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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열수 목사(방주기도원 원장) 133호
한국교회의 풍성한 유산: 영계(靈溪) 길선주 목사(1)
 
편집국   기사입력  2016/12/16 [15:53]
▲ 임열수 목사 / 전, 건신대학원대학교 총장, 방주기도원 원장     ©편집국
한국 교회는 선교 130년을 맞이하면서 많은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다. 한국 교회는 교회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놀라운 성장을 이루어 세계 교회를 놀라게 했다. 전 세계에 10만 명이 넘게 출석하는 교회 10개 가운데 한국에 6개가 있다는 통계를 해외 학자가 발표하기도 했다. 30,000여명에 육박하는 선교사를 해외에 파송하여 선교대국이라는 호칭도 받고 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사랑하시고 축복하신 은혜이다.
 
나무도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뿌리가 깊이 박히고 건강해야만 한다. 현재와 같은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 신앙선배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 왔는가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때가 되었다. 최근 몇 년간 한국 교회는 교회성장이 더디어지고 있고, 청년층, 학생층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에 처한 한국 교회는 신앙선배들의 믿음을 통해서 무엇을 회개하고 무엇을 회복해야만 하는가를 배워야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필자는 앞으로 몇 회에 걸쳐 한국 교회를 위해 온전히 헌신한 믿음의 선배들의 발자취를 찾아보려고 한다. 첫 번째로 영계(靈溪) 길선주 목사에 대해 살펴보자.
 
길선주 목사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가운데 한 분, 1907년에 일어난 평양 대부흥운동의 주역, 그리고 한국 교회의 토착화 신앙형태인 새벽기도운동을 일으키신 목사님이다. 길선주 목사는 고종 6년인 1869년 3월 15일 평남 안주성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한학(漢學)을 공부했고, 도교에 심취하기도 했다. 또한 틈틈이 한약(韓藥)도 공부하여 평양시내에 한약국(韓藥局)을 개설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 특히 평양의 사회상황은 혼란의 극에 달하고 있었다. 1894년에 동학란으로 나라가 시끄러웠는데, 뒤이어 갑오경쟁이 일어났고 이로 인하여 야기된 청일전쟁은 조선 사회를 혼란 속에 몰아넣었다. 전쟁과 조선에 상륙한 일본 콜레라는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
 
1896년 난리가 평정되자 길선주는 평양으로 이주하여 한약방을 개설하여 돈도 많이 벌었다. 길선주의 친구였던 김종섭이 선교사를 통하여 기독교에 입문하게 되었고, 김종섭은 친한 친구였던 길선주에게 기독교에 입문하도록 권면하면서 『그리스도신문』을 비롯하여 『이선생젼』, 『장원양우상론』, 『턴로력뎡』등을 주면서 읽게 했다.
 
길선주는 이들을 읽으면서 점차 그의 마음이 열리게 되어 마침내 지금까지 자기가 믿어 온 선도에 대한 불신과 새로 전해들은 기독교 교리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특히 이중에서 그는 특히 『턴로력뎡』 (천로역정, The Pilgrim’s Progress)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천로역정은 17세기 존 번연(John Bunyan)이 쓴 책으로 성서 다음으로 널리 읽힌 신앙서적으로 신앙의 완전한 단계에 이르는 과정이 드라마로 전개되는 기독교 고전이다. 특히 게일(J. S. Gale)선교사가 번역하여 동양적 상황으로 윤색되어 있었으므로 초기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읽었던 책 중의 하나였다.
 
기독교에 대한 서적들을 읽으면서 길선주는 혼돈에 빠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았는데 만경창파 위에 층암절벽이 있고 이편에 줄이 하나, 저편에 다른 줄이 하나 드리워 있었다. 자신은 이편 줄을 잡고 절벽을 오르는데 자세히 보니 썩은 줄이었다. 저편 줄을 잡으려 하나 그것도 튼튼한 줄인지 알 수 없었다. 이런 고민을 하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그 환상은 그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가 잡아 왔던 줄, 그것은 선도(仙道)였다. 건너편 새 줄 그것은 기독교임이 분명한데 튼튼한지 여부가 불투명했다. 갈등이었다. 고민에 잠기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어느 날 김종섭과 함께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중에 “길선주야, 길선주야, 길선주야”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시여, 제 죄를 사하여 주시고 저를 살려주옵소서.”라고 기도하게 되었다. 길선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중생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그의 나에 스물여덟 살인 1896년 가을이었다.
(본 칼럼은 다음호부터 특별 기고 형식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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