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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김대중 목사/영화평론가,대전대성고 교목
 
보도1국   기사입력  2017/04/14 [15:02]
▲ 김대중 목사/영화평론가,대전대성고 교목     ©편집국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의 점도 아닙니다. 나는 묵묵히 책임을 다하며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나는 굽실대지 않고 이웃이 어려우면 기꺼이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나의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영국의 켄 로치 감독이 연출한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에 나오는 대사이다. 이 영화는 지난해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평생을 목수로 지낸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이 안 좋은데도 번번이 실직 수당 신청에서 제외된다. 전문의의 소견을 첨부했음에도 담당 공무원의 전화 상담에 의해 불가 판정을 받는다. 재심 신청은 인터넷으로만 가능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담당 공무원을 만나기 위해 관청을 방문해야 한다. 이른바 컴맹에 가까운 다니엘은 마우스를 작동하는 법조차 익숙하지 않아 결국 관청을 방문하지만 담당 공무원은 재심 신청은 인터넷으로만 가능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전후 사정을 말하려 하지만 잘 들어주지 않고, 그는 행정의 높은 벽만 경험하고 만다.

재심 신청을 위해 방문한 관청에서 다니엘은, 다른 지역에 살다가 이사해서 저소득층 지원 신청을 하려 하지만 약속 시간에 조금 늦었다는 이유로 불가 판정을 받은 여성과 그녀의 두 아이를 만난다. 아이들을 돌보며 방송통신대학에라도 진학하려는 꿈을 지닌 케이티에 대해 연민과 동정을 지니게 된 다니엘은 그녀의 집을 찾아 이것저것 고쳐 주고, 아이들의 친구가 된다. 극도의 빈곤 속에 꿈도 자존감도 잃어가는 케이티에 대해 유사 아버지 혹은 든든한 이웃이 되어 주는 다니엘은, 그러나 재심 신청이 받아들여지려는 순간 심장 마비로 죽는다.

누가복음 10장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나온다. 거기서 율법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께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고 질문한다. 이에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신 뒤 이렇게 물으신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율법교사는 자신의 지식적 의로움을 자랑하기 위해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고 물었는데 예수님은 강도 만난 자 편에 서서 이웃이 누구인가를 물으셨다. 율법교사는 “자비를 베푼 자”라고 답했고, 예수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만의 입장이 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공무원도, 심사관도, 대형 마트의 직원도 다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누구인가에 있다. 그리고 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한 편의 영화는 판에 박힌 현실의 쳇바퀴를 초월한 꿈과 환상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때로는 생각 없이 익숙하게 살아가는 현실의 구조적 모순을 재발견, 재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 200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켄 로치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은 걸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우리로 하여금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또한 시대적, 사회적 변화 속에서 뒷전으로 밀려 버린 많은 우리들의 이웃을 향해 자비를 베풀어야 함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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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4/14 [15:02]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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