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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일 목사 (세종소망교회 담임)
예수의 정신을 회복하자 (1)
 
편집부   기사입력  2025/08/29 [12:22]

▲ 진수일 목사(세종소망교회)     ©편집부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갈등과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도덕적 상대주의, 소비주의적 신앙, 그리고 세속화의 물결은 교회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다. 세상은 교회를 향해 여전히 질문한다.

 

"너희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이 물음 앞에서 사도 요한이 전하는 그리스도의 정신은 작금의 교회에 깊은 도전을 준다. 요한은 단순한 제자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을 전한 사도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정신을 “성육신의 정신, 영광의 정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균형의 정신”으로 보여주었다. 이 정신은 단순히 신학적 교리로 머무르지 않고, 오늘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삶의 토대가 된다.

 

요한이 본 첫 번째 정신은 성육신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선포한다(요 1:14). 성육신은 단순한 신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비움과 세상 속으로의 참여를 뜻한다. 칼빈은 성육신을 두고 “하나님이 우리 수준으로 내려와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셨다”고 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겸손이다. 존 오웬은 성육신을 “하나님의 사랑의 가장 탁월한 계시”라 했고, 조나단 에드워드는 “성육신의 은혜는 인간을 구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자기 굴복”이라고 설명했다.

 

작금의 교회는 성육신의 정신을 상실한 채 권세와 영향력을 추구하는 유혹에 빠져 있다. 그러나 성육신의 정신은 교회가 세상속으로 들어가 낮아지고, 약자와 함께하며, 고통받는 이웃의 삶 속에 참여하는 것이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그리스도의 주권은 모든 영역에 미친다”고 했다. 이는 교회가 신앙을 예배당 안에 가두어 두지 말고, 사회·문화·정치·경제 전반에 성육신적으로 참여해야 함을 뜻한다.

 

두 번째의 정신은 영광이다. 요한은 예수 안에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았다고 증언한다(요 1:14). 영광은 ‘하나님의 본체가 드러남’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이 인간의 삶 속에 드러나는 것이다. 빌립이 예수께 “아버지를 보여 달라”요청했을 때, 예수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14:9)고 답하셨다. 예수를 본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광의 정신이란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과 그의 속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말로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영광이 하나님께 올라가는 게 아니다. 삶으로 나타나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선언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목적의 완전한 현현이다. 그분을 본 자는 곧 하나님을 본 자이다(요 14:9).

 

따라서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다. 프랜시스 쉐퍼는 “교회가 영광을 상실할 때,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예배와 설교, 선교와 봉사, 그리고 성도의 일상적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장이 되어야 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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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8/29 [12:22]  최종편집: ⓒ kidok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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