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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발행인 오종영 목사 성서의 땅 이스라엘을 가다 ⑥
오종영 목사/영성교회, 본지 발행인,대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오종영 기사입력  2018/06/07 [17:30]

▲ 오종영 목사/영성교회, 본지 발행인,대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편집국

감람산
지난 호 글에서 감람산에 소재하고 있는 예수님 승천교회와 관련된 글을 썼으나 감람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아 추가로 적어 본다.

감람산은 ‘올리브 산’이라고 부르는데 동 예루살렘 옛 도시의 오른쪽 산능선을 가리킨다.

행정구역상으로는 1967년 6일 전쟁 뒤 이스라엘이 직접 관할하게 된 예루살렘 특별시의 일부이며, 예루살렘 동쪽에 위치한 이곳은 해발 815m의 남쪽 봉우리로써 고대로부터 감람나무가 무성했으며 예루살렘 동편 산에는 이러한 감람나무가 무성했기에 산 이름도 감람산이 되었다고 한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가룟 유다에게 배반당해 팔려가기 직전 기도를 했던 겟세마네 동산이 서안에 있는데 일반적으로 예수님이 승천한 곳(행 1:12)으로도 알려져 있다. 주후 4세기부터 이곳에는 크고 작은 교회들이 건립되어져 현재 수많은 기독교계 종파들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네 개의 봉우리를 가진 조그마한 언덕으로 중부 및 남부 팔레스타인을 남북으로 달리는 산맥의 일부분으로 기드론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예루살렘 동편에 위치한 이곳은 동쪽으로는 여리고와 요단골짜기로 비탈져 있으며 히브리어로 감람산은 ‘하르 제이팀’(올리브 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세계각처에서 온 성지순례객들이 돌무덤이 있는 묘지에서 건너편의 예루살렘성을 바라보고 있다.     ©오종영(발행인)

예루살렘보다는 약 90m가 높기 때문에 이곳에서 정면을 응시하면 예루살렘 전체가 조망된다. 예수님 당시에는 나무가 우거져 있었다고 하나 주전1세기경에 숲이 다 망가져 버렸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이 산을 출발점으로 해서 일련의 봉화들을 밝혀두곤 하였는데 바벨론으로 끌려간 동족들에게 새로운 달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죽은 자들이 감람산 위에서 부활할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런 까닭에 옛날부터 이곳 감람산은 무덤지역으로 자리잡아왔다.

감람산은 예수님께서 이 산을 자주 찾아와서 묵상하고 기도하며 주기도문을 가르치기도 하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기도 하였으며 부활 후 마침내 이곳에서 하늘로 승천하신 것이다.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승천장소를 베다니 근방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다른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이 승천하신 곳이 이 감람산 꼭대기라고 말한다.

약간 비탈진 길을 내려갔다. 지금 우리가 지나가는 길은 예수님이 벳바게에서 나귀를 타고 지나가신 길이다.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길을 지나쳤다. 간간이 지나가는 차량들로 인해 좁은 길이 복잡했으나 좌우로 들어선 각 문화유산들을 들여다보며 길을 재촉했다.

길 건너에는 왼편으로 뾰쪽한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성모승천교회이다. 그리고 그 밑에 예수님이 재판받으신 산헤드린공회가 있으며, 그 아래에는 다윗성이 있다.
 
▲ 예루살렘 맞은편에 조성된 돌무덤들(무덤 한개의 가격이 강남의 아파트 한채값과 맞먹는다고 하며 돌무덤 위에 있는 돌 하나도 다 의미를 담고 있다.     ©오종영(발행인)

유대인들의 공동묘지(돌무덤)
비탈진 길을 내려가니 오른쪽으로 눈물교회가 있고 왼쪽으로는 수많은 유대인들의 돌무덤들이 눈에 들어온다.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돌무덤들이 지상에 노출된 상태로 널려 있고 그 돌무덤 위에는 크고 작은 돌들이 수없이 놓여 있다. 이 무덤은 건너편 예루살렘 성전 바로 앞에도 형성돼 있다. 죽어서라도 예루살렘을 가까이 하고 메시아를 대망하고 있는 뜨거운 유대인들의 신앙관을 이해할 수 있었다.

▲ 예루살렘 성전 맞은 편에 조성된 유대인들의 무덤들(무덤 한개의 값이 강남의 아파트 한채의 가격에 달한다고 한다.     ©오종영(발행인)

이 돌무덤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다. 돌무덤 한 개의 가치가 강남 아파트 한 채에 버금간다고 한다. 철저한 유대인들의 신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삶의 우선순위, 가치가 하나님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형식화되어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이 반성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줬다.

순례자요, 나그네 인생으로서 바람과 같이 날아간다는 성경의 표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해석하며 삶의 지표와 적용점으로 삼고 있는가 느껴본다.

이러한 돌무덤은 건너편 시온산 방향에도 즐비하게 설치돼 있었다. 이곳은 성경에 시온의 요새라고 되어 있는데 해발 765m정도 되는 산등성이로 예루살렘 성의 남쪽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그 오른쪽에는 힌놈의 골짜기가 있고 왼쪽으로는 기드론 골짜기가 있으며 다윗이 점령한 후부터는 다윗성이라 불리고 있다(삼하5:7). 시온산 정상에는 마리아가 잠든 장소로 마리아 영면교회가 있으며 바로 앞에는 유대인들의 공동묘지가 있다.
 
▲ 주기도문 기념교회 외부 전경     ©오종영(발행인)

주기도문기념교회
예수님 승천교회를 방문한 후 큰 도로변을 타고 조금 내려가니 주기도문기념교회가 나왔다. 이곳은 초대공동체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이 교회는 비잔틴시대에 세워졌는데 예수님은 예루살렘성전이 보이는 이곳에서 쉬셨다는 말씀이 있다. 그리고 초대공동체는 이런 곳에서 모임을 가졌다.

이곳에서 우리는 ‘주기도문송’을 합창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름 거룩하사 주의 나라 임하시고 뜻이 이루어지이다..............♪

승천단 옆에 있는 주기도문기념교회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뒤 4세기에 예루살렘의 감람산(올리브산) 정상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준 장소를 기념해서 그의 어머니 헬레나 황후의 요청에 의해 Peter Noster라는 이름의 교회를 세웠다. 그런데 이 교회는 아직도 벽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이유는 아직도 하나님나라가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규모면에서도 헬레나 황후의 요청에 의해 세워진 3개의 교회(베들레헴 예수 탄생교회, 주기도문교회, 무덤교회)중 가장 규모가 큰데 소경당 안에는 히브리어, 희랍어 그리고 라틴어로 된 주의 기도문이 적힌 대리석 판이 장식되었다. 하지만 십자군이 패한 뒤 소경단도 파괴되었고 그 자리는 무슬림의 손에 들어갔다.

▲ 주기도문교회 회랑에는 약 80여개국의 언어로 기록된 주기도문이 변면에 새겨져 있다.     ©오종영(발행인)

▲ 주기도문 기념교회 내부모습     ©오종영(발행인)

1868년에 프랑스 바씨의 아우렐리아 공주가 그 땅을 사서 프랑스에 헌납하였고, 1875년 조그마한 기념 성전과 가르멜 수녀원을 지어 이곳을 관리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곳은 동굴로 알려져 있는데 동굴 입구에는 히브리어와 아랍어로 주기도문이 돌판에 새겨져 있다. 교회의 벽면에 히브리어로 시작된 주기도문이 1102년에 새겨진 이후 한글을 비롯해 교회의 외부와 복도 등 벽에는 모두 80여개 나라의 언어로 주기도문이 새겨져 있다. 주기도문 교회 아래쪽에 주기도문 동굴 예배처가 있고 그 안에는 성서지리 탐방객들이 앉아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돌로 된 의자들도 있다.
우리는 이 동굴에서 나와 1층에 있는 기념품 가게 들러 각국의 언어로 인쇄된 홍보물을 챙긴 뒤 시원한 음료로 여로에 지친 피곤을 해소했다.

▲ 한국어로 된 주기도문도 두 개가 벽면에 새겨져 있다.     ©오종영(발행인)

▲ 한글로 된 주기도문 앞에서 필자의 아내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오종영(발행인)

감람산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문을 가르치셨고(마6:9-13, 눅11:2-4) 예루살렘의 멸망과 재림과 세상의 종말을 예고하셨던(마24:1-3, 막13:1-2, 눅21:5-6) 동굴위에 세워진 주님의기도문기념교회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 눈물교회 내부에서 바라보는 건너편 예루살렘의 모습.(건너편 중앙으로 황금돔이 보인다)     ©오종영(발행인)

눈물교회
주기도문기념교회를 나와 예루살렘성전 쪽을 향하다 오른편에 있는 눈물교회에 들렀다.

‘눈물교회’또는 ‘예수눈물교회’로 불리는 이 교회는 예수께서 감람산에 올라가 장차 파괴될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시면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라고 하시면서 우신 것을 기념해서 건축한 교회이다. 그래서 눈물교회라는 뜻은 ‘주께서 우셨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눈물교회는 지붕은 눈물형태를 띄고 있으며 지붕 네 귀퉁이에 눈물병이 있다. 이곳에서 주님은 예루살렘을 보며 우셨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 일행은 이 눈물교회 안으로 들어가 묵상기도를 드렸다. 이미 예배당 안에는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 눈물교회 입구 모습     ©오종영(발행인)

잠시 기도를 한 후 강대상 반대편으로 설치된 창가로 가서 맞은편을 바라보니 예루살렘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정면에는 거대한 황금돔이 한눈에 들어왔다. 잠시 후 방문할 곳이기도 하다. 이 창문에서 우리 일행은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예수님의 눈물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한편 눈물교회는 5세기 경 이곳에 수도원이 처음 세워진 이래 1881년에 프란시스코 수도원이 자리 잡고 있으며 현재의 교회는 옛 교회의 잔해 위에 1955년에 이탈리아의 건축가 안토니오 바르루치가 설계하여 완성한 교회이다.
 
▲ 겟세마네 기념교회 정면 모습(중앙 상단부에 다윗을 상징하는 두 마리의 사슴이 있고 아래에는 기도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잠들어있는 베드로와 야     ©오종영(발행인)

겟세마네
겟세마네란 의미는 ‘짜내시는 곳’이란 뜻이다.

겟세마네교회는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최후의 결심을 하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피같이 흐르는 결사적인 기도를 드렸던 자리에 세워진 교회로 ‘고통의 교회’라고도 부른다. 현재는 1920년에 비잔틴과 십자가 시대의 교회의 잔해 위에 16개 국가 성금으로 이탈리아 건축가 안토니오 바르루치가 12개의 돔 모양의 지붕으로 설계하여 건축하였기 때문에 ‘만국교회’라고도 부른다.

감람산에는 모두 여덟 그루의 오래된 감람나무들이 있다. 이 나무들과 그 열매들의 이름을 따서 이 장소의 이름을 ‘겟세마네’라고 불렀다. 앞서 설명한대로 ‘겟세마네’는 아랍어로 ‘기름 짜다’라는 뜻이다. 겟세마네 동산은 가톨릭 프랜시스컨 신부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 겟세마네기념교회 앞에 많은 성지순례객들이 모여 관람을 하고 있다. 옆에 있는 나무는 수령 2000년을 자랑하는 올리브나무(감람나무)이다.     ©오종영(발행인)

▲ 겟세마네교회의 내부 모습     ©오종영(발행인)

예수님은 올리브 기름을 짜내듯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온 몸의 물과 피를 짜내주시므로 우리를 살려 주셨다. 이에 겟세마네에는 거대한 감람나무(올리브나무)가 정원수처럼 심겨져 있었다. 이곳에 심겨진 올리브나무는 수령 2000년을 자랑하는 나무가 있다. 보기에도 오랜 세월을 견딘 흔적이 역력하게 보인다.
 
나무가 심겨져 있는 길을 따라 조금 이동하니 바로 옆에 겟세마네교회가 자리하고 있있다.

이에 먼저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기념교회의 모습을 남긴 후 교회 입구로 이동했다.

교회전면을 주시해 보면 가운데 꼭대기에는 한 쌍의 사슴이 있는데 이는 ‘다윗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가이드 박정식 목사의 소개가 이어졌다. 기념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약 100여평에 달하는 교회내부에 설치된 제단 앞에는 큰 돌이 있고 쇠로 된 울타리가 가시나무 모양으로 둘러쳐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위에는 십자가가 새겨진 제단도 있다.

상단을 조망했다. 천장에는 12제자를 나타내고 있는 12개의 작은 둥근 지붕이 세 개씩 네 줄로 되어 있었고, 한쪽에는 세 개의 그림이 있다. 중앙의 것은 예수님이 바위에 엎드려 기도하시는 모습이고, 그 남쪽에는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베는 장면이며, 북쪽에는 가룟 유다가 예수님께 입 맞추는 장면이다.

▲ 겟세마네에는 수령 2000년을 넘긴 감람나무(올리브나무) 8그루가 기념교회 정원에서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모퉁이에는 예수님이 무릎꿇고 기도하셨던 바위가 있다.     ©오종영(발행인)

▲ 수령 2000년이 넘은 올리브나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필자의 아내와 오정호 목사 사모(오른쪽).     ©오종영(발행인)

▲ 벽에 부착되어 겟세마네의 올리브 정원을 소개하고 있는 동판.     ©오종영(발행인)

교회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다시 상단을 바라보았다. 교회정면 입구 상단 벽에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사이에 베드로와 야곱, 요한 등 세 제자가 잠들어 있는 모습이 모자이크로 그려져 있었다. 교회 옆으로 이동을 했다. 옆에는 들어올 때 보았던 20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두툼한 감람나무(올리브나무라고도 한다) 8그루가 역사의 긴 시간을 대신해 보여주고 있으며 한쪽 귀퉁이에는 예수님이 엎드려 기도하셨다는 바위가 있다. 일행 중에는 그 바위 위에 올라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최대한 많은 것을 만져보고, 밟아보고, 느껴보고자 하는 열정과 믿음이 느껴진다.
 
▲ 예수님의 할머니인 안나를 기념하는 성안나교회 전경.     ©오종영(발행인)

聖(성)안나교회(마리아의 어머니를 기념하는 교회)
우리는 비아돌로로사를 경험하기 전 聖안나교회를 방문했다. 이곳은 비아 돌로로사 인근에 소재한 곳으로 안나는 예수님의 외할머니 이름으로써 바로 그 자리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태어난 곳이라고 알려져 있어 기념교회가 세워졌다.

지금의 교회는 1140년의 십자군 시대에 세워진 교회로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십자군 시대의 건축양식을 지닌 건물로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 보존된 건물로도 알려져 있고 기념교회 옆에는 베데스다 연못도 유적으로 남아 있다.

聖안나교회는 마리아가 태어난 동굴 위에 지어 마리아를 낳아준 그의 어머니 안나에게 봉헌한 교회로 십자군 시대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로 고딕식 둥근 지붕과 음치가 노래를 해도 천상의 소리를 돌릴 정도로 완벽한 내부 공간 구조를 가지고 있는 교회이다.

▲ 성안나교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필자와 일행 목사.     ©오종영(발행인)

聖안나교회는 십자군 시대에 지어진 성전 건물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교회로 기념교회 출입문 위에는 아랍어로 쓰여진 현판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으며 이는 무슬림들이 소유했었다는 역사의 기록이기도 하며 무슬림 신학교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성안나교회는 전통적인 로마양식으로 십자군 시대의 건축양식을 지닌 건물로써 도시에서 가장 오래 보존된 곳이기도 하다.

한 때 이 교회는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1130년경 십자군의 볼드윈1세 부인 아르메니안 여왕 아르다가 수도원에 거금을 기부하며 두 개의 교회를 짓도록 했다.
 
▲ 베데스다 연못     ©오종영(발행인)

베데스다 연못
성안나교회를 나와 오른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바로 왼편에 베데스다 연못이 있다.
베데스다 연못은 1871년 성 안나 교회 옆에서 행해진 발굴로 두 개의 커다란 직사각형 연못이 발견되었는데 바로 요한복음 5:2절에 나오는 베데스다 연못이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주랑에 의하여 몇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성전에 드릴 희생양을 여기서 씻었으리라 여겨지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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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6/07 [17:30]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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