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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발행인 오종영 목사 성서의 땅 이스라엘을 가다. ①
오종영 목사/영성교회, 본지 발행인,대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오종영 기사입력  2018/03/30 [15:50]
▲ 오종영 목사(영성교회, 본지 발행인,대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편집부
이 탐방기는 지난 2월 25일부터 3월 9일까지 이스라엘과 터키를 방문했던 예장합동 서대전노회 성지탐방대회에 동행했던 본지 발행인 오종영 목사가 현지 방문기를 기행문과 설명문 형태로 정리한 글입니다. 본 연재는 오 목사가 방문했던 이스라엘과 터키의 주요 방문지를 중심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방향에서 정리했습니다.

터키는 이즈미르와 안탈리아, 갑바도키아, 이스탄불의 주요 선교유적지들을 중심으로 방문기를 연재해 나갈 예정입니다. 이번 성서지리탐방을 위해 협력해 주신 새로남교회 오정호 목사와 가이드로써 큰 감동과 은혜를 전해준 인천 은혜의교회 박정식 목사를 비롯한 39분의 일행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참고로 이 글은 가이드 박정식 목사의 설명을 메모했던 글과 성서지리 탐방 후 필자가 다시 복기하는 마음으로 여러 관련 자료들을 참고해 정리한 글임을 밝히며 필자가 직접 방문한 장소들을 중심으로 소개하는 제한적인 내용임을 밝힙니다.
 
▲ 예루살렘성 전경     © 오종영(발행인)

목회자들에게는 가장 분주한 주일 오후시간, 새로남교회에 집결한 36명의 목회자부부는 서로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며 일정동행에 대한 기대에 부푼 마음을 추스르며 인천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린 시절 소풍을 앞둔 동심과 다를 바 없는 설레는 마음으로 성서의 땅 이스라엘과 사도들의 행적지인 터키를 향한 출발은 대부분의 이들에게 생소한 일정의 신호탄이었다.

대회장 오정호 목사의 기도 후 인천공항을 향한 버스가 시동을 걸고 출발함과 동시에 12박 13일로 예정된 일정은 시작됐다.

참가자 대부분이 첫 성지순례에 참여한 목회자들인지라 기대에 부푼 마음은 누구나 같아보였다. 그래서인지 누구랄 것 없이 가장 분주한 주일 오후사역을 마친 시간인지라 피곤한 몸들이지만 성서지리탐방에 대한 기대는 피곤을 잊기에 충분했다.

주일 오후, 고속도로 사정에 대한 우려로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출발했지만 의외로 고속도로의 교통흐름이 좋아 2시간 여 만에 인천공항 근처까지 이르렀고 이에 일행은 공항인근의 식당에 둘러 김치찌개로 한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한 후 공항에 도착했다.

오후 9시, 공항에서 인솔자 최승철 집사와 만나 화물탁송과 항공권 발권 후 필요한 사항들을 점검한 후 우리의 일정을 책임질 가이드 박정식 목사·박연주 사모와 조우하니 성지탐방 최종인원 39명의 퍼즐이 완성됐다.
이제는 출발이다. 일행은 출국장으로 이동한 후 공항 안에서 개인적인 용무들을 보고 정해진 시간이 되자 항공기 탑승장 앞에서 다시 만나 인원점검을 하고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주일사역을 마치고 분주하게 움직인터라 너나 할 것 없이 탑승 후 수면에 들어갔고 11시간이 지나 항공기는 터키에 도착했다. 터키는 한국과는 6시간의 시차가 있기에 오전 6시가 채 안된 시간에 터키공항에 도착해 즉시 이스탄불에서 이스라엘 텔아비브행 항공기로 환승한 후 오전 9시가 넘어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이스라엘은 한국과 7시간의 시차를 갖는다. 공항을 빠져나온 일행은 공항 앞에 대기중이던 버스에 짐을 싣고 바로 투어에 들어갔다.

버스에 승차한 후 가이드 박정식 목사가 당일 일정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인사를 했다. 가이드 박정식 목사는 인천 은혜의교회 담임목사로 제자훈련의 목회철학으로 대형교회로 부흥시킨 현직 목회자이자 목회에 성서지리탐방을 접목시켜 그동안 70회가 넘는 성서지리탐방을 통해 얻은 폭넓은 식견을 바탕으로 한 가이드로 일행들에게 감동을 주며 일정 내내 존경을 받았다.

▲ 카메라 앵글로 성서의 땅을 보다.     © 오종영(발행인)
 
박 목사에 의하면 그는 시무하는 교회의 장로, 권사, 집사, 대안학교, 학생, 청년 등 교회의 성도들을 직접 인솔하고 성서지리 탐방을 실시해 왔는데 그래서인지 그는 신학, 신화, 역사, 건축, 철학에 해박한 지식을 구비하고 있어 마치 각 분야의 전문가를 모두 모시고 여행을 하는 느낌을 줬다. 특히 성서지리를 목회적 측면에서 재해석해 줌으로써 일반적인 가이드를 통해서 느낄 수 없었던 공감과 적용이 이뤄졌다.

박 목사는 첫 목적지에 이르기 전 달리는 차안에서 사전 가이드를 시작하며 우리는 나쁘게 생각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에서 헤롯은 다른 의미를 지닌다면서 “이스라엘에서 헤롯의 업적은 대단히 크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영웅처럼 헤롯을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헤롯은 하스본 왕조의 마지막 사위로 야망이 큰 요르단 계통의 사람이지만 유대인 공동체는 쉽게 그를 받아들였다. 나중에는 하스본 왕조가 로마에 의해 무너지고 로마의 치세하여 있다가 고대 로마 이후 공화정이라는 새로운 정치가 도입됐고 후에는 아우구스에 의해 황제통치에 들어갔다. 그리고 분봉왕으로 임명한자가 헤롯왕이고 로마는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헤롯궁전을 지어줬는데 그 헤롯의 거대한 건축물이 바로 ‘가이사랴’라면서 우리의 첫 방문지인 가이사랴에 대한 사전 지식을 전수해줬다.

또 “예수님 당시 왕조 헤롯대왕이고, 예수님이 만났던 왕이 헤롯안티바이며, 헤롯 아그립바가 마지막 헤롯대왕인데 헤롯은 바로 가이사랴에 대도시를 만들었고 로마가 이곳을 점령했을 때 총독이 사는 도시가 됐다”면서 첫 방문지 가이사랴에 대한 사전 설명을 통해 가이사랴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버스는 텔아비브 공항을 출발한 후 어느 덧 욥바를 거쳐 아얄론 골짜기를 지나 북쪽 중부산맥지역을 향했고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주변의 풍경은 우기가 지나면서 푸른 초원과 꽃들이 자태를 드러내는 등 가장 계절적으로 축복된 시기에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행운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으면 건기가 닥쳐오고 주변은 삭막한 광야가 되며 저 아름다운 꽃들도 3주 정도 지나면 다 시들어 버린다니 우리 대한민국이 얼마나 축복된 땅인지 새삼 느껴졌다.
 
▲ 가이사랴 항구     © 오종영(발행인)

▶ 가이사랴
드디어 첫 방문지인 가이사랴에 도착했다. 가이사랴는 헤롯이 건설한 인공 항구도시로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항구인 하이파에서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약 43km지점에 위치한 지중해 해안 중부지방에 있는 항구도시로 BC 4세기경에 스트라든이라는 이름의 시돈 왕이 이곳을 건설하였고 마카비 시대에 알렉산더 얀나이우스가 폭군 죠이루스로부터 이 성을 탈취했으며, BC 63년에 폼페이우스가 이 성을 점령하여 자치제를 허용하였다가 헤롯에게 넘겼다.

헤롯은 이곳을 도읍으로 정한 후 거대한 건설사업을 했고 로마황제 가이사아구스토(BC27-AD14년/재위)의 비위를 맞추려고 그 황제의 이름을 따 북방 헬몬산 기슭에 황제와 자기의 이름을 연결시켜 가이사랴 빌립보(가이사랴 빌립보는 나중에 다시 소개하고자 한다)라고 지었기 때문에 그곳과 구분하기 위해 가이사랴 재건사업을 활발히 진행하여 이곳에 지중해 연안의 대표적인 항구를 만들었고 로마 총독부와 1,000여명의 군인이 주둔하였다. 가이사랴는 성령 받은 고넬료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 성경 사도행전 10장의 배경이 되는 장소로 베드로가 욥바에서 환상을 보고 이곳에 있던 백부장 고넬료의 초청을 받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첫 방문지를 접한 일행은 호기심이 상승했고 가이드 박정식 목사의 배경설명을 들은 후 성 안으로 들어갔다. 성안으로 들어가자 거대한 서대한 로마식 야외극장이 일행을 반겼다. 일행은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방문흔적을 남기기에 분주했다.

▲ 가이사랴 항구     © 오종영(발행인)

야외극장의 규모는 웅장해 압도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야외극장에서 정면을 주시하면 지중해의 푸른 물결이 눈에 들어오고 시야를 멀리 하면 왼쪽으로 이스라엘에서는 가장 큰 화력 발전소도 한눈에 들어온다.

일행은 지중해변으로 이동했다. 거기에는 헤롯시대의 수영장(해수욕장)이 있었고 오른쪽으로 이동하니 십자군 시대의 성벽과 아우구스투스 신전, 비잔틴시대의 교회유적, 파수대유적, 시나고그유적, 로마시대의 경기장과 고대수로, 도서관, 목욕탕, 기념탑 등이 잘 가꾸어 보존되어 있었다.

물론 가이사랴는 십자군 원정이 실패로 끝나고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어 600년간 모래 속에 파묻혀 있다가 20세기 들어 발굴되어 과거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많이 훼파되기는 했으나 충분히 우리에게는 새롭고 신기한 문화유적지로 감탄과 기대감, 처음 성경에서만 들었던 성서지리를 발로 밟고, 만져보며 시대를 거슬러 2,000전의 시간 속 여행을 하는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이곳은 빌립의 거주지(행840, 21:7-14)요 바울의 방문지였으며(행18:22, 21:8), 베롯(아그립바)가 벌레에게 먹혀 죽은 곳(행12:19, 12:20-25)이다.) 

▲ 갈멜산 입구에 있는 엘리야기념 조각상(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를 제압하고 있다).     © 오종영(발행인)

▶ 갈멜산
두 번째 방문지는 갈멜산이다. 갈멜산에 들어가자 거대한 엘리야기념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조형물은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를 밟고 있는 모습을 띠고 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싸웠던 갈멜산, 엘리야 조형물 맞은편에는 작은 기념교회가 있었다. 그 예배당에 일행은 삼삼오오 들어가 내부를 둘러본 후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당에서 엘리야의 능력을 소망하며 두 손을 모았다. 엘리야의 능력이 전이되는 느낌이다. 아주 기분이 좋았다.

갈멜산에서의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십자군 시대에는 산 정상에 수많은 수도원과 기념교회가 세워졌지만 현재는 하나의 석조물이 남아있는데 이는 1836년 그리스 정교회소속의 수도원으로 수도원에는 엘리야를 기념하는 동상이 세워져 있고 수도원 입구에는 바알 선지자들이 기우제를 드리는 모습과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을 죽이는 장면에 벽에 새겨져 있다.

유대인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인, 무슬림, 바하이교의 공통된 성지로 인류 역사를 교차한 역사의 현장인 갈멜산은 이곳의 석회암 동굴의 빈벽에서는 크로마뇽의 뼈가 발견되었고, 피타고라스도 이집트로 여행하는 도중에 이곳 언덕에 머물렀던 적이 있으며 선지자 엘리야 역시 이곳 갈멜산의 두 동굴을 집으로 삼았고, 예수의 가족도 이집트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서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 갈멜산에 있는 엘리야기념교회 안 전경.     © 오종영(발행인)

이동하여 기념교회 옥상위로 올라가니 비옥한 땅들이 눈에 들어온다.

갈멜은 하나님의 포도원으로 성경에서는 땅의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곳이다. 동은 ‘이스라엘의 빵 바구니’라는 이스라엘 평야가, 서쪽은 지중해 해변의 샤론평야가, 북으로는 스불론평야가 있다. 일찌기 이 산에서 여호수아는 ‘욕느암왕’을 격파한 적이 있고, 엘리야는 바알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이곳에서 전멸시킨 후 기손 시내로 내려가 죽였다는 기록이 성경에 있다.

또한 기도하여 3년 반 동안 가뭄이 들었던 땅에 비를 내리게 하였으며, 이곳에서 수넴 여인을 만나 그의 아이를 살려주기도 했다.  

▲ 므깃도 정상에서 바라본 곡창지대     © 오종영(발행인)

▶ 므깃도
세 번째 방문지는 므깃도였다. 므깃도는 일반평지보다 약 50M높은 곳의 이스르엘 평원 지역 안에 위치한 도시로, 동서와 남북으로 이어지는 길목의 전략적 요충지로 식량도 풍부한 곳으로 드넓은 곡창지대가 자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스르엘 계곡과 서남쪽으로 내려가는 이론계곡의 연결점으로 옛날부터 북쪽의 시리아지방과 남쪽으로 애굽을 왕래하는 통로였다. 특히 므깃도는 동서를 가로지르는 이스르엘 평야로 인해 평탄한 동서 도로변에 있어 북쪽에 있었던 바벨론, 앗수르, 페르시아 등의 나라가 애굽을 치러갈 때나 남쪽의 애굽이 북쪽으로 쳐 올라갈 때에는 이 므깃도가 언제나 격전의 전쟁터가 되었고 큰 전쟁만 5000번 이상 있었던 곳이다.

이후 전쟁 때문에 24번이나 도시가 재건되고 파괴되기를 되풀이되기도 한 곳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탈출하여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갈 때 정복한 영토로(여호수아12:21, 17:11) 므낫세 지파가 분배받은 땅 이름에도 높은 곳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후에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했다.

통일왕국 시대에는 다윗이 점령했고, 후에 그의 아들 솔로몬 왕이 이스라엘을 12구역으로 나누어 다스릴 때에 므깃도 지역을 바아나가 다스렸고(왕상 4:12), 솔로몬 왕은 므깃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여 하솔, 게셀과 함께 므깃도를 전략도시로 건축했으나(왕상9:15) 이집트 왕 시삭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아합왕에 의해 재건되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최후의 장소를 ‘아마겟돈’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므깃도 산의 히브리어 표현인 ‘하르 므깃도’를 헬라어로 옮겨 적은 것이다.

므깃도 정상에 올라 주변을 조망했다. 넓은 평원이 눈에 들어온다. 비옥한 땅이다. 북쪽으로, 동쪽으로 도무 평원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일행은 이곳에서 가이드 박정식 목사의 설명을 들은 후 엘리야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 마리아수태고지교회 전경     © 오종영(발행인)

▶ 나사렛(마리아 수태고지교회와 聖요셉교회)
우리는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나사렛에 도착했고 나사렛 시내의 복잡한 길을 잠시 지나 도착한 곳은 마리아가 예수수태를 고지 받은 동굴 위에 세워진 ‘수태고지교회’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목공일을 했던 곳에 세워진 ‘聖요셉교회’를 만날 수 있었다. 정문은 닫혀 있어 옆으로 나 있는 사잇문으로 들어가니 웅장한 ‘수태고지교회’의 정문이 보였다.

나사렛은 이스라엘의 비옥한 농경지 이스르엘 평야 가까이에 있는 작은 언덕에 둘러싸인 도시로 처녀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잉태한 곳이다.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는 남편 요셉과 나사렛으로 올라와 생활을 시작했다. 나사렛에는 서기 326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의 어머니 헤레나의 부탁으로 마리아의 집터에 교회를 세웠으나 이후 7세기에는 회교도의 점령, 11세기 십자군의 침공, 살리딘의 역습 등으로 무수한 붕괴와 재건을 되풀이했으며, 오스만 터어키의 지배 하에 들어간 이후 17세기부터는 비로소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이 나사렛에 사는 것을 허락하면서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었다.

▲ 요셉교회 내부교회 모습     © 오종영(발행인)

현재의 나사렛은 ‘회교도와 크리스찬’이라는 말로 히브리어로는 ‘노쯔리’, 아랍어로는 ‘낫스라이’라고 불리었는데 이는 나사렛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다. 나사렛의 주요 명소로는 ‘마리아수태고지교회’와 ‘聖요셉교회’가 있다.

마리아수태고지교회를 방문했을 때 상당히 큰 규모로 지어진 수태고지교회 안에는 많은 방문객들이 교회내부를 둘러보고 있었고, 교회중앙 지하에 있는 조형물을 바라보며 난간을 붙잡은 상태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교회 한쪽으로 이동해 보니 지하에 마리아가 물을 길었던 마리아 우물 등이 존재하고 있었다. 수태고지보다 조금 높은 지대에는 ‘聖요셉교회’가 있었다. ‘聖요셉교회’는 수태고지교회보다는 작은 건축물로 지어졌으나 내부의 웅장함은 여전했으며 지하공간에는 다양한 시설물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 갈릴리가나 혼인잔치 기념교회 야경     © 오종영(발행인)

▶ 가나혼인잔치 기념교회
성서지리탐방대회 첫날 마지막 방문 장소는 ‘가나 혼인잔치 기념교회’였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 가로등불이 어두운 길목길을 밝히고 있는 시간이었다. 도로에 버스를 주차시킨 후 100여 미터 남짓 올라가니 우측으로 길 옆에‘가나 혼인잔치 기념교회’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갈릴리의 가나는 예수님께서 첫 번째 이적을 행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요한복음에 보면 가나는 예수께서 혼인집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첫 번째 표적을 행하신 곳(요2:1-11)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두 개의 기념교회가 세워졌는데 그 중에 하나는 가톨릭 소속 프란시스코교회에는 돌 항아리 하나를 보관하고 있으며, 회랍정교회에도 돌 항아리들을 보관하고 있는 데 각기 자기네가 보관하고 있는 돌항아리가 예수께서 표적을 행하신 본래의 항아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 갈릴리가나의 혼인잔치 기념교회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는 모습.     © 오종영(발행인)

오늘날에는 이 교회당에서 결혼식을 행하면 행복하게 산다고 하여 많은 신혼부부가 이곳에서 결혼식을 거행하고 있으며, 요한복음의 또 다른 기사에는 죽어가던 왕의 신하 아들이 살아났고, 가버나움의 환자가 그 말씀대로 소생하여 완쾌된 기사도 있다(요4:46-54).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가 방문한 시간 교회 안에서는 가톨릭의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관람시간이 지나 우리가 목적했던 교회 지하의 가나혼인잔치 항아리 관람섭외 시도가 성사되지 않았다. 아쉽기는 했으나 교회 전경과 내부를 둘러보며 정서적으로 가나를 느끼는데 만족해야 했다. 이렇게 첫째 날 성서지리탐방을 마친 일행은 숙소에서 여장을 풀고 이스라엘에서의 첫 밤을 맞이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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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3/30 [15:50]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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