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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일 목사(사랑교회) 136호
개혁의 미미한 시작
 
편집국   기사입력  2017/02/03 [17:36]
▲ 진수일 목사/사랑교회     ©편집국
기독교회 역사에 가장 위대한 사건은 16세기에 일어난 교회개혁이다. 올 해는 교회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이다. 이는 중세 로마교회의 교리적 타락과 윤리적 부패를 정면으로 지적한 것이었고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권위를 회복하고자 했던 갈망이었다. 마틴 루터, 존 칼빈, 훌드리히 쯔빙글리, 필립 멜랑히톤, 마틴 부처, 그리고 하인리히 불링거와 그 외의 많은 개혁자들을 오늘날 기억하는 것은 개혁교회를 이루는 데 크게 공헌한 건만이 아니다.
 
17세기 청교도 운동과 18세기 조지 휫필드, 존 웨슬리, 조나단 에드워드가 중심이 된 영적대각성운동, 그리고 19, 20세기의 복음주의 운동에 영향을 주었으며 오늘날까지 도전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2017년은 한국교회뿐 아니라 개혁교회가 지속적으로 개혁해야 하는 절호의 기회이다. 중세 가톨릭교회가 범했던 타락의 길로 전락하느냐 아니면 제2의 교회개혁, 더 나아가 하나님나라를 회복하느냐라는 문제에 서 있다. 한국의 교회는 7, 80년대를 지나오면서 실로 엄청난 성장을 했다. 지금까지 교회사에 유래가 없는 놀라운 성장과 수많은 사역을 감당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한국교회의 성장은 멈추었다. 위기의 의식을 갖고 대처한다지만 성장의 동력을 잃고 지금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음이 분명하다. 어떻게 이 문제의 원인을 찾을 것인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키는 의외에 쉬울 수 있다. 교회개혁자들이 그랬듯이 ‘기본으로 돌아가라’(ad fontes)는 교훈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개혁은 특별한 것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회복하는 것이다.”라는 어느 개혁자의 말을 명심해야 한다. 교회개혁자 루터는 “수도원 안에서 자신의 몸만 돌보는 것보다 아이의 기저귀를 빠는 것이 더 거룩한 일이다.”했다. 개혁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사소한 일들을 회복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오늘날 회복되어야 할 미미한 개혁의 내용을 나누려한다. 첫째로, 성경에 대한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16세기 교회개혁자들은 오직 성경만으로(sola scriptura)를 강조했던 것에 비추어보면 지금의 한국교회는 어떠한가. 성경의 권위를 세우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고 개혁교회를 회복하는 키이다. 독일의 토마스 아 켐피스는 “세상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곳은 책이 있는 구석진 방이었다.”고 했다. 환경이 어떠하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는 곳이라면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었다는 고백일 것이다.
 
둘째로, 공동체 회복의 문제이다. 중세 가톨릭교회의 부패로 인해 공동체는 사나운 괴물이 되어 다스렸다. 개혁교회는 권력을 휘두르는 괴물 공동체를 치우고 개교회 중심의 교회로 세웠지만 지나친 개교회 이기주의로 치우친 것이 현실이다. 개교회의 활력과 함께 공동체, 그리고 지체의식의 회복은 개혁된 교회가 지속적으로 개혁해 가는 건강한 교회의 표징이다.
 
셋째로, 교회의 본질회복 문제이다. 마틴 로이드존즈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특징 중 하나로, 그리스도안에서 구원을 확신하면서도 동시에 두렵고 떨림으로 그리스도에게 나아가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빌2:12)”라고 했다. 건강한 개혁교회는 개혁의 정체성을 회복할 뿐 아니라 참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거룩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본다. 건전한 생각과 거룩한 고민이 없는 그리스도인으로는 개혁교회를 지속적으로 개혁해 갈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윤리의식의 회복이다.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정직하고 책임의식이 있다는 평을 받아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당신은 우리를 당신께 향하도록 창조하셨나이다.”라고 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향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삶이 윤리의식과 책임감이다. “하나님 앞에서”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즉 하나님께 향하는 이들이 세상에서 윤리적 삶을 살지 않는 것은 죄이다.
 
교회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21세기는 교회개혁의 시대적 상황과는 분명 다르다. 세상은 더 복잡해졌고 다양해졌다. 급변하는 세상을 적응하고 좇아가기도 벅차다. 500년 전의 개혁자들은 이 시대를 상상조차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개혁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 설명만 했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키자.”라고 했다. 그의 가르침으로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버리고 그를 믿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의 확신과 같이 여전히 변화되지 않았다.
 
“세상의 문제는 사실 개인적인 문제에서 온다.”라고 한 폴 투르니에의 말이 옳다. 개혁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주된 목표가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죄인의 문제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개혁은 시작된다. 미미한 것이 가장 비범한 개혁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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