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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개혁자 루터와 두가지 개혁운동②
이효상 목사/미래목회포럼 사무총장
 
보도1국   기사입력  2016/11/04 [14:58]
▲ 이효상 목사(미래목회포럼 사무총장)     ©편집국
3. 개혁자들의 두가지 개혁운동
종교개혁(Reformation)은 '교회다움'이라는 개혁운동이었다. 그 개혁운동은 위클리프, 후스 등, 전(前) 종교개혁자들의 개혁은 별 성과를 보지 못한 채 루터에게도 이어져 왔다. 루터가 말씀을 중심한 종교개혁과 찬송을 통한 음악개혁은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루터가 가진 두가지 개혁운동의 축 가운데 하나는 말씀으로 돌아가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단순하고도 당연한 말이지만, 당시로서는 엄청난 주장이었고 그것은 교회개혁의 본질이었다.
 
또 하나의 축은 ‘음악’의 개혁이었다. 루터에게는 ‘음악’이라는 새로운 병기가 그에게는 있었다. 루터에게서 음악은 ‘생존’을 위한 위로를 넘어서, 확신하는 믿음 가운데 그를 충만하게 이끌었다.
 
이러한 두가지 개혁운동은 여러 면에서 교회의 변혁을 요구하고 있었다.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이 시작된 다음 해에 스위스 종교 및 정치개혁을 주도한 울리히 츠빙글리(1484~1531)는 상당한 수준의 음악교육을 받았고, 특히 악기를 다루는 데 재능이 있었지만, 어떤 식으로든지 예배에 음악이 강조되지 않도록 했다.
 
스위스 독일어 사용권에서 일어난 츠빙글리의 개혁은 프랑스어권인 제네바에서 칼뱅에 의하여 강력하게 추진되는데, 기존 교회의 전통에 대한 칼뱅의 깊은 불신은 예배에서 가톨릭의 전례는 물론이고 문화, 예술 등 사람들의 주의를 산만하게 할 가공적인 그 어느 것도 허락하질 않았다.
 
스위스의 츠빙글리도 목사인 동시에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던 사람이었으며, 프랑스의 신학자 칼빈도 앞의 두 사람 못지 않게 교회음악의 대한 관심과 업적을 남긴 사람이었다. 이러한 음악에 대한 관심과 전문가에 비견되는 그들이 한 목소리로 교회음악의 개혁을 주창한 핵심은 바로 기존의 예배의 흐름을 방해하는 음악을 버리자는 것이었다. 종교개혁이 교리적인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종교적 부패의 사슬을 끊어야 하며 거기에는 음악적 타락도 포함된다는 점과, 교회음악이 개혁되어야 한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사제만이 아닌 모든 회중이 주님의 은총을 직접 맛보는 예배가 중요한 주제로 대두되었는데, 이것은 당연히 당시 교회 음악에 대해서도 개혁하려는 노력을 가져왔다. 지금 우리가 교회에서 부르고 있는 찬송가(Hymn)라고 알고 있는 찬송은 루터와 츠빙글리, 그리고 칼빈 등의 종교개혁의 결과로 성립된 개신교(Protestant Church)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다.
 
4. 종교개혁에서 음악개혁으로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뿐만 아니라 교회 음악개혁도 성취한 인물이며 그의 종교개혁은 찬송으로 이뤄졌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종교개혁은 교회음악의 모습도 바꾸어 놓았다. 종교개혁 이전까지 교회의 모든 의식은 라틴어로 진행되었다. 성가도 모두 라틴어로 불렀다. 루터는 예배에서 일반 신도들이 이해할 수 없는 라틴어를 사용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종교개혁 이후 교회에서 자기 나라 언어인 독일어 사용을 권장했다.
 
종교개혁을 통해 새롭게 탄생한 교회음악 양식은 오늘날의 찬송가에 해당되는 코랄(chorale)이다. 그전까지 예배의식은 모두 라틴어로 진행되었으며, 노래는 성가대만 불렀다. 교인들은 그냥 자리에 앉아서 성가대들이 부르는 노래를 ‘감상’하기만 했지 직접 교회음악에 참여하지 않았다. 부르는 것이 허용되었다고 해도 아마 한정된 사람만이 부를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노래가 너무 어려워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야만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루터는 일반 교인들도 음악에 참여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코랄이라는 새로운 양식을 창안하게 되었다. 루터는 사람을 움직이는 성가의 능력을 믿었다. 성가는 성경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부지런히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 의미에서 루터가 창안한 개신교회의 코랄은 음악을 통해 교인들이 직접 예배에 참여하기를 원했던 루터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루터나 칼쟁, 그리고 츠빙글리 모두 다성음악의 화려한 음악의 모든 부산물들을 과감히 교회 밖으로 던져 버리고, 경건히 그레고리오성가를 부르듯 단선율에 가사를 실어 찬송하게 했다. 코랄이라는 형식을 통해 처음으로 교회음악의 대중화를 실현했다. 그동안 예배의식에서 소외되었던 교인들을 예배찬송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렇듯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음악을 정비하였다. 화려하면서도 장식적이고, 웅장하면서도 복잡했던 음악들을 그레고리오 성가처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단선율 찬송으로 정리했다. 음악적으로 본다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몇 백년, 아니 아예 처음의 상태로 되돌리는 결과 같았지만 종교개혁의 정신이 그렇듯이 잘못된 것을 한번에 개혁할 수 있는 방법을 버리고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곧 교회다움과 예배의 회복인 것이다.
 
루터와 그의 동료들은 교회력에 맞추어 모든 주일에 부를 수 있는 코랄을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코랄이라는 양식을 창안한 후 20년동안 찬송 117편이 수록된 찬송가를 발행해 보급했다.종교개혁 이후 마르틴 루터가 만든 독일 코랄(Chorale)이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찬송가의 효시가 된다.
 
코랄은 현대어로 번역하면 찬송가가 된다. 현대의 찬송가는 모두 4성부로 이루어져 있지만 최초의 코랄은 화음도 없고 반주도 없이 제창으로 불리는 단순한 노래였다. 하지만 화성과 대위법을 통해 얼마든지 큰 형식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종교개혁 이후 교회음악사는 찬송가의 역사로 이어진다. 그러나 서양음악사의 역사는 바로크음악, 고전음악, 낭만음악, 근대음악, 그리고 현대음악으로 이어진다.종교개혁 이후 찬송가는 교회음악의 전부이며 교회음악사의 중심적 흐름이다. 안타까운 것은 종교개혁 이후 교회음악은 찬송가 외에 특별한 음악 양식을 생산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서양음악은 오페라, 합주곡, 교향곡 등 수많은 음악 양식을 생산하며 음악계를 주도해가고 있다. 루터의 의해 기초가 세워진 개신 교회음악은 그 후 바흐에 의해 그 화려한 꽃을 피웠다.
 
특히 바흐는 코랄을 기반으로 코랄 전주곡, 코랄 환상곡 등 다양한 형태의 음악을 발전시켰는데, 이는 루터가 없었다면 이룰 수 없었던 음악적 성과였다. 루터는 모든 회중이 함께 찬송 드리기를 원했다. 이런 토양에서 <코랄>이 나오고 하인리히 쉬츠나 요한 세바스찬 바하, 팰릭스 멘델스존, 요하네스 브람스가 배출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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