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ㅣ칼럼 > 금주의말씀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내 백성을 위로하라 (고후 1:1-11) 130호
강판중 목사/갈마교회
 
편집국   기사입력  2016/11/04 [15:25]
▲ 강판중 목사/갈마교회     © 편집국
영국의 소설가 이자 기독교의 유명 작가인 C.S. 루이스가 쓴 “헤아려 본 슬픔”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아주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읜 경험이 있는 C.S. 루이스는 어머니와 아버지에 이어 노년에 결혼한 아내마저 암으로 사별하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상상조차하기 어려운 고통 중에 그가 느낀 하나님에 대한 회의, 아내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다시 경험하게 되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깊은 묵상 속에서 그려낸 일기가 바로 “헤아려 본 슬픔”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그가 경험한 슬픔의 깊이를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슬픔은 게으른 것이라고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았다. 일상이 기계적으로 굴러가는 직장에서의 일을 제외하면 나는 최소한의 애쓰는 일도 하기 싫다. 글쓰기는 고사하고 편지 한 장 읽는 것조차 버겁다. 수염 깎는 일조차 하기 싫다.”, “내게 종교적 진리에 대해 말해 주면 기쁘게 경청하겠다. 종교적 의미에 대해 말해 주면 순종하여 듣겠다. 그러나 종교적 위안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 ‘당신은 모른다’고 나는 의심할 것이다.” C.S. 루이스의 말처럼 깊은 아픔과 슬픔을 당한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은 고린도교회를 위로하는 사도바울의 편지입니다. 바울은 여기에서 하나님을 위로의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고난당하는 고린도교회를 어떻게 바울이 위로하였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Ⅰ. 고난은 무엇입니까?
1. 당하는 것입니다.
8절에 바울은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고난은 당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준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고난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유 없이 고난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억울하게 당하기도 합니다. 고난은 내가 부족하서, 내가 미련하고 모자라서,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나의 상태와 상관없이 외부로부터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고함 없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밀려오는 것이 고난입니다. 그래서 고난은 당하는 것입니다.
 
2. 힘에 겹도록 어려운 것입니다.
8절에 바울이 당한 고난은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이었습니다. ‘힘에 겹도록’이란 ‘후페르 뒤나민’인데 ‘능력을 벗어나는’이란 뜻이며, ‘심한’은 “칼 휘페르볼렌‘인데 ‘초과하는’, ‘능가하는’이란 의미입니다. 즉 사도바울이 당한 고난은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 말로 하지 못할 정도의 극심한 어려움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는 말입니다. 바울에게 가해지는 고난의 무게가 그 자신의 힘으로는 견디어 내기 어렵고 혹심한 것이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도 삶에 고난을 당할 때면 이와 같이 짓눌러서 우리의 힘으로 견디기 어렵고, 고난의 중압감에 눌려 견디기 힘든 버거움을 느낍니다.
 
3. 살 소망이 끊어지는 것 같은 절망감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고난 가운데서 “살 소망이 끊어지고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끊어지고’ 라는 말은 ‘엑사포레데나이’인데 ‘압박을 받는 환경에서 탈출구가 완전히 봉쇄되어 있음’, ‘급작스런 고뇌로 모든 소망이 상실케 되며 마침내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게 하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RSV에서는 이 말을 너무 무거운 짐을 져서 그 밑에 깔린 짐승처럼 ‘너무도 심하게 무거워서 깔린(utterly,unbearably rushed)’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고난이 이토록 무겁고, 힘에 버거운 것이어서 사도바울은 “살 소망이 끊어지고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살 소망이 끊어졌다”는 것은 자살충동을 느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만큼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난도 이와 같이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 해결의 실마리가 없는 것 같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Ⅱ. 고난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요?
1. 함께 아파함으로 위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고후 1:6)
 
바울은 6절에서 고난을 당해 아파하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도 겪었던 그들과 같이 아픔을 이야기함으로 위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아픔과 고난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수없이 많은 고난과 고통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증거하다가 루스드라에서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거의 죽을 지경까지 갔었고(행14:19), 빌립보에서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착고에 채이기도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1장에서는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23-29) 특별히 오늘 본문의 배경인 에베소에서는 은장색 드메드리오를 위시한 은장색들의 소동으로 곤경에 처하였을 때는 얼마나 힘겹고 어려웠는지 살 소망이 끊어질 정도였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아픔들을 당하였기에, 고린도교회의 아픔을 듣고는 중심으로 함께 아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의 위로는 가식이 아닙니다. 겉치레가 아닙니다. 말만이 아닌 진심어린 위로 이었습니다. 바울은 마음의 중심으로 같이 아파하고, 같이 힘들어한 것입니다. 진심은 통합니다. 내가 정말 사랑하고, 내가 진심으로 같이 아파하는 것은 상대방이 압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심으로 아픈 자들과 함께 아파해주세요. 진심으로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주세요. 진심으로 힘들어 하는 자들과 함께 힘들어 하세요. 같이 슬퍼하세요. 그러면 그들에게 힘이 됩니다.
 
2.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에게는 사람의 위로가 다가 아닙니다. 그 이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고난 중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장 5절에 ‘그리스도의 고난’이란 ‘예수님께서 직접 당하신 고난’인데, ‘그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쳤다’고 하는 것은, ‘우리 믿음의 성도들도 이와 같은 고난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하였습니다. 고난이 넘친 것 같이 위로가 넘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고난 중에라도 하나님만 바라보면, 우리가 당하는 고난보다도 더 큰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만 바라보면 하나님만 의지하면 어떤 고난도 넉넉히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9절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의지할 조건들이 너무나도 많이 갖춰졌기 때문에 은연중에 자기를 의지하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되는 죽음의 위협은 바울로 하여금 자기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통감하게 하였고, 하나님만이 진정한 구원자이며 위로자가 되심을 인식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환란과 고통이 있습니까? 주님만 바라보세요. 하나님만 의지하세요.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3. 주님만 바라보면 우리를 건져 주십니다.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고후 1:10) 어려움 속에서 주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우리가 당한 고난 속에서 건져 주십니다. 바울이 고난 중에서도 주님만 바라보자 하나님께서는 권능의 손으로 그를 죽음의 고난 중에서도 건져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 이십니다. 고난 중에라도, 슬픔과 좌절 중에라도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주님만 바라보세요. 주님께서 위로해 주시고 건져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람이 감당할 시험 외에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혹 고난 중에라도 함께하셔서 건져주시고 감당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고난과 어려움 중에서도 우리를 건져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주님을 믿고, 그 은혜를 체험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저작권자 기독타임즈 ⓒ무단전재 공유언론사, 협력교회 및 기관 외 재배포 금지
대전충청지역 대표 기독교주간신문사 기독타임즈(kdtimes@hanmail.net)
운영이사장=정민량 목사ㅣ 발행인=오종영 목사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6/11/04 [15:25]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 도배방지 이미지

가장 많이 읽은 기사
봉쇄수도원에 입소하는 갈보리교회 강문호 목사 / 오종영
주님의 지상명령과 약속 (마태복음 28:16-20) 179호 / 오종영
십자가의 도 (고린도전서 1:18) 255호 / 편집부
특별기고)영지주의란 무엇인가(3) / 오종영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 그는 누구인가?④ / 편집국
구원파는 왜 이단인가? ⑤ / 편집부
구약의 선지자들 / 편집부
반석 위에 지은 집!(마태복음 7:21-27) 176호 / 오종영
3월 31일(부활주일) 오후3시 둔산제일교회에서 만납시다. / 오종영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정체성 (갈 2:20) 90호 /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