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보도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칼 귀츨라프 선교 184주년 맞아 세 번째 ‘귀츨라프의 날 기념행사’
 
보도1국   기사입력  2016/07/28 [16:14]
▲ 고대도교회     © 오종영(발행인)

지난 25일(월)-26일(화) 양일간 최초의 개신교선교사 귀츨라프의 선교지 보령시 고대도 섬에서 주민 성도 등 200여명 참석,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후안 갈라이사발의 작품 전시 및 제막식 거행 / 저녁시간에는 고대도 주민을 위한 음악회 개최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로 불리는 독일의 칼 귀츨라프의 선교184주년을 맞아 ‘아름다운 섬 고대도’에서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칼 귀츨라프선교기념 신학과 세계관학회(학회장 오현기 박사, 대구 동일교회)와 칼귀츨라프 선교기념회, 고대도 마을회, 대구 동일교회가 공동주최했으며, 보령시와 주한 독일대사관 등의 후원을 통해 이뤄졌다.
 
이번 귀츨라프의 날 행사에서는 후안 갈라이사발의 기념조형물 제막식과 학술심포지엄, 기념음악회, 주기도문 사경회 순으로 진행됐다.
 
내빈으로는 김동일 보령시장과 오현기 학회장, 권영진 대구시장, 정종섭 국회의원, 후안 갈라이사발(스페인 설치 미술가), 등이 참석했으며, 학회에서는 울리히 쇤투베 박사(독일, 전 Gossner Mission 원장), 세바스티안 스톨커 박사(베를린-브란덴브르크 학술원 상임연구원), 홍경만 교수(루터대학교), 성현창 교수(기독교인문학연구원), 김석원 목사(국제기도공동체 대표), 오유석 교수(백석대학교) 등이 주제발표와 주기도문 사경회를 인도했으며, 김성운 교수(고려신학대학원 교수, 칼 귀츨라프학회 부회장), 최규명 교수(백석대학교, 칼 귀츨라프학회 감사) 등이 행사의 순서를 맡아 수고했다.
 
고대도는 충남 보령시 행정구역에 속한 서해안에 위치한 55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섬으로 칼 귀츨라프 기념교회가 위치해 있으며, 지난해 열렸던 칼 귀츨라프의날 행사에서 제막한 칼 귀츨라프 선교기념 제막비가 귀츨라프가 고대도에 거주하면서 한글로 성경을 번역하였던(주기도문) 자리에 설치한 바 있으며, 이번에 후안 갈라이사발의 조형물이 제막됐다.
 
귀츨라프의 선교열정과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서 한국교회사에 주는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제3회 귀츨라프의 날 행사에는 내·외빈을 비롯해 고대도 주민 등 2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보령항을 통해 선박을 이용 고대도에 도착한 일행은 오후 2시 30분 칼 귀츨라프 공원으로 집결한 후 김성운 교수(고려신학대학원 교수, 칼 귀츨라프학회 부회장)의 개회사에 이어 오현기 박사(동일교회 담임, 칼 귀츨라프학회 회장)가 조형물 건립 경과보고를 한 후 최규명 교수(백석대학교, 칼 귀츨라프 학회 감사)가 감사기도를 드렸으며, 이에 제막식을 시작했다.
 
약 20여분간 진행된 제막식은 주요 참석자 소개에 이어 사회자가 카운트 다운을 한 뒤 조형물이 공개됐으며 이어 사회자가 축하 나레이션을 한 후 제막식을 종료했다.
 
▲ 고대도     © 오종영(발행인)

제막식에서 후안 갈라이사발은 인사말을 통해 “건물은 사람들 같으며 실제로 각 건물 뒤에서 사람들의 꿈의 찾을 수 있다”면서 “특별한 건물의 뒤에는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있는데, 내 일부는 아티스트가 되어 그 건축의 그 숨겨진 흔적의 라인을 통해 그 특별한 역사를 복구하는 것으로, 여기 우리는 어떤 이의 관용을 기념하면서 한 영웅의 잃어버린 자취를 스케치하게 됐다. 여기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을 환영 한다”고 인사를 했다.
 
제막식 후 일행은 현지에서 기념촬영을 한 후 기념홀로 이동해 학술 심포지움을 가졌다.
 
오후 3시 30분부터 시작된 학술 심포지움은 오유석 교수의 내빈 소개에 이어 개회됐다.
 
개회식에서는 김동일 보령시장과 오현기 학회장, 김홍태 고대도 이장이 참석자들에게 환영사를 전한 후 권영진 대구시장과 정종섭 국회의원의 축사가 이어졌으며, 이어 동일교회 성가대와 백석대학 합창단의 축가가 고대도에 울려 퍼졌다.
 
이어 내·외빈과 참석자들이 함께 포토타임을 가진 후 주제발표에 들어갔다.
 
이날 주제발표는 약 80분간 이어졌다. 주제발표는 역사신학 분야에 후안 울리히 쇤투베 박사(독일, 전 Gossner Mission 원장)와 세바스티안 스톨커 박사(독일, 베블린-브란덴브르크 학술원 상임연구원)가, 역사문화 분야 주제발표는 홍경만 교수(루터대학교 겸임교수)와 성현창 교수(기독교인문학연구원), 오유석 교수(백석대학교)가 각각 20분씩 발표를 했다.
 
첫 번째 주제발표에 나선 울리히 쇤투베 박사(독일 전 Gossner Mission 원장)는 “베들레헴 교회의 세계적인 역사”-잭 및 GUETZLAFF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 커뮤니티-체코 마이그레이션의 창립 행사와 존 Janickes의 임무 학교, 칼 프리드리히 8월 Guetzlaff와 그의 임무를 중심으로 발표를 했고,
 
두 번째 주제발표에 나선 세바스티안 스톨커 박사(독일, 베블린-브란덴브르크 학술원 상임연구원)는 ‘Guetzlaff and the Reformation’라는 제목의 주제발표를통해 ‘종교개혁의 신학적 기초’와 ‘신학자로서 Guetzlaff’, ‘개혁, Guetzlaff 및 개혁의 500년’이라는 내용의 강의를 했다.
 
세 번째 주제발표는 홍경만 교수(루터대학교)가 ‘자생적 한국교회 형성에 영향을 준 귀츨라프 - 이수정의 성경번역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인도했다. 홍 교수는 발표를통해 ‘귀츨라프의 성경번역 사역’을 소개하면서 “귀츨라프의<신유조서>를 비롯한 그의 성경 번역사역이 이 브리지맨역본 뿐만 아니라, 일본어 성경번역과 일본에서 이수정의 한글성경 번역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면서 이를 살피기 위해 첫째로 귀츨라프 성경번역사역의 대본인<신천성서>에 대해서, 둘째로 귀츨라프 성경번역사역에 깊이 관련 있는‘사인소조위원회’와 <신유조서>와<브리지맨역본>에 대해서, 셋째로 ‘귀츨라프의 최초일본어 성경번역과 햅번’에 대해서 주제발표를 했다. 특히 그는 신천성서와 ‘사인소조위원회’와<신유조서>및 <브리지맨역본> 및 귀츨라프의 최초 일본어 성경번역과 햅번, 이수정의 성경번역과 귀츨라프의 영향 등을 중심으로 발표를 했다.
 
마지막 발표는 성현창 교수(기독교인문한 연구원)가 했다. 성교수는 ‘칼 귀츨라프의 儒敎 이해 단편 -『전인구확』을 중심으로- 발표를 하면서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에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이수정의<신약마가젼복음셔언>를 들고 인천으로 입국했고, 기독교인으로서 이수정의 가장 크고 중요한 업적은 성경번역 작업인데, 이것은 한국교회를 자생적 교회로 형성하게 한 가장 큰 공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 칼 귀츨라프     © 오종영(발행인)

또한 “이수정은 무엇보다도 성경번역이 그에게 맡겨진 일차적인 시대적 사명이라고 확신했고, 이 사명을 이루는데 중국어 성경과 일본어 성경 등이 대본과 참고용으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중국어 성경과 일본어 성경이 나오기까지 귀츨라프의 성경번역 사역이 전반적으로 영향을 주고 밑거름 역할을 했다”면서 “이처럼 선교사 귀츨라프와 한국인 이수정에 의해 말씀이 선포되는 그 나라 언어로 그 나라 국민들이 읽을 수 있는 성경을 번역하는 일은 16세기 종교개혁의 정신을 이어가는 맥락에서도 높이 평가 할 수 있고, 16세기 독일의 종교개혁자 루터(M. Luther, 1483-1546)는 당시의 상황을 보고 누구든지 자국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1523년 일명‘구월성서’라는 독일어로 된 신약성경을, 1534년 구약성경을 번역했다(Eric W. Gritsch, 2010: 33). 이 정신은 16세기 종교개혁자들도 같은 생각이었으며 귀츨라프에게 영향을 준 친첸도르프와 헤른후트 형제단으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인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인 귀츨라프(1803-1851년)는 독일에서 출생한 목사이자 의사이다. 의사인 귀츨라프는 1832년 영국 동인도회사의 무장 상선 로드 앰허스트호의 통역관으로 충남 고대도에 25일 정도 정박해 있으면서 선교활동과 동시에 감자 재배법, 포도 제조법까지 알려준 것으로 기록되며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로 기록되고 있다
 
칼 귀츨라프는 한반도에 선교를 시도한 첫 개신교 선교사로서 독일 경건주의 가정 출신이며 네덜란드 선교회를 통하여 중국에서 선교한 루터교 목사로서 중국 주변의 나라들을 탐사하는 길에 1832년 순조 32년 7월 17일에 이 고장에 도착하여 배를 정박해 두고 약 한달간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다.
 

귀츨라프가 고대도에 오기까지
독일 교회를 대표하는 선교의 사자로 불리우는 귀츨라프는 독일 북부지방인 폼머의 평범한 경건주의 가정 태생으로 어학에 재질을 가진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그의 국적인 독일이지만 폴란드계 유대인 혼혈아였다. 1826년 귀츨라프는 루터교 목사를 안수를 받은 후 정식 선교사로 말래카를 거쳐 인도네시아 바타비아(지금의 자카르타)로 파송을 받았다. 이곳에서 중국 주민과 함께 철저한 학습과 교제를 통해서 중국어 능력을 키웠다. 1832년 귀츨라프 선교사는 런던 선교회의 톰린 목사와 함께 사이암(지금의 태국)에 최초의 선교사로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복음서와 로마서를 사이암어로 번역하였다.
 
사료에 의하면, 귀츨라프는 1832년 동인도회사는 극동의 새로운 통상지를 개척탐사하려는 목적으로 타이완을 거쳐 조선 서해안과 제주도 그리고 일본 오키나와에 이르는 항해를 계획하고 그 책임자로 린제이를 임명하였다. 린제이(Hugh Hamilton Lindsay)는 중국선교사 모리슨(R.Morrison)의 추천으로 중국어에 능통한 의사요 선교사인 귀츨라프 목사를 선의(船醫)겸 통역관(通譯官)으로 동승시켰다.
 
동인도 회사가 준비한 ‘암허스토경호’(Sir. S. Lord Amherst)는 1천톤급의 군함으로 이 항해의 목적은 통상 개시에 관한 관심을 살피는 일이었다. 그러나 귀츨라프는 이를 조선에 복음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절호의 선교기회로 여겼다.
 
그들은 1832년 7월 17일 조선에 도착하여 배질만 북쪽에 있는 장산곶(長山串)에 닻을 내렸다. 귀츨라파는 전도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이틀 후에 그 곳을 떠나 1832년 7월 23일경 고대도에 도착했으며, 1832년 7월 17일부터 한 달간 조선(朝鮮) 서해안을 방문하였고 특히 고대도에 머무르며 기독교를 전파하고 서양문화를 전달했다. 귀츨라프 선교사는 고대도에 와서 조선 순조 왕에게 근대 문명과 기독교를 전하였다.
 
그리고 당시 중국 중심의 역사관을 벗어나 세계 각 국에 문호를 개방하고 교역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런 점에서 고대도는 한국의 근대화를 촉구했던 역사적인 장소이며 한국 최초로 개신교 선교사에 의해서 복음이 전해졌던 기독교 순례지이다.
 
이는 시기적으로 보아 토마스 목사가 평양을 방문하여 대동강변에서 주민들에게 성경을 나눠주다 순교한 1866년보다 34년 앞선 일이며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인천에 상륙한 1885년보다 53년 앞선 일이었다. 그리고 최초의 가톨릭 선교사인 불란서 신부 모방이 내한한 1836년보다 4년이나 앞선다.
 
귀츨라프가 성경과 기독교문서를 서해안에 반포한 이 사건은 굳게 닫힌 조선의 문을 두드려 조야(朝野)에 외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서해안 방문은 토마스의 대동강 순교(1866년), 로스의 성경번역(1882년)으로 맥이 이어져 나갔다. 그 성경을 읽은 사람이 개종하여 선교사 없는 신자가 자생되었으며 은둔의 나라를 깨고 최초의 소래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 칼 귀츨라프     © 오종영(발행인)

비록 귀츨라프가 한국에 짧은 기간 밖에 머무르지 못했고 또 당시에는 눈에 보이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돌아갔으나 최초로 한국을 방문한 선교사로서 한국 선교의 길을 닦아 놓은 것이다. 성과의 유무를 떠나서 귀츨라프는 한국을 방문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서 한국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고대도 역시 한국 최초의 선교자로 큰 의미가 있다.
 
특히 1832년 7월 26일 귀츨라프 일행은 나이가 지극하고 위엄이 있는 김씨 성의 군관과 이씨 성의 문관의 방문을 받았는데. 귀츨라프가 만난 문간과 무관은 순소실록에 의해 홍주목사 이민회와 수군우후 김형수로 확인되었다. 귀츨라프 일행은 그들이 조선을 방문한 목적이 국왕에게 통상을 정식으로 청원하는 서한과 함께 선물을 전하려는 것임을 밝혔다.
 
또한 귀츨라프는 갑판 위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성경을 나눠 주었고, 그들이 기쁘게 받는 것을 보고 아주 만족해하며, 조선 국왕도 성경을 받아 읽고 유익을 얻을 수 있기를 갈망하였다. 그들은 양이(Yang-yih)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고 번역하도록 하였으며 감자를 성공적으로 재배하는 법을 전했다. 그리고 야생 포도를 가지고 포도주 만드는 법과 포도 재배법도 가르쳐 주었다.
 
어쩌면 귀츨라프는 언더우드나 아펜젤러에 비해 한국교회사에서 덜 조명을 받은 선교사라고 여겨진다. 최초라는 의미는 특별하다. 한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서의 귀츨라프, 그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보다 최소 23년 앞서 한국 땅을 밟은 최초의 선교사이다. 그리고 그 땅은 바로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우리의 고장 충청남도에 소재한 고대도이다.
 
귀츨라프의 숨결이 머물러 있는 고대도에는 지금도 귀츨라프의 영혼과 조선사랑의 정신이 고이 새겨져 있다.
저녁시간에는 고대도 주민을 위한 특별한 음악회가 마련되었다. ‘칼 귀츨라프 선교 184주년 기념 음악회’로 명명된 이날 음악회는 정혜민 씨의 해설로 독일 가곡과 오라토리오를 피아노 한보라, 베이스 안세환, 테너 안선환, 테너 조태진 등의 성악가들을 통해 작은 기념홀을 울렸다.
 
제2부는 한국 가곡과 독창성가를 선보였다. 먼저 안선환씨가 ‘편지’를, 조태진·안선환 씨가 ‘향수’를, 테너 안선환 씨가 ‘아 하나님의 은혜로’를, 베이스 안세환 씨가 ‘있으니’를, 태너 조태진 씨가 ‘거룩한 성’을 독창했으며, 제3부는 합창곡을 통해 참석자들에게 감동을 선하했다.
 
이튿날에는 주기도문 사경회가 열렸다. 주기도문 사경회는 정수목 목사의 사회로 테너 조태진 씨가 특별찬양을 드렸으며 이어 사회자가 누가복음 11:1-4절을 봉독한 후 김석원 목사가 강사로 나서 ‘주기도문 예수 운동과 삶’이라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전한 후 김석원 목사의 축도로 사경회를 마친 후 제3회 칼 귀츨라프의 날 행사를 모두 마쳤다.   /발행인 오종영 목사
 
 
 
 
저작권자 기독타임즈 ⓒ무단전재 공유언론사, 협력교회 및 기관 외 재배포 금지
대전충청지역 대표 기독교주간신문사 기독타임즈(kdtimes@hanmail.net)
운영이사장=정민량 목사ㅣ 발행인=오종영 목사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6/07/28 [16:14]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 도배방지 이미지

가장 많이 읽은 기사
봉쇄수도원에 입소하는 갈보리교회 강문호 목사 / 오종영
주님의 지상명령과 약속 (마태복음 28:16-20) 179호 / 오종영
십자가의 도 (고린도전서 1:18) 255호 / 편집부
특별기고)영지주의란 무엇인가(3) / 오종영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 그는 누구인가?④ / 편집국
구원파는 왜 이단인가? ⑤ / 편집부
구약의 선지자들 / 편집부
반석 위에 지은 집!(마태복음 7:21-27) 176호 / 오종영
3월 31일(부활주일) 오후3시 둔산제일교회에서 만납시다. / 오종영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정체성 (갈 2:20) 90호 /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