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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음 123호
오주원 장로 / 전 한남대 부총장, 한남대학교회
 
편집국   기사입력  2016/07/28 [17:48]
▲ 오주원 장로 ▲한남대학교 교수, 전 전국대학교수선교회장     ©편집국
성경에는 탕자의 비유(눅15:11-32)로 알려진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이 나온다. 어느 날 갑자기 살아있는 아버지에게 상속재산을 미리 달라는 불효막심한 작은 아들이 나오는 전반부와 그 아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를 위하여 아버지가 잔치를 벌인 것에 대하여 화를 내며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무정한 큰 아들이 나오는 후반부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는 비유다.
 
이 비유의 이야기를 읽노라면 어쩌면 그렇게 생동감 있게 마음에 와 닿는지 모르겠다. 내가 작은 아들이나 큰 아들과 닮은 점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아버지 때문일까. 아들들보다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더욱 더 마음이 찡하고 울림이 되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상상 속에서 그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아버지는 미리 재산을 나누어 달라는 작은 아들의 말을 듣고 망설여진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에 작은 아들이 늘 걱정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이 늘 불안했다. 인생에 대한 사색도 하지 않는다. 즉흥적이고 돈이나 낭비하는 그의 삶을 보면 한심하다. 계속하여 미쉬나, 미드라쉬, 탈무드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려 노력했건만 허사였다.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는다. 아니면 말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 같다. 이제는 나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도 않고 타이르면 벌써 얼굴색이 변한다.
 
그런 그가 갑자기 내가 죽어서나 가능할 재산상속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일은 내가 죽어서나 하는 일이라고 타일러도 보았지만 막무가내다. 생각할수록 괘심하다. 어떻게 할까. 미쉬나에 보면 이런 불효자는 죽어도 된다. 그러나 그 내용대로 처리할 수는 없다. 불쌍하고 철없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가 잘못되게 할 수는 없다. 요구를 들어주지 말고 혼내줄까. 아니면 그냥 집에서 내어 쫓아 버릴까.
 
그러나 그 아들은 반발하겠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결국 그 아들은 영원히 잘못되어 버릴 것이다. 그렇게 잘못되어 버릴 것이 확실한데 그렇게 만들 순 없다. 버려진 아들이 되게 할 수는 없다. 생각 할수록 불쌍한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었건만 아버지와 살갑게 지내본 적이 없다.
 
자라면서 부족한 것이 없었고 고생해보지 않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이대로 아들을 버릴 순 없다. 어떻게든 살아나가게는 해야 한다. 그의 요구가 말이 안 되고 배은망덕할지라도 그의 요구대로 들어주지 않을 수 없겠다. 그렇게라도 하면 몇 년은 버티겠지. 어디 세상이 호락호락한가?
 
비록 돈을 나누어준들 저런 마음과 자세로는 세상에서 망할 것이 뻔하다. 그러나 그를 내칠 순 없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그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가 나의 이 사랑하는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혹시라도 그가 가혹한 세상에서 고생하다보면 나의 이 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모른다 해도 최소한 그가 살아만 있으면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겠지.
 
내가 여기서 그의 요구를 거부하고 내 친다면 그는 더욱 망가질 것이다. 그의 요구는 잘못 되었지만 들어주어야겠다, 어디 재산이 중요한가. 그 재산을 탕진해서라도 그가 살아만 있을 수 있다면 다행이다. 혹시 가혹한 세상에서 견디지 못하고 집으로 무사히 살아올 수 있다면 그 재산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억지로 깨우치게 할 수는 없다. 그가 세상물정을 알 때까지 어떤 고난 속에서도 참고 기다려야 한다. 그의 요구보다 더한 나의 모든 것을 내어줄지라도 그를 살게 하는 일이라면 참고 기다리자.
 
그가 미드라쉬를 공부했으니 랍비 압바후가 가르친 비유를 알고 있겠지.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이렇게 부탁을 하자. 지금 네가 이렇게 집을 나간다면 큰일을 당하고 말 것이다. 네가 재산을 가지고 나간다고 안심해서도 안 된다. 그 재산이 너를 지켜주지 못한다.
 
지금처럼 정신 차리지 못하고 생활한다면 너는 머지않아 그 재산을 다 탕진하게 될 것이고 재산이 없어지면 큰 고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네 목숨만 살아있게 되더라도 너는 내게 돌아오는 것을 망설여서는 안 된다. 너의 처지가 어떠하든 난 항상 너를 기다리고 있겠다. 내가 너에게 부탁하고 또 부탁한다. 나의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나는 항상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살겠다. 나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나를 기다려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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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7/28 [17:48]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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