로를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제자 요한은 지켜보았을 것이다. 자료에 의하면 요한은 성공지향적인 사람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제국을 꿈꿔왔던 인물이다. 그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했을까? 혼돈과 선택의 마음의 이중성이 그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희미하게 또 그런 베드로를 지켜보는 눈이 있다.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3번 부인하면서 도망가는 모습을 보셨다. 그 신뢰했던 제자의 배신 앞에 예수님은 육체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만신창이가 되시지 않았을까? 우리도 순간의 잘못된 판단과 생각으로 인해 주님의 마음을 갈갈이 찢어내는 불경을 저지르고 있는지 모른다.


▲ 산헤드린공회 옆에 있는 박석으로 된 길 계단입구에서 한 여인이 기도를 드리고 있다.     ©오종영(발행인)

우리가 성지순례를 왜 오는가? 여기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함이 아닌가? 이내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무덤으로 내려갔다. 계단을 통해 밑으로 내려가니 안에는 사도들도 갇혔던 무덤과 예수님을 착고에 채워놓았던 착고가 눈에 들어온다. 예수님은 단순히 갇히신 게 아니라 착고에 채워진 채로 발이 공중에 떠 있는 상태로 계셨다는 행각에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탄식이 나온다.

우리는 이 좁은 곳에서 고백을 담이 찬송을 불렀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일행 중 누군가가 미세한 소리를 내며 흐느끼고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두는 예수님~, 예수님~을 부르며 울부짖듯 기도를 했다.
모진 고난 받으시고 재판정에 서셨던 주님!, 위선적인 종교지도자들 때문에......

그렇다면 우리도 이 상황 속에서 반문해야만 했다. “나는 과연 사두개인인가? 아니면 서기관인가?” “주님! 나로 하여금 위선의 탈을 벗게 하옵소서!”여기서 나는 사도들의 정신, 예수님의 정신, 복음의 정신, 구원의 정신을 지키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영적인 노동자가 되게 해달라고 마음의 간절함을 담아 기도했다.

좁은 공간 안에 자리 잡은 우리 일행들의 눈은 어느 사이 촉촉이 젖어 있었다. 연민, 죄송함, 부끄러움, 감정의 선이 매우 혼란스럽다.

실제 감옥으로 내려갔다. 예수님이 갇히셨던 그것에서 우리 일행은 예수님이 이곳 어디엔가 손을 대셨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그 흔적이나마 느끼기 위해 손을 내밀어 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찬양을 했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십자가를 찬양하면서 주님의 그 호흡을 느꼈다.

산헤드린공회를 나와 뒤편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오르셨던 돌계단이 있었고, 그 마당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멸시를 받으셨을 것이다. 산헤드린공회 옆 길목은 철재로 된 간이 문으로 막아놓았는데 그 앞에서 한 아랍계여인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여인은 무슨 생각을 하며 기도하고 있었을까?


▲ 히스기야터널 입구로 매우 경사지고 폭이 좁은데 들어갈수록 폭이 좁고 고가 낮으며 발 밑으로는 무릎까지 물이 차오르는 570여M에 달하는 터널이     ©오종영(발행인)

히스기야 터널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이곳은 히스기야 터널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길이가 약 570m에 달하는 곳으로 폭이 좁고 고가 낮은데다가 바닥에는 물이 흘러 전방이 식별불가능한 곳이다. 생각 없이 걸어야하는 곳인데 이곳을 걸으며 보이지 않게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동안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어 살았던 40년을 회고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던 곳으로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지하로 향한 입구는 끊임없이 내려가는 코스였고 한참을 진행하니 어둠이 엄습해 온다. 터널 중간에는 가압장이 있어 물을 효율적으로 보내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리고 물이 발목을 채우더니 어느 새 무릎 위를 적시는 구간이 나왔다. 휴대폰의 불빛에 의존하여 한걸음 한걸음 진행해 나갔다. 그리곤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휴대폰의 불빛을 소등하고 앞사람의 옷자락을 의지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지하터널 목소리가 없다면 손으로 옷자락을 붙들고 있는 사람마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짙은 어둠만이 가득한 곳을 지나간다.

한참을 지나니 두려움이 몰려온다. 언제 끝이 보일지 모르는 지하터널, 어쩌면 내가 살아온 인생이 이러한 터널이 아니었을까? 목회사역의 길이 바로 이런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과도 같은 현장이 아니었을까? 지난 40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그러나 희망이 있다. 가고 또 가면 이 터널의 끝이 나올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역의 고통도, 어려움이 언젠가는 끝이 오고 희망이 빛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 일행은 쉬지 않고 찬양을 부르며 앞을 향해 전진해 갔다. 특별히 시킨 사람이 없으나 선창하고 후창하면서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어두움의 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찬양을 부르며 어둠의 끝을 향해 나아갔다.

아무리 어둡고, 좁고, 머리를 부딪치기도 하는 가운데 기약할 수 없는 길을 가면서도 찬송하며 기도하며 걸어 가다보니 희미한 빛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네 인생도, 사역의 어두운 터널도 반드시 끝은 있다. 터널을 나오며 60인생을 생각하면서 끝임없이 울고 울었다. 그리고 눈물을 닦으며 힘을 주시고 새 희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어떤 역경도, 어둠도 우리를 영원히 묶어 두지는 못한다는 확신을 갖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실로암 못
너널을 빠져나오니 실로암 못이 있었다. 내가 기대하고 생각했던 그 실로암 못이 아니었다.

지금은 실로암 못 자리에 성이 건설돼 성안으로 들어와 있어 가이드의 설명이 없었다면 실로암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이곳에는 지하 수로를 통해 작은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고 성 밖으로는 작은 물줄기들이 고여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는 거대한 물줄기로 이 물줄기를 통해 예루살렘의 수많은 사람들이 기갈을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재 볼 수 있는 실물보다는 거대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실로망의 큰 못을 마음에 그리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고 희망을 주는 실로암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실로암에 가서 눈을 씻어 보았던 그 장님을 감동을 마음에 담는 시간을 가졌다.
 
▲ 목자들의 들녘에서 바라본 데들레헴과 바로 앞에 보아스의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오종영(발행인)

베들레헴
이제 우리 일행은 실로암을 빠져나와 베들레헴으로 이동했다. 중간에 힌놈의 골짜기가 있고 예루살렘의 많은 옛 유적지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른쪽으로는 서예루살렘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유대인들의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은 동예루살렘이 옛 도시이다.

차량을 타고 계속 이동하다보니 엘리야의 고향으로 추정되는 지역과 한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눈을 2시 방향으로 보니 멀리 목적지인 베들레헴이 보였다. 드디어 우리 일행은 베들레헴으로 들어가는 검문소를 통과했다. 이제 베들레헴이 바로 눈앞에 들어왔다.

베들레헴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과 이집트를 잇는 중간 지역으로 예루살렘 남쪽 7km에 위치한 아랍도시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장소로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수많은 순례객들이 이곳을 찾기도 한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크리스마스 철에는 순례객들로 인해 발 디딜 틈이 없을 전도로 수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베들레헴은 AD330년 콘스탄티누스황제에 의해 세워진 후 십자가 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이르는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곳에는 야곱의 아내 라헬의 무덤이 있는데 아이가 없던 라헬이 임신한 것을 본 받으러 임신을 원하는 여행객들이 자주 찾아가고 있으며, 구약성경에는 이방의 여인 룻과 로맨스가 기록된 보아스라는 사람이 살았으며 바로 이 보아스의 자손이 다윗왕이 되었기에 다윗의 도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베들레헴 교회에서는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목자들의 들녘도 볼 수 있다.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식사를 한 뒤 보아스의 정원 바로 옆에서 사역하고 있는 강태원 선교사의 사역지인 죠이하우스를 방문해 강 선교사님을 격려하고 새로남교회가 후원하여 건립된 게스트룸 개관식도 할 수 있었다.

이제 이스라엘 탐방의 시간도 어느 덧 마무리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헤로디움과 목자들의 들녘, 그리고 보아스의 정원과 죠이하우스를 들른 후 예수님 탄생교회를 끝으로 이스라엘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마무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의 마지막 감동은 다음회에서 이어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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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7/20 [15:59]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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