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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선교모토는 교회를 개척한 후 현지사역에게 물려주고 떠나가는 것”
‘타이’민족을 가슴에 품고 선교사를 파송한 내동제일교회 김희동 목사
 
보도1국   기사입력  2017/06/09 [15:19]
▲ 본지 발행인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내동제일교회 김희동 담임목사.     ©오종영(발행인)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내동제일교회는 지난 달 28일(주일) 오후 3시 안일찬·장선옥 선교사 태국파송예배를 드렸다.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로는 이번이 세 번째이고, 내동제일교회 소속으로 김희동 목사의 딸이기도 한 김주혜 선교사를 싱가포르에 선교사로 파송해 싱가포르에 거주중인 태국의 노무자선교를 통해 태국선교의 거점마련을 위한 사역을 하고 있으니 네 번째 파송인 셈이다.

내동제일교회는 중대형교회가 아니다. 그런데 4명의 선교사를 파송했으니 김목사는 선교목회를 하는 셈이다.

김목사의 선교열정은 그가 대전중부교회(현 조상용 목사 시무)부목사로 재직했던 1998년, 당시 청년부를 담당하면서 매년 단기선교를 위해 싱가포르와 태국을 방문한 것이 기점이 됐으며,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김목사가 목회를 하기 전 KT에 17년간 근무하면서 공직생활을 했고 그 때 신우예배를 직접 인도하며 직장선교를 위해 사역하면서 선교에 대한 의식에 조금씩 젖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당시 출석했던 대전제일교회(현 김철민 목사 시무) 김만재 담임목사가 ‘너는 직장생활 할 사람이 아니라 목회를 해야 할 사명자’라는 얘기를 했는데 그 말이 늘 마음에 남아 금식기도 끝에 직장에 사표를 내고 신학교에 입학하여 목회자로서의 길을 준비하게 됐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그의 목회자로서의 사역은 처음 사역지로 전도사 때 현 내동제일교회 전도사로 시무하다 총신신대원 재학시절 경북 예천에 있는 하리제일교회에 담임목회자로 부임해 7년을 시무하면서 교회건축까지 마쳤는데 당시 대전중부교회 김주원 목사의 부름을 받고 기도 끝에 대전중부교회에 부임한 것이 1998년이다.

이후 그는 그곳에서 3년을 재직한 후 서구 가수원동에 ‘생명샘교회’를 개척했고, 개척 당시부터 태국선교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참여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김목사와 태국의 인연은 어느덧 19년이 된 셈이다. 이제는 타이족 선교가 그와 내동제일교회의 사명이 됐고, 태국은 그의 제2의 조국인양 그는 태국선교에 남다른 사명을 갖고 교회적인 역량을 태국선교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김 목사는 만나 그의 선교온도를 재보았다.          / 대담 및 사진 : 발행인 오종영 목사/ 정리 오세영 기자


▣ 김희동 목사는
김희동 목사는 충북 옥천 군서면 출신으로 1대 신앙이다. 그가 어렸을 때 당시 마을에 순회전도자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천지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처음 복음을 받아들였다. 이후 외국인 선교사가 마을에 전도를 왔었는데 그 때 “왜? 저 사람은 이 한국 땅에 와서 돌팔매질을 당하면서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당시 학교 옆에 군용천막으로 지어진 교회에 다니면서 중학교 시절까지 옥천에서 생활하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당시 그의 형님이 대전에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대전에 와서 충남기계공고에 입학하여 공부를 했다.

졸업과 함께 KT입사시험에 합격하여 17년을 근무하면서 현 한밭대학(당시 개방대학)에서 주경야독으로 대학공부를 한 후 한참이 지나서 총신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대전신학교에 편입하여 공부한 후 총신대학원을 거쳐 목회자가 됐으며, 목회를 하면서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과정을 거치는 등 지.정.의를 갖춘 목회자로서 준비돼 갔다.

그동안 그는 내동제일교회와 하리제일교회, 대전중부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훈련을 받았고, 생명샘교회를 개척해 12년 동안 담임목회자로서의 준비를 갖추게 됐으며, 이후 2012년 1월 그가 전도사 때 시무했던 내동제일교회의 2대 담임목사로 교회합병을 통해 부임하게 된다.


▣ 김희동 목사 신학을 하다.
김목사는 직장생활을 잘 하던 중에 그의 근무처가 KT에서 시작해 공사로 전환되는 시기를 맞게 되고, 세상적으로 볼 때 생활도 넉넉했고 고등학교에서 전기를 전공하고 대학에서는 전산을 전공하다보니 1급 면허만 3가지를 갖춘, 소위 잘나갈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목사는 눈이 안보여서 충대병원을 찾아갔는데 그곳에서 녹내장과 백내장이 있어서 “실명할지도 모르니 수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소리를 듣고 김목사는 일주일을 입원하게 됐는데 그 때 병상에서 문득 김만재 목사가 “너는 목회를 해야 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하고 생각했고, 당시 6개월만 버티면 연금을 받을 수 있었으나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금식을 하고 신학교에 가겠다고 결단을 하고 바로 사표를 낸 뒤 본격적으로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사실 저는 평신도로서 장로가 되어 신앙생활을 하겠노라고 다짐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다른데 있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 경북예천 하리제일교회로, 그리고 다시 대전중부교회로…
이렇게 신학을 하면서 그는 내동제일교회에서 전도사생활을 했고, 그러던 중 그가 총회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일 때 경북 예천에 소재한 하리제일교회의 청빙을 받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단독목회를 시작했다. 그러기를 7년 이제는 예배당도 건축했고, 장년성도 약 80여명에, 중·고등부도 약 7-80명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했으나 더 이상의 성장이 이뤄지지 않는 정체기를 맞이하면서 영적으로 답답함을 느끼던 차에 대전중부교회 김주원 목사가 교회 선임목사 자리를 제의하자 그의 사명이 여기까지라고 생각한 후 하리제일교회 장로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친 후 사역지를 이동하게 되어 대전중부교회로 부임하게 된다.

그런데 당시 중부교회는 선교와 관련된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는 하리제일교회에 시무할 때에도 선교를 위해 항상 헌금을 해 왔는데, 그러던 와중에 이야기를 듣고 중부교회에 오게 된 것이다

그는 중부교회에서 선교현장을 비로소 경험하게 된다. 물론 그가 직장선교를 경험한 적이 있으나 해외선교지 경험은 대전중부교회에서 시작됐다. 그는 대전중부교회에서 청년을 담당하면서 전체 행정총괄과 전도를 담당하면서 대전중부교회가 개척한 해외 선교지를 직접 방문할 기회를 얻게 됐고, 그곳에서 3년을 시무하면서 청년선교사 두 가정을 태국에 파송하게 됐다. 대전중부교회는 당시 청년부예배에 약 150여명이 참석했는데 청년부는 예산을 자체적으로 사용하도록 돼 있었다. 년 예산이 상당해 당시 선교사 두 가정을 파송했고, 단기선교 팀도 70여명이 비전트립을 하는 등 중장기선교사 헌신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이끌어 가셨다.

▲ 내동제일교회 전경     © 오종영(발행인)


▣ 생명샘교회의 태동과 타이족속을 마음에 품은 김희동 목사
이렇게 대전중부교회에서의 3년의 시간은 김 목사에게 선교를 향한 비전을 확실하게 심어줬고 부임 3년이 지난 2001년도 5월 12일에 대전중부교회 부목사를 사임하고 가수원동 아파트 단지에 소재한 상가에서 개척목회를 시작했는데 바로 ‘생명샘교회’의 태동이 된 것이다. 김목사는 “당시 많은 주변의 사람들이 ‘가수원동은 개척의 무덤’이라면서 만류하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시작한 일이라 곧은 마음으로 3-4가정과 함께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개척당시부터 태국선교에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당시 ‘CPWMA(교회개척선교회)’라는 단체에서 활동을 했었는데 당시 회장이 김주원 목사님이셨고, 그 때 김 목사님이 ‘이제는 태국 선교 안하겠다’고 공언하셔서 저는 ‘하나님 그 선교의 소명을 제게 주세요’라고 기도하면서 태국을 품고 기도를 시작했고, 그 결과 개척 2년 만에 태국에 교회의 박하영이라고 하는 한 자매를 단독선교사로 파송하게 됐습니다”라고 전했다.

태국선교는 순조로웠다. 박하영 선교사가 태국에서 교회를 개척한 지 3년 만에 기틀을 잡고 현지인 사역자 부부를 훈련시켜 교회를 담임케 한 것이다. 지금은 그 교회가 건축까지 완공되었는데 약 8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교회가 ‘짜이마이교회’로 쑤리아 목사가 담임하고 있으며 내동제일교회는 현재도 쑤리아 목사의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다.


▣ 박정선 선교사 파송-그치지 않는 내동제일교회의 선교열정
내동제일교회는 불교의 나라 태국을 복음으로 열기 위해 태국을 제2조국으로 규정하고 성도들과 함께 태국을 품고 기도하고 있으며, 김 목사 또한 태국선교회의 활동을 통해 태국선교의 효과적인 사역과 지속가능한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던 차에 박하영 선교사의 성공적인 사역에 고무된 내동제일교회와 김 목사는 지난 2014년에 박정선 선교사를 태국에 파송했다. 박선교사는 태국의 ‘싸깨오’라는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현지에서 교회를 개척해 2년차 사역하고 있다.

내동제일교회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현재 싱가포르에는 약 3만의 태국노무자들이 생활하고 있는데 그 3만의 노무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김 목사의 하나밖에 없는 딸을 지난 2016년에 선교사로 파송했다. 김주혜 선교사이다.

김 선교사는 현재 싱가포르에 거주하면서 태국 노무자들을 대상으로 전도사역을 펼치면서 그들이 싱가폴 체류기간이 끝나서 귀국하게 되면 그 사람들을 구심점으로 해서 그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전략을 내동제일교회는 갖고 있기 때문이다. 김선교사는 태국인 노무자 선교사역 외에도 싱가포르 현지교회에서 음악선교와 함께 외국인 예배 파트(태국인)에서도 섬기고 있다.

내동제일교회와 김목사는 태국에 파송하는 선교사들 대부분을 청년 시절부터 평신도 교육 훈련을 시킨다. 박정선 선교사 같은 경우에는 9년 동안 훈련을 했다. 주로 기본기 훈련을 시킨다. 처음 시작하는 것은 바이블 스터디로 ‘크로스 웨이’를 통해 기초 공부를 1년 동안 시킨 후 이후 1:1 훈련을 하고 제자훈련, 사역훈련을 2년 코스로 지속하며 마지막을 전도훈련으로 마무리한다.

김목사는 말하기를 “제자훈련 안에 선교에 대한 비전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제자훈련을 통해 기본기 훈련을 시키면서 최종적으로 GMS나 LMTC등의 훈련을 받게 합니다. 훈련 받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있으며 현재도 자라나는 중입니다”고 했다.


▣ 선교사 지원 이렇게 한다.
내동제일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들의 사역을 위한 사역후원은 주로 개인후원 보다는 교회에서 한다. 보통 선교사역비 총액의 60%를 교회에서 담당하고 나머지 40%는 선교사가 개인적으로 하는데, 이 때 선교사가 모집한 사람들(후원자)도 선교사들의 개인계좌가 아닌 내동제일교회계좌로 보내면 이를 관리해서 내동제일교회가 일괄적으로 보내는 방식이다.

김목사는 “선교사가 개인적으로 계좌를 관리하면 교회의 선교 패턴과 어긋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내동제일교회는 전교인들이 선교에 참여함으로 선교회를 운용하고 있다. 그래서 교인수는 많지 않지만 전 교인이 선교헌금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사역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내동제일교회는 선교뿐만 아니라 노회를 비롯한 다양한 기관들을 섬기고 있다. 소요되는 예산이 만만치 않고, 어떤 때는 마이너스가 나기도 하지만 즐거움으로 하고 있으며 결국은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고 김목사는 고백했다.
 
▲ 지난 달 28일(주일) 선교사 태국 파송예배를 마친 뒤 안일찬, 장선옥 선교사 가족과 내동제일교회 김희동 목사(뒷줄 중앙)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종영(발행인)

▣ 파송선교사가 안정권에 들어가면 또 파송하겠다.
내동제일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는 가족선교사가 2팀, 독신선교사 1명 등 3팀의 선교사가 태국의 복음화를 위해 사역하고 있다. 이들을 케어하고 후원하는 일이 결코 녹록치만은 않다. 그러나 김목사는 현재 파송한 선교사들이 안정권에 들어서면 계속해서 파송할 계획을 갖고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동제일교회는 ‘한 종족 입양’이라는 선교 정책 정책을 모토로 갖고 있다. 김목사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태국선교에 대한 비전을 주셔서 한 민족인 타이족을 중심으로 선교를 하게 하셨고, 그 때부터 제 가슴에는 태국이라는 민족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돌이켜 보면 김목사가 태국 선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였다. 김목사가 어느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태국 말을 따라하면서 초성과 억양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저런 곳에서는 어려움이 많겠구나” 하며 관심을 갖다가 대전중부교회에서 3년 동안 청년들과 함께 하면서 확실하게 선 것 같다고 말했다.


▣ 태국선교회의 파이팅은 CPWM(교회설립세계선교회)에서 찾는다.
김목사는 오래전부터 CPWM(교회설립세계선교회)에서 동역자들과 함께 선교의 비전을 나누고 협력선교를 이어가고 있다. CPWM는 태국어로는 ‘싼띠팝’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우리말로 ‘평화’(샬롬)라는 뜻으로 ‘싼띠팝’이 태국에서는 정식기관으로 등록이 되어 있고 4명의 목사가 소속되어 있는 단체로 한국교회는 박재신 목사(전주양정교회)가 대표를 맡고 있고 김희동 목사가 총무로 섬기고 있다.

‘싼띠팝’은 한국에서 약 15개교회의 목회자가 회원으로 소속되어 있어 있고 정기적인 모임과 선교대회, 선교사 파송 등의 다양한 사역을 펼치고 있다.

김목사는 말하기를 “태국에 77개도에 6700만 국민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태국에 들어간 지가 우리나라보다 100년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세워졌지만 허물어져 버렸습니다. 그런 상황이기에 우리의 목표는 ‘교회가 없는 곳에 교회를 세우자’라는 취지 아래 교회개척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교회개척선교회에서 총무로 계속 일을 하고 있는데, 지난 1998년부터 지속적으로 섬겨오고 있습니다. 1998년은 제가 중부교회에서 섬기 때, 당시 태국에 김정배 선교사가 파송되면서부터 ‘싼띠팝’이 출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싼띠팝’이 하는 일은 선교사 파송과 단기 선교사를 이끄는 일뿐 아니라 파송된 선교사들의 훈련과 수련회 등도 담당하고 있으며 회원교회들이 연합해서 중고등부와 청년부를 대상으로 격년제로 선교 수련회도 진행하고 있다. 선교 수련회의 목적은 선교에 대한 비전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 선교는 왜?
선교를 왜 해야 하는가? 김목사는 “선교는 주님의 명령이고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사명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선교는 단기 효과를 노리는 것이 아니고 멀리 봐야 합니다. 실적 위주가 아니고 나가서 사역하는 것을 중심으로 지켜보고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없는 사랑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짜이마이교회를 보면서 한 교회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9년 정도가 소요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교 모토는 우리 선교사가 교회를 개척하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서 교역자를 양성해서 교회를 넘겨주고 떠나는 것입니다. 현지인 교역자를 훈련시키고 현지인을 전도하여 세우고 어느 정도 시점이 되면 선교사는 떠나가며 현지 교역자에 대한 지원은 계속해서 진행합니다. 그래서 선교 헌금에 관해서는 모두 성도님들께 맡기고 단 1원도 허투루 쓴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가급적 외부활동은 지양하면서 선교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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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09 [15:19]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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