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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과 배춧국 157호
김진규 장로/공주대학교 명예교수
 
편집국   기사입력  2017/12/04 [15:47]
▲ 김진규 장로 ▲공주대 명예교수     ©편집국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아내는 김장을 못했다며 걱정을 합니다. 요즈음 김장을 하지 않고 몇 포기씩 사다 먹는 가정이 우리나라 전체 가정의 반도 넘는다는데, 우리 가정은 나부터가 김치를 너무 좋아하고 출가한 자녀들 가정들도 있고 해서 아내는 매 해 김장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돕는 사람도 없이 혼자 수고하는 아내를 돕기로 마음먹고 아내와 함께 시장에 가서 포기가 잘 든 배추 30여 포기와 커다란 무 대여섯 개를 사왔습니다. 그날 저녁으로 배추를 다듬는 일, 반쪽씩 쪼개어 쌓는 일, 갓, 미나리 쪽파 다듬는 일 --- 깊은 밤이 돼서야 배추를 소금에 절여서 하룻밤을 재우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에는 더 힘든 작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저 무거운 것이나 들어다 주고 단순작업 몇 가지를 돕는 정도였지만 팔, 다리, 허리 안 아픈 데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아내의 수고를 다시 느끼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김장에 들어가는 배추를 보며 참 느끼는 것이 많았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많은 과정을 거칠 수가 있나? 라는 의문도 있지만, 배추도 김치로 맛을 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희생이 필요하다는 평범한 생각을 새롭게 느끼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예부터 배추가 김장이 되기 위해서는 다섯 번을 죽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배추가 밭에서 뽑힐 때 한 번 죽고, 칼질로 뽑힌 배추를 반도막으로 내면서 두 번 죽고, 소금물에 절어서 세 번 죽고, 속속들이 양념을 넣어서 김칫독에 들어가며 네 번 죽고, 김칫독을 땅 속에 파묻을 때 다섯 번 죽는다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 민족만이 수백 년을 지나면서 배추와 함께 어울리며 터득한 맛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도 신비스러울 정도로 그윽한 맛을 내는 데는 무엇보다 배추의 희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내와 함께 김장에 들어갈 무를 다듬으며 텔레비전을 봅니다. 북한군인 한 사람이 그 엄청난 위험을 뚫고 판문점 JSA(공동경비구역)를 넘어온 충격적인 소식입니다. 총탄을 네 군데나 맞고도 극적으로 귀순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단순 탈북이 아니라 독재와 억압에서 자유를 향해 달린 목숨을 건 필사의 절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심한 총상으로 의식을 잃고 시체처럼 남쪽으로 실려 왔을 때, 국민들은 한 마음으로 그의 회생을 기도했을 것입니다. 너무도 감사하게 아주대병원 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 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북한 귀순 병사는 목숨을 구했고, 일반병실로 옮기게 되었다는 소식은 국민 모두를 기쁘게 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황당한 일은 사경의 환자를 살려낸 분들을 칭찬하지는 못할망정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시각으로 비판한 어느 국회의원의 발언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어둡게 했습니다. 북한 병사의 수술 경과를 설명한 브리핑 내용을 두고 ‘인격 테러’라고 낙인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귀순한 병사의 몸 안에서 수십 마리의 기생충이 나오고, 위장에서 옥수수 알갱이가 나왔다는 사실을 공개한 것은 북한군 추격자로부터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부정당한 귀순병이 또다시 인격의 테러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환자는 처음’이라며 의료진의 말을 그대로 보도한 신문들은 ‘귀순 병사에게 총격을 가한 북한 추격조와 똑같은 짓을 한 것’이라며, ‘우리가 북한보다 나은 것이 뭔가’라고 반문했다는 뉴스는 우리를 당황하다 못해 쓸쓸하게 합니다. 뒤늦게 사과는 했다지만, 왜 자유를 찾아 귀순한 병사의 용기를 칭찬하고 사경을 헤매는 환자를 헌신적인 노력으로 살려낸 분들을 격려할 수가 없을까?

우리 옛 동화 중에 ‘임금님과 배춧국’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임금님이 맛있는 배춧국을 잡숫고 너무도 맛있는 배춧국을 요리한 요리사를 상을 주려고 불렀답니다. “아니에요, 임금님 저는 상 받을 자격이 없어요. 이렇게 맛있는 배추를 재배한 농부에게 상을 주셔야 합니다.” 임금님은 농부에게 상을 주려고 불렀답니다. “정말로 저는 한 일이 없습니다. 따뜻한 햇빛과 때마다 비를 주신 하나님께서 키워주셨습니다.” 임금님은 궁궐의 요리사, 시골의 농부와 함께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시대에 이렇게 착한 요리사나 농부는 찾아보기 어려울까요? 더구나 이런 착한 백성들을 알아주는 임금님의 마음을 가진 위정자를 기대할 수는 없을까요? 김장을 하며 아내가 따로 만든 굴을 듬뿍 넣은 겉절이로 점심을 맛있게 먹으며 별 생각을 다합니다. 아마도 이번 겨울은 김치를 먹으며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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