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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 비판 152호
남 청 장로/전 배재대 대학원장, 오정교회 장로
 
편집국   기사입력  2017/09/18 [15:31]
▲ 남청 장로▲(전)배재대 교수/오정교회     ©편집국
서구 근대사회를 열어갔던 계몽주의자들에게는 역사의 흐름에 대한 낙관주의적인 생각이 깔려 있었다. 그들은 현재는 과거보다 좋고 미래는 현재보다 더 좋아질 것이라는 역사진화론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

그래서 근대인들은 과학의 발달이 인간과 세계의 비밀을 다 밝혀 줄 것이고, 이를 통해 인간은 지금까지 그들을 괴롭혀 온 온갖 질병과 가난과 재난으로부터 해방되어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보라빛 생각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미래에 대한 희망과 믿음은 1,2차 세계대전과 함께 현대로 넘어오면서 산산이 부서져버리고 현대인은 지금까지 인류가 겪지 못했던 더 복잡하고 치명적인 삶의 문제들 앞에서 공포와 절망과 좌절을 맛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현대인들의 절망과 좌절은 결국 모더니즘(modernism)을 거부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하였는데 그것이 곧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오늘날 철학이나 문학, 예술 등과 같은 특정 학문분야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문화현상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은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으나 쉽게 말한다면 ‘탈 획일, 탈 형식, 탈 권위, 탈 진리, 탈 절대...’라는 말들로 나타낼 수 있다. 지금까지 내려오던 모든 권위와 형식, 절대적인 진리와 가치 등을 모두 부인하고, 해체하고, 벗어나겠다는 것을 말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징조는 일찍이 19세기 말 니체에게서 나타난다.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는 신의 죽음을 외치면서 기존의 모든 가치를 허물어뜨리려 했다. 니체는 2천년 동안 이어져 온 서구의 모든 기독교적인 질서와 전통, 도덕과 윤리, 철학과 사상 등을 모두 파괴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고 했다.

그가 말한 초인(超人)이란 한 마디로 새로운 가치를 세우려는 창조자를 말한다. 새로운 것을 세우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을 부인하고 파괴해야 한다. 초인이 “신은 죽었다”라고 외쳤을 때 그 말은 종래의 기독교적이고 인습적인 모든 것을 거부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창조하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렇게 해서 과연 현대인들은 모더니즘을 거부하고 그 자리에 과거 인류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엄청난 새로운 것들을 창조했다. 그것은 21세기형의 새로운 바벨탑이었다. 정보화의 바벨탑, 하이테크놀로지의 바벨탑, 엔터테인먼트의 바벨탑, 세계화의 바벨탑, 글로벌금융의 바벨탑들을 쌓아 올렸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화려한 바벨탑 위에 건설된 오늘날의 세상 역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옛것을 버렸는데, 그리고 그 자리에 가공할 만한 사이버스페이스의 새로운 문명을 건설했는데 그 새로움 속에서 옛것에서 볼 수 있었던 본질적인 가치도, 아름다움도, 미덕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우주가 비어 있다고 말해 왔다. 그래서 이 우주에는 중심이 없다고 말한다. 절대적 진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따라야 할 도덕적·사회적 규범 같은 것도 없다. 우리를 통제하거나 구속할 어떤 외적인 권위도 질서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실로 ‘자율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외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은 자신의 존재를 귀속시킬 존재의 집을 잃어버리고 미아처럼 살아간다. 그래서 현대 복음주의 신학자 데이비드 웰스는 이러한 어두운 현대적 상황과 이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을 가리켜 ‘텅 빈 우주’와 ‘고갈된 자아’라는 말로 묘사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지향하는 가치와 목표가 무엇이며 현대인들이 불안 속에서 불행하게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올바로 아는 것이다.

과학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과학만능주의, 경제적 부의 축적이 곧 인간의 행복을 보장해 준다는 물신주의, 변화의 방향과 목적도 없이 무조건 변해야 한다는 변화제일주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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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9/18 [15:31]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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