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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하는 믿음 (누가복음 17:11~19) 157호
정민량 목사/대전성남교회
 
편집국   기사입력  2017/12/04 [15:46]
▲ 정민량 목사 ▲대전성남교회     ©편집국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엄마’, 둘째는 ‘아빠’, 셋째는 ‘감사’입니다. 이 땅에 많은 피조물들이 있지만 사람만이 감사할 줄 아는 피조물입니다. 감사는 스트레스와 질병을 치유하는 최고의 명약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니 바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천국이 임하지만, 불평하며 사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지옥이 생깁니다. 감사는 인생을 맛깔나게 만드는 조미료와 같습니다. 감사는 영적 생활의 소금입니다. 감사는 마음의 얼굴을 아름답게 화장하면서 마무리 하는 끝손질과 같습니다. 감사의 공은 던지면 반드시 자기에게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옵니다.
감사에는 세 가지 종류의 감사가 있습니다.
 
첫째, ‘그래서’ 감사입니다.
건강해서 감사하고, 성공해서 감사하고, 합격해서 감사하고, 치료돼서 감사하고, 복 받아서 감사합니다. 반드시 감사할 조건이 있습니다. 이러한 감사는 사실 초보적인 감사합니다.

둘째, ‘그래도’의 감사입니다.
병들어도 감사하고, 실패해도 감사하고, 불합격해도 감사하고, 안 되도 감사하고, 죽어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의 감사 보다는 차원 높은 감사입니다. 조건과 결과는 좋지 않아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셋째, ‘그러니’의 감사가 있습니다.
이 감사는 미래형의 감사입니다. 아직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반드시 성공할 것이니 감사합니다. 아직 병이 낫지는 않았지만 반드시 병이 나을 것을 믿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아직 합격은 되지 않았지만 합격될 것을 믿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감사가 바로 수준 높은 감사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감사를 하나님 앞에 드리고 있습니까? ‘그래서’의 감사 입니까? 아니면 ‘그래도’의 감사입니까? 아니면 오늘 우리들의 감사가 ‘그러니’의 감사입니까? 믿음의 감사는 바로 ‘그러니’의 감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실 때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지나 가셨습니다. 그 때 10명의 나병환자가 예수님이 오시는 소리를 듣고 멀리 서서 소리 높혀 불쌍히 여겨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당시 나병 환자는 건강한 사람들 가까이 와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백보 이상 떨어져야 합니다. 만약 그 안으로 가까이 오면 누구든지 돌로 쳐서 죽여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병 환자들이 예수님에게서 백미터쯤 떨어져서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르짖음에 예수님의 반응은 냉정 했습니다. 그들을 가까이 오도록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상처를 만져 주지도 않았고, 그들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도 해 준 것이 없습니다.

자신들의 병을 고처 달라고 부르짖는 그들을 향하여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나병이 깨끗이 나았으면 제사장에게 그의 몸을 보이고 허락을 받아야 건강한 사람들 속으로 들어 갈 수 있습니다. 10명의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의 소리를 듣고 병이 나은 것은 아니지만 그대로 순종하여 제사장이 있는 곳을 향해 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들이 제사장에게 가다가 병이 깨끗이 나은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그 열 사람 중에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만 다시 돌아와 하나님게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러한 사마리아 사람을 향하여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17:19) 나병을 고친 아홉명은 육적인 병의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만은 그의 영혼의 구원도 얻게 되었습니다. 육과 영이 온전히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그를 온전하게 구원한 믿음이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첫째, 하나님께 부르짖는 믿음 이었습니다(13절).
열 명의 나병환자는 예수님을 만나 멀리 서서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치며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 받는 믿음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둘째, 확신하는 믿음입니다(14절).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해 제사장에게 가라고 하니 아직 병은 나은 것이 아니지만 나을 것으로 확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조건 말씀대로 제사장에게로 간 것입니다. 가다가 병이 나은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확신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셋째, 찬양과 감사하는 믿음입니다(16절).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만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열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러시면서 사마리아 사람을 향해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온전한 구원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믿음은 바로 육과 영을 온전히 구원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그런 믿음을 원하고 계십니다. 육체의 병만 구원을 얻는 다면 온전한 구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영적인 문제가 중요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구원 받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 찬양하며 감사 영광을 돌리는 자들에게 이루어지는 구원입니다.

우리는 감사의 달을 어떻게 보내고 있습니까? 부르짖기만 하고 확신하는 믿음으로 육적인 구원만을 얻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정으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온전한 구원, 즉 육과 영이 구원 받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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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2/04 [15:46]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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