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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로교 112년의 역사를 품은 금산제일교회 양승백 목사
 
보도1국   기사입력  2017/11/03 [15:24]

▲ 본지 발행인과의 대담에서 금산제일교회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양승백 담임목사.     © 오종영(발행인)

금산읍 최초의 수세자였던 이경필이 설립한 금산읍교회는 전라북도 선교에 공을 세운 마로덕 선교사가 전주 동북부 지역 선교구역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하다 초대 당회장으로 파송됐다.

이어 위인사 선교사와 이경필 설립자, 이덕봉 전도사, 이상해 전도사 등이 담임하다 원용혁 목사가 초대 목사로 부임하게 된 교회로 현 양승백 목사는 12대 담임목사로 지난 1994년 3월 24일 부임한 후 올해로써 23년째 시무하고 있다. 금산제일교회라는 이름은 지난 1977년 1월 1일 교회명칭을 변경한 후 사용하고 있는 이름으로 지금은 금산을 대표하는 역사성과 리더십으로 무장한 예장통합교단 소속 교회로 양승백 목사는 지난 달 23일(월) 대전노회 노회장으로 취임한 바 있다. 이에 금산제일교회를 방문해 양 목사와 대담을 했다.
▣ 대담 및 사진 : 발행인 오종영 목사/ 정리 : 오세영 기자
 

▣ 금산제일교회는
금산제일교회는 원래 전북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전북 선교사들의 관리를 받아왔다. 교회가 처음에 설립되어진 동기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1904년 전후로 전주에 있는 선교사(헤리슨, 마로덕 선교사)가 장날 장터전도와 휴가철 전도 등을 통한 것이고, 다음으로 충청도가 가까웠기 때문에 공주에서 1902~1903년도에 교회가 들어왔는데, 그곳에서 열심히 믿던 김상문 전도사가 논산으로 파송을 받아서 논산의 논산제일감리교회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논산제일감리교회 전도팀이 금산까지 와서 전도를 하게 되었다. 이후 이경필이라는 당시 세무공무원을 하던 청년이 있었는데 집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교인이 늘어나자 세례를 받고 선교사들과 연결되면서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당시 7명이 학습을 받으면서 교회가 세워지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초대 담임목사는 원용혁 목사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완연한 농촌교회이기 때문에 눈에 띄게 부흥하지는 못했지만 서서히 교인들이 성숙해지고 조금씩 부흥해 가고 있었다.
 
▣ 1905년 3월 16일 마로덕 선교사 제1대 담임목사가 교회를 설립한 이후 112년이라는 역사를 담고 있는 유서 깊은 교회이다. 역사에 걸맞는 교회로서의 역할도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역사가 깊은 교회이고 금산지역에서 부임했을 때만 해도 가장 크게 부흥한 교회가 아니었다. 하지만 금산이라고 하면 금산제일교회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전반기에는 교회를 좀더 성숙하게 하고 교회문제를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이제는 금산지역 교회를 어떻게 도울 것인지,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기독교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꿀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에 우리교회는 외부적으로는 읍사무소를 통해서 경로당에 물품을 해마다 제공해왔고, 경찰서나 소방서 등을 찾아 그들의 필요를 공급해 주기도 했다.
 
최근에 우리교회가 가장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시행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다문화 지원사역이다. 금산에는 약 4-500가정의 다문화 가족들이 살고 있다. 그래서 해마다 이들을 위한 축제를 열고 있는데 약 4-500명의 다문화가족들이 행사장을 찾아 행복한 시간을 즐기고 있다. 이에 우리 금산제일교회는 이들에게 교회문턱을 낮추기 위해 교회에서 행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회관이나 체육관을 빌려 행사를 하고 있는데 인식이 아주 좋다.

금산제일교회가 다문화 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다문화인들이 병원에 가기가 힘들고 의사전달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그분들을 도와드리기 위해 부스를 세우고 노래자랑 등의 이벤트를 펼치며 식사를 제공해주면서 시작이 됐다. 그 날은 전반적으로 축제의 날로 진행되며 지난해에는 약 450여명이 참석할 정도로 관심도가 높다. 이 행사는 외부의 지원 없이 금산제일교회가 모든 것을 준비했고 지역 주민들의 행사만족도가 높다.

금산제일교회 양승백 담임목사는 교육에 남다른 관심도가 높다. 양 목사는 지난 1994년에 교회에 부임하고 난 후 교사교육에 남다른 집중을 해 왔다. 주일 오후에 2시간씩 3-4개월의 기간을 정해놓고 교사교육을 해왔는데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유는 “교사가 세워져야 아이들 교육이 된다”는 뚜렷한 교육철학 때문이다.

그래서 금산제일교회의 예산편성에 있어 교육과 관련된 예산은 항상 풍성하다. 지금도 약 6~70여명의 교사들이 교회교육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양 목사는 “아이들 교육에 필요하다고 하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우리교회가 위치한 곳이 작은 지역이기 때문에 여기서 자란 아이들은 대부분 청소년기나 대학생이 되면 도시로 떠나기 때문에 청년부가 많이 약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학금을 지원을 해왔습니다. 학생들에게도 매년 장학금을 지원하고 금산에 있는 학교들에도 장학금을 지원했습니다. 농촌교회를 다니다가 도시에 나갔을 때에도 그리워하는 교회, 돌아가고 싶은 교회로 만들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양 목사는 비록 도시로 나갔던 청년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장성한 후 생각나고 보고 싶은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추억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왔다. 그래서 금산제일교회는 지금도 주일 낮에는 교회 종탑에 있는 종을 친다. 그리고 그 옆에는 으름을 심어놔 그들이 어린 시절 종탑 밑에서 놀던 추억을 떠올리도록 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금산제일교회의 종탑은 이제 명소가 됐다.

또한 금산제일교회는 112년의 유서 깊은 역사를 담고 있는 교회이다. 이에 양 목사는 역사관을 세우기 위해서 사료를 수집 중에 있다. 그 수집이 어느 정도 이뤄지면 역사 사료실을 개관해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예정이다.

▲ 금산제일교회 전경     © 오종영(발행인)
 
▣ 금산제일교회는 대전노회에서 가장 유서 깊은 교회로 1947년 4월 이자익 목사가 동사목사로 재직 중 제33회 총회장에 피선되었던 교회로, 한국장로교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112년의 역사는 기장과의 분립, 합동교단과의 분립 시대를 경험하면서 현 예장통합 대전노회 소속 교회로 금산지역의 중심교회로 자리잡아왔다. 이에 금산제일교회는 한국교회의 역사를 써가는 교회로서의 남다른 책임도 갖고 있다.
금산제일교회가 소속된 대전노회의 어머니와 같은 교회는 대전제일교회이다. 물론 역사는 금산제일교회가 더 오래됐지만 금산제일교회는 본래 전북노회 소속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금산제일교회가 대전노회로 가입한 것은 1959년이다.

양 목사는 금산제일교회에 부임한 후 23년을 한결같이 목회해 왔다. 그러면서 늘 그가 늘 추구하는 소중한 가치는 ‘사람을 세우는 일’이라고 믿고 있다. 양 목사는 이렇게 전한다. “저는 늘 목회하면서 성도들이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사람이 세워지면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더 좋은 교회, 성숙한 교회로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교회는 제자훈련을 근간으로 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많이 할 때는 5팀씩 가르치고 있습니다”라면서 제자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교회의 리더가 되어 교사, 구역장, 항존직 등이 되어가면서 속도는 느리지만 조금씩 성장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농촌 교회였기 때문에 제자훈련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12명이 시작해서 3명이 졸업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제자훈련에 대해서 많은 고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자훈련을 하지 않으면 다른 분들이 오히려 제자훈련을 찾으시곤 했습니다. 이러한 힘으로 인해 오늘날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현재까지 제자훈련을 거치신 분이 약 250여명 정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 양승백 목사가 목회자로 부름 받은 계기와 그의 목회철학
본래 양 목사는 시골(전북 장수)에서 자랐기 때문에 부모님은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그 동네에는 교회도 없었고 천주교회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양 목사가 중학교 1학년 때 즈음 친구를 따라 교회를 두 번 정도 갔는데, 당시 선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설교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이후 미션스쿨에 들어가면서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 교정에서 부흥회를 했는데 그 때에 마음에 결심을 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 후 그는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이어갔다고 추억했다. 그냥 대충 한 것이 아니라 그가 대학교 1학년 때에는 성서 대백과와 주석 등을 사서 읽을 정도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다 군대에 가기 위해 시골에 가 있을 때에는 저녁마다 시골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했고, 그런 아들을 바라보시던 어머니가 신선한 충격을 받고 있던 터에 교회에서 부흥회를 할 때 어머니를 권해 교회에 모시고 가면서 어머니가 신앙생활을 하게 됐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마을의 수많은 사람을 전도할 정도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가 신학을 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양 목사는 당시 유학에 대한 꿈을 키운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는 군대에 갖다오지 않으면 유학을 갈 수 없었던 때인지라 독일에서 유학 초청장이 왔으나 갈 수 없었고, 이후 입대를 한 그는 연대군종으로 군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제대할 무렵에는 신학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양 목사는 말하기를 “누가 가라고 한 것도 아니고 강력하게 기도한 것도 아닌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훈련을 시켜주신 것 같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신학을 하게 되었습니다”라고 전했다.

양 목사의 목회철학은 ‘사람 세우는 일’,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을 세우는 것’이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이를 위해서 설교로는 할 수 없는 것이 교육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양 목사는 지금까지 제자교육 등을 통해서 교육목회를 지속해 오고 있다.
 
▲ 금산제일교회가 매년 개최하고 있는 다문화 축제행사     © 사진제공:금산제일교회

▣ 금산제일교회의 주력 사역과 교회의 비전
금산제일교회의 주력 사역은 앞서 소개했던 ‘다문화 축제’이다. 이외에도 사회봉사 사역으로 선교원을 어린이집으로 바꿔서 운영 중이며, 일찍이 사회복지사업을 실시해오고 있다. 97~98년도부터 시작해서 내년이면 20년을 맞이하는데, 심광제가노인복지센터를 운영해서 중간에 명칭을 바꿔 심광노인복지센터를 계속해서 운영해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다문화축제는 비 그리스도인을 위한 큰 행사로서 가장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추석에는 다문화 가족들을 위해 사랑의 송편을 만들어 나눔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송편 만들기에는 약 250가정에 500여 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실시하고 있다. 모든 예산은 교회에서 부담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시작한 다문화축제는 대전노회 세계선교회에서 다문화선교비를 지원하고 있고, 금산제일교회는 교회에서 추가적인 예산을 지원해서 다문화가족에게 고향방문 티켓도 전달하고 있다.
 
▣ 양 목사님은 금산제일교회에 부임하신지 올해로써 23년을 지났다. 지향하시는 교회론은? 그리고 금산제일교회의 자랑거리를 들 수 있다면?
“교회론이라고 할 것은 없어도 교회가 서로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고 양 목사는 말했다. 그리고 가만히 기다리고, 다른 사람이 잘 해주기를 바라는 교회가 아니고 찾아가서 섬기고 흩어져서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양 목사는 교회를 이러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해오고 있다. 금산제일교회는 제자훈련으로 교육되어 왔기 때문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성도들의 협력사역이 아주 훌륭하게 가동되고 있다.

또한 양 목사는 112년이라는 유서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 교회에서 목회를 해 오면서 목회자가 낮아지고 욕심을 버리고 섬기는 마음, 열린 마음으로 성도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다가가면 교인들도 서서히 마음을 열고 따라오고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금산제일교회 제자훈련의 주제는‘200%긍정, 100%순종’이다.
 
▣ 양 목사는 지난 2010년 10월 25일 대전노회 117회 정기노회에서 부노회장에 피선된 바 있고, 이번 제131회 정기노회에서 노회장으로 취임했다. 이제는 개 교회 목회를 넘어 노회산하 110여개의 교회를 섬기는 수장으로서의 리더십을 펼치게 됐다. 양 목사의 리더십은?
양 목사는 말하기를 “저는 성격적으로 그런지는 몰라도 권위주의적인 리더십은 없습니다. 여러 소리를 들어가면서 포용하고 수용하면서 가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그동안에 다 열심히 노회장님들이 해오셨지만 힘들어 한 부분들, 소외된 영역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을 조금 더 살피고 찾아가보려고 합니다. 노회장으로서 얼마나 큰일을 하겠냐마는 어그러진 부분이 있다면 바르게 이끌어가고자 합니다.”고 말했다.
 
▣ 인사 말씀
사람이 온전할 수는 없습니다. 저 자신도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사랑해주시고 여러 모습으로 섬겨주셔서 하나님의 은혜와 교인들의 사랑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매우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교회가 더 부흥하도록 더 열심히, 더 섬세하게 배려해가면서 목회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들은 모두가 선하고 좋으신 분들입니다. 뭐든지 긍정적으로 하려고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장로님들의 가정과 사업에 더 좋은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금산제일교회에 부임할 당시만 하더라도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한결같이 모두가 잘 된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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